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도 초봄 대구시민구장 대구상 전성시대 장효조 신승식 이승후 김한근 박기수 김운용들의 막강시절 신입생 16번단 포항중 출신 후리후리한 검은빛 얼굴의 투수 김시진을 기억한다. 같은 상고 신입생 대구중출신 송진호의 와일드한 강속구와 더불어 건국대학감독 으로 옮긴 강태정(작고)감독의 스카웃역작 이었조. 참 시간이 많이흘렀네요. 부드러운 김시진. 그의 고운 외모도.
1990년 3월 태평양 vs 롯데의 시범경기를 MBC서 중계했던 기억납니다. 김경기 선수가 타석에 서면 카메라가 그냥 있지를 못하고 TV화면이 반으로 나뉘었죠. ㅎㅎ. 타격에 임하는 김경기 선수 vs 상대팀 덕아웃서 팔짱끼고 지켜보는 적장 롯데의 김진영 감독님. 아나운서들도 예외가 아니었죠. "부자지간에 서로 적으로 만났습니다. 상대팀 소속의 아들을 바라보는 김진영 감독 어떤 심정일까요?"
85년에 김건우선배가 운동장에서 투구연습만 하는 것을 보며 프로에 가면 투수를 하려는 것이구나 생각했었네. 정식 시합에서는 4번타자였으니.. 85년에는 김종석선배가 홀로 고군분투하면 2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기억하는데 2번의 준우승이 모두 아쉬운 4:3 연장 역전패.. 김건우선배가 투수였다면 4관왕했겠지..
박칄순의 기사는 그야말로 명화의 느낌. 프로야구 시작을 화려하게 마지막을 위대하게 한 부러움의 주인공. 그러나 그 사이의 대부분은 피눈물나는 인내의 시간. 고독한 투쟁. 이보다 더 위대한 야구선수 드라마가 있으리. 그냥 존경스럽다. 야구가 돈놀이가 아니라 삶의 교과서임을 살아남아 웅변한 원년의 영웅. Respect.
국민학교 시절 도원구장에서 처음으로 용기 내서 내민 야구공에 싸인해주셨던 그 기억으로 지금도 직관때 입고가는 랜더스 유니폼백넘버는 00번입니다!!!! 6살 난 우리아들은...제 영향인지 0번 김강민선수를 좋아해서 그 유니폼 입고 가지요. 김경기선수는 그 자체가 인천야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