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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찔체 허니(Dzildzilche honey) 뜻 [시편 19편]10절 말씀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습니다. 시편 19편 10절에 보면 송이 꿀이 표현되어 있고 말씀 그 자체가 송이 꿀보다 더 달다 하였습니다. 그 많은 언어 중에서 말씀의 맛을 송이 꿀로 표현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송이 꿀이 달달한 것만이 아니고 뭔가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꿀에 관하여 검색을 해 봤습니다.
벌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BC7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동굴벽화에서부터 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BC3200년경) 문자에서는 꿀벌의 모양이 왕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왔고 왕의 피라미드에도 꿀단지를 함께 넣어 벌꿀의 귀중함을 나타냈다고 하더군요.
꿀은 약으로 많이 쓰였고 또 우리 몸에 영양분을 많이 주는 식물이더군요. 성경 말씀의 달달함과 꿀과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찔찔체 허니 꿀은 멕시코 야산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형형색색 피어 있는 야생화와 선인장 꽃에서 꿀벌들이 생산한 벌꿀이라 고하며 몸에 유익한 약용 성분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탁월한 효과는 소화불량, 설사, 가슴 쓰림, 위장염, 소화성 궤양, 십지이장 궤양, 역류성 식염, 궤양성 대장염, 헬리코박터 감염, 암 치료, 항염치료, 피부 트러블 등에 유용하다네요. 그리고 찔찔체 허니는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난다네요 특이하죠?
하나님은 첫 창조를 취소하지 않으시고 새 창조를 이루신다. 그것을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아들도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 우리는 세상에서 쉬운 길, 승승장구하는 길로 보냄받은 게 아니라 고민하고 갈등하는 길로 보내심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로 성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심은 그분께서 계획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뜻이다. 안 믿는 자의 예정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게으름과 불순종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내가 큰 일을 행하거나 엄청난 비밀을 깨달았다고 영광받았다 하지 않으시고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영광받았다고 여기신다.
소리가 울려서 절반은 못 알아들었지만, 제자들이 사명을 받은 것은 그들이 자질이 훌룡하거나 그럴 만한 자격이 되어서가 전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생이며 생명은 아무리 작아도 생명력이 있으므로 자라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는 스스로는 갱생이 불가능한 죄인이며 선행을 할 능력도 없고 율법의 제사로 바뀔 수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죽으심으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죄인의 모습 그대로 나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을 잊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된다. 겸손과 온유, 감사와 순종이다.
며느님과 아드님 인상이 참 좋아요~ 선함이 넘치는것 같아요~ 저도 며느리지만 시댁이 참 어려운데 그래도 약해지시고 아프신 시어른들을 잘해드리고 싶어요~ 며느님께서 시댁에 자주 오는 이유는 집사님께서 귀히여기고 존중해주시고 편히 대해주시니 얼마나 좋으면 오실까요~ 또 며느님 성품이 참 좋고 저도 더따뜻하고 잘웃는 며느리가 되길 또 그런 딸이 되도록 기도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안에 주님의 축복이 더욱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죄, 의,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러 오신 것이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냈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높이 올리셨고 성령님이 그분을 대신해서 오심으로 이 세상 심판이 시간문제일 뿐임을 증거하신다. 우리는 곧 멸망할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영원한 나라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믿는 자들에게는 환난과 핍박이 면해지기는커녕 필수 코스로 약속되어 있다. 그 이유는 현재는 구원과 은혜의 때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이 감추어져 있으므로 교만한 자들이 설치기 때문이며, 우리의 성장을 위해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고난을 면케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인내하게 하시며 위로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믿음을 이 세상에서 써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믿음에 대하여 적대적이므로 그런 식으로는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쓰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될 때에 우리 신앙생활에 기쁨과 평안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 삼으신 것은 그분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시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내게 있는 죄악된 습관들을 버리고 그분처럼 살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훈련을 위해 계명이 필요하다. 내 맘대로 살지 않고 그분을 사랑하여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참된 평안이며 복이다.
우리가 주님께 연합하여 맺는 열매는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께 연합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즉 성령에 의해 맺어지는 열매이다. 내 힘으로 선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온전히 복종하게 되는 때가 내가 성숙해지는 때이다.
믿는 자들은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열매보다 우선하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되신 것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 연합에 들어간다. 그 연합은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 보이는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믿는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지만 아직 소유하지 못한 곳이다. 우리는 예수믿고 구원받았으나 여전히 힘든 세상에서 살아간다. 믿음과 기도와 성령님은 세상의 어려움을 전혀 면하게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참으며 저 세상을 소망케 해준다.
믿음과 기도와 성령으로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약속은 세상적인 능력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 능력이 세상에서는 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나 사실은 영원한 나라의 능력이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참 신자들의 삶이 그러했다. 그 능력의 쓰임새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은 광야와 같은 곳이다.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마느냐 하는 시험장이며 훈련장이다. 이 길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의 필요를 채우시나 욕심을 만족시켜 주시지는 않는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기업이다. 지금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걸어가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과 슬픔을 당하나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을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영적인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예수 믿고 세레 받아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은 내가 깨달아서도 아니고 내 의지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믿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전에는 죄의 종으로 죄에게 전혀 저항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주시고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도록 인도하신다. 내 힘과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알의 밀알로 심겨져 썩어지심으로 우리가 많은 열매로 맺혀졌다. 우리는 본래 영적으로 죽은 죄인이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 되었다. 남과 비교하여 자랑할 것도 없고 좌절하고 섭섭할 것도 없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누릴 영광에 대한 소망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