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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이종석-e6i
@이종석-e6i 3 дня назад
40년 한국 프로야구사상 다시나올수 없는 레전드기록. 박철순 백인천 장명부.
@마술피리-b2p
@마술피리-b2p 8 дней назад
동네 야구에서 4할이 뭔 기록이냐?
@수호천사-v6w
@수호천사-v6w 9 дней назад
불꽃을 태우고 간 처절한 승부사.
@kindchang
@kindchang 14 дней назад
사기친 삼미 허사장. 진짜 나쁜놈이네. 장명부 선수 너무 안됐네요. 진짜 대투수죠.
@청담동박감독
@청담동박감독 14 дней назад
내 인생 최고의 야구선수 장효조.
@wewoori
@wewoori 17 дней назад
늘 "타자들... 내가 이쁘게 던져줄게.잘쳐봐" 하듯 한번 빙그레 웃어주면서 던져주던 투수...."이번엔 꼭쳐" 후라락....
@baekfilmgeo2257
@baekfilmgeo2257 26 дней назад
선동열 선수시절은 어느 누구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원탑이었음. 영화땜에 최동원이랑 라이벌 비슷하게 알려졌지만 비교자체가 안됨. 최동원팬도 아마시절 혹사를 핑계거리로 프로시절 비교는 피해감
@sonicjun80
@sonicjun80 Месяц назад
김광현 한물 갔을때 메이져가서 한국에서보다 승 쉽게 따더라 선동열이 전성기때 메이저 갔으면 몇승할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져에서도 최상위급 투수였을듯
@아놀드쉬워
@아놀드쉬워 Месяц назад
장효조선수가있어 야구행복하게 보았는데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APAPAP-k2x
@APAPAP-k2x Месяц назад
지금이라도 좋으니 삼성은 김시진과 장효조를 영구결번으로 등재하고 한화는 구대성을 영구결번으로 등재하라
@광영김-d7w
@광영김-d7w Месяц назад
그래도 장타를 겸비한 이승엽이 최고😊
@동희장-n6f
@동희장-n6f Месяц назад
한국의 장효조 일본의 이치로,
@정종식-t9l
@정종식-t9l Месяц назад
74년도 초봄 대구시민구장 대구상 전성시대 장효조 신승식 이승후 김한근 박기수 김운용들의 막강시절 신입생 16번단 포항중 출신 후리후리한 검은빛 얼굴의 투수 김시진을 기억한다. 같은 상고 신입생 대구중출신 송진호의 와일드한 강속구와 더불어 건국대학감독 으로 옮긴 강태정(작고)감독의 스카웃역작 이었조. 참 시간이 많이흘렀네요. 부드러운 김시진. 그의 고운 외모도.
@영학오
@영학오 2 месяца назад
김재박,이해창등은 전성기 지나 프로 입단! 장효조 완숙기!에 프로에~ 김재박선수 활약은 어르신들한테 들은내용만 알고 있어서 이종범선수가 플레이하는거 보면서 김재박아저씨의 전성기 플레이 추측합니다 ㅎㅎ
@박진혁-y7b
@박진혁-y7b 2 месяца назад
박노준선수의 부상은 황금사자기가 아니라 봉황대기 결승전이죠 ~
@홍형곤-g7i
@홍형곤-g7i 2 месяца назад
김경기 최고였지
@도라에몽-f2u
@도라에몽-f2u 2 месяца назад
혹시...동열이볼 실전봤나?
@mydailylife9579
@mydailylife9579 3 месяца назад
선동렬 선수를 보면, 마치 wwe에서 전성기의 언더테이커를 보는 느낌.. 아 ㅆㅂ ㅈ됬구나..였죠.^^ 지금은 어떤 선발투수가 나와도 선동렬 선수만큼의 공포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작년 페디 선수 정도가 우와 죽인다 정도였지..
@소은처사
@소은처사 3 месяца назад
프로야구가 10년만 미리 시작했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지..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황규봉, 이선희, 타자엔 장효조, 우용득 등이 젊은 나이에 입단했다면 프로야구 초창기의 패자는 삼성이었다. 해태는 어림도 없었지...
@Minami.Kim89
@Minami.Kim89 3 месяца назад
삼성의 10번은 장효조 양준혁 2명이지 구단 일처리하는거 보면 참 답답하다
@jaewoungshim4967
@jaewoungshim4967 4 месяца назад
국민힉교 시절 우리들의 영웅....박철순. 김우열
@DiscJockey-lk4dp
@DiscJockey-lk4dp 4 месяца назад
쌍방울의 공포의 타자였죠 그때가 그립네요
@박대통령만만세
@박대통령만만세 4 месяца назад
1990년 3월 태평양 vs 롯데의 시범경기를 MBC서 중계했던 기억납니다. 김경기 선수가 타석에 서면 카메라가 그냥 있지를 못하고 TV화면이 반으로 나뉘었죠. ㅎㅎ. 타격에 임하는 김경기 선수 vs 상대팀 덕아웃서 팔짱끼고 지켜보는 적장 롯데의 김진영 감독님. 아나운서들도 예외가 아니었죠. "부자지간에 서로 적으로 만났습니다. 상대팀 소속의 아들을 바라보는 김진영 감독 어떤 심정일까요?"
@북한산필그린
@북한산필그린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래도 선동렬보단 최동원이 한수위지~
@atalasiasxt
@atalasiasxt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직까지 김재박을 넘은 야구천재는 없음
@재승한-p6l
@재승한-p6l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건우ㆍ김정수ㆍ안언학ㆍ김경표 ㆍ청룡의 비운의 스타들 ᆢ 김문영선수처럼 꽃피지못한 조현
@Jonhs-op9ng
@Jonhs-op9n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격수로서는 조선사상 여전히 전무후무.메이저수준.
@benjaminhur3701
@benjaminhur370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시진이 에이스라는 건 다 만들어진 거고 사실상 삼성 에이스는 김일융이었음. 최동원이랑 붙어서 3승한 것도 김일융임.
@tsg2201
@tsg2201 22 дня назад
최동원이랑 붙어 승리한건 5차전 1경기죠 그나마 구원승이었고 나머지는 임호균과 안창완 상대로 거두었습니다 7차전 붙어서는 패했고
@민족중흥-j7d
@민족중흥-j7d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재박 최동원이 없었다면 누가 야구를 사랑할수 있었을까
@김인수-c2i
@김인수-c2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건우 박노준바뀌었음
@김대진-j3y
@김대진-j3y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박철순 이름만 들어도 눈물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우상이자 영웅 대구출신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나혼자 OB베어스 어린이회원 가입하러간 추억이 떠 오른다. 나의 우상 박철순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이종찬-o3d
@이종찬-o3d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대에 더전설같은 선수가 있는데 그분이 최동원 이라는선수였고 사적에서도 선동렬이가 최동원을 롤 모델로 생각하고 야구했다함
@김종국-h9q
@김종국-h9q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난 중3때 선동열고2선수을 처음 볼수있었다 그때부터 매일연투하는 하고 있었다 일고선동열 상고김태업 대단했지요
@최반상
@최반상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장효조가 요즘처럼 20세에 프로 데뷔했다면 프로야구의 모든 기록이 장효조 우선으로 바뀌였을 겁니다 정말 대단했던 타격천재 장효조...아까운 분이죠
@kimjsk01
@kimjsk01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85년에 김건우선배가 운동장에서 투구연습만 하는 것을 보며 프로에 가면 투수를 하려는 것이구나 생각했었네. 정식 시합에서는 4번타자였으니.. 85년에는 김종석선배가 홀로 고군분투하면 2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기억하는데 2번의 준우승이 모두 아쉬운 4:3 연장 역전패.. 김건우선배가 투수였다면 4관왕했겠지..
@Jonhs-op9ng
@Jonhs-op9ng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박칄순의 기사는 그야말로 명화의 느낌. 프로야구 시작을 화려하게 마지막을 위대하게 한 부러움의 주인공. 그러나 그 사이의 대부분은 피눈물나는 인내의 시간. 고독한 투쟁. 이보다 더 위대한 야구선수 드라마가 있으리. 그냥 존경스럽다. 야구가 돈놀이가 아니라 삶의 교과서임을 살아남아 웅변한 원년의 영웅. Respect.
@Jonhs-op9ng
@Jonhs-op9ng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네 게임 외 다 출전? 혹사라고하지요.
@안토니오-l3i
@안토니오-l3i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내 어린 날의 우상... 그가 롯데로 떠난던 날, 펑펑 울었던 기억이... 그 후로 아주 오랜 동안 삼성의 경기를 보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내게 대한민국 최고의 에이스는 김시진.
@tmdgh0422
@tmdgh042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등판 주기보면 진짜 레전드네
@kwindow2
@kwindow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재박에게는 프로야구가 너무 늦게 생겼다. 사실 전성기가 자나고서야 프로야구가 생겼다. 사실 김재박은 전성기는 프로야구 생기기전 실업야구와 세계선수권 대회
@무리뉴-z8b
@무리뉴-z8b Год назад
83년 전기리그 때 삼미 김진영 감독 심판 폭행으로 구속 당하지만 않았으면 전기리그 삼미 우승하고 후기리그 때 MBC 청룡 우승 했으면 당시 코시...볼만 했을 텐데.. ㅋㅋㅋㅋㅋ
@chichi-os1fk
@chichi-os1fk Год назад
공 스피드도 느리고 변화구도 밋밋하지만 땅볼유도나 플라이볼 유도보단 타자와의 정면승부로 삼진을 셀수도없이 잡아내던 투수였었다 타자가 가장 치기 힘든 코스로 날카롭고 깊숙하게 꼿아넣는 직구만으로도 다승왕 삼진왕 다 해먹었던 하지만 부상으로 전성기가 너무나 짧았던..
@킹밥그릇-l3j
@킹밥그릇-l3j Год назад
학폭 최고봉 빠따 박철순~~~
@웃으며살자-p2n
@웃으며살자-p2n Год назад
1990년 서울 엘지팬들에게 기쁨 선사해주신분이죠
@어짜피보면짖는개
@어짜피보면짖는개 Год назад
요즘 대구 사회인야구에서 종종 보이시는데 아직도 120넘는공을 던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슬라이더와 커브는 제가 만나본 그 어떤 투수보다도 공이 좋습니다. 커브 처음보고 충격에 빠졌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병상박-t1o
@병상박-t1o Год назад
국보 선동열 투수. 이런 선수를 앞으로도 또 볼 수 잇을까?
@sinjisuk1112
@sinjisuk1112 Год назад
내가 좋아했던 선수 10~10클럽 우승7회는 영원히 깨지지않을 기록이 될거같네
@신도림에서갈아타고서
국민학교 시절 도원구장에서 처음으로 용기 내서 내민 야구공에 싸인해주셨던 그 기억으로 지금도 직관때 입고가는 랜더스 유니폼백넘버는 00번입니다!!!! 6살 난 우리아들은...제 영향인지 0번 김강민선수를 좋아해서 그 유니폼 입고 가지요. 김경기선수는 그 자체가 인천야구죠!
@sirwonjin9616
@sirwonjin9616 Год назад
야구부장하다 감독이 된 경북고 구수갑 감독이 한 선수 생명을 끝장냈다. 최동원 다음으로 큰 선수가 될 조계현은 대학가서 변화구 투수로 바뀐다 그것도 연세대 대학교 감독이 배려해서. 구수갑 이름을 잊으면 안된다.
@남해이-x8o
@남해이-x8o Год назад
김시진 감독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