1909년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 시 암살을 준비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다. 이후 러시아제국군 헌병에게 붙잡혀 일본 총영사관으로 옮겨졌고, 재판관할권이 일본에 넘겨졌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관동주 뤼순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사망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은 구걸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수의를 지어 보내내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父)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