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선생님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했으면 ....... 이국적이지도 아니면서 가식적인 어투 듣기에 so nasty ..... 요즈음 일부 한국 소녀들 말투 너무 비한국적이고 경복궁은 단아하지도 않은 사치스런 천한 개량한복으로 어지럽고 난장판이 되고 말았읍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 진짜 토종 한민족의 정서로 되돌아 갔으면하는 바램 가져봅니다. 조선시대 한복 사진에서 우리의 옛모습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한국인 연주자들 중에서 보기 드문 영재이고 수재 였다. 30대 후반으로 가는 지금도 그에 견 줄 만한 연주자가 한국에는 흔치 않다. 그는 일찌기 12살에 단신 프랑스 파리로 유학하여 단 6개월 만에 프랑스어를 습득 하고 뛰어난 학습 성과를 나타 낼 정도로 영재 형 인물이다.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 조기 입학 한 임현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실력으로 조기 졸업과 수석 졸업을 동시에 이행 하였다. 파리 국립 음악원을 한국의 한예종에 비교 하는 평론가들이 있지만 그 전통과 깊이에 있어서 족탈불급이다. 조성진이 한예종 후에 왜 파리 고등 음악원으로 진학 했겠는가? 1795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음악원(conservatory)으로,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이 학교를 거쳐간 것으로 유명하다. 드뷔시, 라벨, 베를리오즈, 비제, 메시앙, 뒤프레 등 걸출한 졸업생이 배출되었으며, 포레, 생상스, 불랑제, 윌리엄 크리스티 등 많은 클래식 거장들이 교수 직을 역임하였다. 한국 사회는 많은 분야에서 독특한 sensationalism 만연하는 경향이 있지만 클래식 음악계도 예외는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 중 중국과 일본도 같은 경향을 보인다. 나는 이를 소위 말하는 국뽕주의라고 부른다. 서양의 예술 문화에 열등감을 내 재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양 문화에 열등감을 가질 일인가? 세계 지구촌은 이미 서양 문명, 문화가 점령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입는 복식에서부터 모든 산업이 서양 문명, 문화의 소산이다. 여인들이 환장 하는 샤넬, 디올 명품 핸드백의 위상만 뵈도 그렇지 아니 한가? 따라서 서먕 문화는 단지 현대 지구인들의 삶이고 현실로 받아 들이면 그만이다. 특별히 열등감을 느낄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중 ,일 3국은 젊은 연주자가 세계 콩쿨 대회에 입상이라고 하면 온 나라가 sensationalism에 휩싸여 들썩인다. 모든 언론의 문화 면은 도배가 된다. 세계 유명 콩쿨이 연주자들의 등용문이 되어야 한다면 미국 국적의 장영주(사라 장)의 바이올리스트로서의 세계적 위상이 설명 되지 않는다. 그녀는 10살 때 EMI 음반을 녹음 발매 하였다. 15살 때 베를린 필과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의 지휘로 난해한 곡으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 하였다. 나이 불과 15살의 소녀가 이룬 그 성과가 어찌 유명 콩쿨 대회 입상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콩쿨 대회란 연주자들의 등용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현존 세계 최고 대우를 받는 중국의 랑랑은 세계 유명 콩쿨 대회와는 거리가 먼 피아니스트다. 그가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그만의 음악성과 개성으로 그의 연주를 펼칠 뿐이고 대중이 지지를 보낼 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랑랑을 인정 할 뿐 그의 연주를 선호 하지는 않는다. 중국과 일본에 현존하는 피아니스트들 중 지지하는 연주자들은 없다. 콩쿨 대회 입상자는 마에스트로 임명장이 아니다. 연주자로서 나설 수 있는 일종의 자격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콩쿨대회에서 탈락한 연주자들이 음악 연주를 포기 한다거나 음악을 작파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 더 훈련과 연습 그리고 연구에 몰두하여 입상자들 보다 더 실력 있는 진정한 마에스트로가 된 경우도 있다. 오히려 21살 어린 나이에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입상하여 한국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칭호 를 받았던 정명훈 선생은 30대 나이에 지휘자로 전업 하였다. 음악은 예술이고 연주 행위는 예술 행위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 하는 인간들 특유의 행위라 할 수 있다. 이치가 이렇다면 연주 등용문에 불과한 콩쿨 대회 입상을 국가의 경사가 난 것처럼 sensationalism에 휩싸여야 할 것인가? 한, 중, 일 3국 모두가 반성 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입상자들 수 명을 제외한 수십 명의 탈락자들을 고통 속에 몰아 넣는 결과적으로 잔인한 대규모 콩쿨 대회는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솔직하게 얘기 해 보자. 입상자들과 탈락자들의 음악성과 테크닉이 차이는 종이 두께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다.. 그 젊은이들이 연주자로 살아 가면서 , 음악 활동을 해 가면서 꾸준히 발전 할 수 있는 차이 일 뿐이다.
조성진은 임현정의 후학으로 파리 국립 음악원을 졸업 했지만 임현정이 이룬 학업 성적대로 교수들의 만장일치 수석 조기 졸업 수준은 되지 않았다. 그는 쇼팽 콩쿨 우승자이다. 임 아무개 라는 소년이 미국 콩쿨에서 수상 했다고 하지만 그가 발표한 앨범이 빌보드 클래식 챠트 근처에 갔다는 소문도 없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피아니스트였던 반 클라이번 재단이 개최한 콩쿨대회 입상자이다. 세계적인 클래식 기획사들은 매년 콩쿨 대회 우승자들 위주로 사업 기획을 하고 클래식 음악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대중을 끌어 들여 수익을 창출 하기 위해서 콩쿨 입상을 홍보 전면에 내 세우고 수익을 창출 하는 것이다. 한 해에도 클래식 음악의 본산인 유럽 대륙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대학을 졸업한 수 백여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음악 현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각광을 받기 위하여 명성 있고 전통 있는 콩쿨대회에 천작 한다. 콩쿨 입상자들은 고작 한 대회에 3명. 수 백 명이 응모 하여 고작 세 명을 선발 한다면 나머지는 소문도 없이 사라져 가라는 것인가? 콩쿨 대회는 장차 음악인으로 커 가야 할 인재들을 잔인 하게 죽이는 대회다. 콩쿨 대회 응모자들의 실력이 차이가 있을까? 음악성은 개별적인 것이다. 음반 테크닉도 천차 만별이다. 연주자 별로 주의 깊게 청음 해 보면 미세한 차이는 보인다. 그러나 그 것을 실력의 차이라고 콩쿨 대회 심사위원들이 구분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연주자들은 예술인이다. 예술은 개성이 없이는 성립 되지 않는다. 콩쿨 대회 참가자들이 하나 같이 심사위원 몇 명의 음악성과 취향에 맞게 연주 해야 할까? 진정한 음악성과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 존재 한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유럽 등의 콩쿨 대회에 천착 하지 않는다. 그들을 가르친 교수들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