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아버님이 담을 쌓으려고 돌을 주어오라 했습니다 형제들은 반듯반듯한 돌만 필요 한 줄 알고 잘 생긴것들만 주어 갖다 드리니 아버지께서 큰것, 작은것 ,모난것, 깨진것 모두 써야 아구가 잘 맞아 튼튼한 돌담이 된다고 하셨지요 다시 다양하게 생긴 돌들을 주어 드렸더니 잘 쌓으셨지요 그날밤에 태풍이치고 비바람이 억수로 와서 잠자면서 큰 걱정을 했습니다 아침에 나가보니 돌담이 그대로 우뚝 버티고 있었지요 그러한 돌담으로 이어진 돌담길이 우리들의 놀이터 였습니다 고무줄놀이, 재기차기, 구슬치기,공놀이등 다양한 놀이를 하였지요 돌담 사이로 작고 앙증맞은 꽃들도 피었습니다 추억의 창고이며 소통의 공간이었지요. 그리고 이곳이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며 벗님들과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드디어돌담스토리에 들어와 봤습니다. 뜻깊은 영상 많이 올리셨네요. 이 지구상의 모든이들이 김선생님처럼 생각하신다면 지금과 같은 지구의 재난들이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지금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산불이 일어나 맹렬히 타오르고 있고 Death Valley 계곡의 기온이 50 도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미국대선후보 트럼프는 세계기후협약모임에서 빠져나오며 우리의 산업활동과 기후변화는 상관이 없다고 얘기했지요. 지구를 더럽히는 주범들은 부유한 나라들이고 그로 인해 굶어죽고 암에 걸려죽는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지요.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대다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더군요. 단둘이 살면서 SUV 와 같은 연비나쁜 큰차를 몰면서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는등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 개인의 이익과 편리앞에서는 양심이란건 존재하지 않는걸로 보입니다. 지구를 푸르게 깨끗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김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저는 요즘 집수리 하느라 크롬북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가 잠시 들어와 봤습니다. 바쁜 시간이 끝나면 다시 들어와 보겠습니다.
孤竹 崔慶자昌자 선생님의 후손, 해주 최씨 가문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저는 남양洪가 입니다! 참으로 뛰어난 대학자이시며, 조선 팔문장중의 한 분으로, 우리 민족의 큰 스승님들중 한분이신, 孤竹선생님의 문예의 향기가 후학된 저희 모두에게 귀감과 존경의 감사로 빛이 납니다! 잘 아시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가정들도, 못된 무리들의 당파싸움과 모함을 받아 사대부에서 졸지에 귀양살이와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고, 남겨진 가족들은 노비로 기생으로 신분이 바뀔 수 밖에 없던 질곡의 역사들이 아프게 존재합니다! 조선시대에나 지금이나 총인구는 20~30위인 저희 남양홍가는 조선조 과거급제자수 4위의 가문으로, 인구비례로는, 단연코 압도적 1위의 명문거족 사대부 집안입니다! 과거 급제자 1위는, 전주이씨 2위는 안동권씨 3위는 파평윤씨 4위가 저희 남양홍가 입니다! 저희 남양홍가이신 詩人 洪 娘 할머님의 집안은 그러한 被禍를 당하지 않으셨을지 유추가 됩니다! 그것은 남녀를 구분치 않고 유아를 벗어날 시기부터, 천자문부터, 동몽선습, 계가편, 부인행실록, 명심보감및 사서삼경을 가르켜온 저희 남양홍가 집안의 가풍이 대대로 존재했슴입니다! 이러한 근본 자질과 학습들은, 詩人 洪 娘 할머님의 문예의 근간이였으리라 유추가 됩니다! 詩人 洪娘 할머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는것이 큰 아픔입니다! 그러나, 제 할아버님께 들었던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승과 뛰어나신 文材가 참으로 많으셨던, 저희 남양洪가 가문의 기풍상, 孤竹 선생님의 文藝를 평소에도 흠모하시다가, 한평생 일부종사 사랑하신 洪 娘 할머님의 애절하고 숙연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남겨진게 아닐까 조심스레 유추 합니다! 언제 기회가 닿을때, 詩人 洪娘 할머님의 身後之地를 꼭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참으로 귀하신 孤竹 선생님 후손분들과, 이토록 아름다운 영상을 제작해주신 KBS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洪娘 할머님과 비슷한 시대에 사셨던, 石壁公 洪春자卿자 할아버님의, 도승지와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시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七言節句詩 "落花巖" 소개드리며 물러납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문학으로 선정되어, 교과서에 수록되던 詩입니다! 예전 고등학생때 古語를 배우신분들은 기억이 나실것입니다^^ 落花巖 國破山河異昔詩(국파산하이석시) 獨留江月幾盈虧(독류강월기영휴) 落花巖畔花猶在(낙화암반화유재) 風雨當年不盡吹(풍우당년부진취) 나라(백제)가 망해 산하도 변했으나~ 홀로 강에 머문 저달은 그 몇번을 차고 이즈러졌는가? 낙화암의 꽃은 지금도 피었나니~ 비바람에 그때 모두 떨어지지 않았으리!
홍랑의 애절한 이 시를 참 좋아했는데요. 최경창과 홍랑의 러브스토리를 재밌게 고증을 섞어가며 들려주셔서 잘 들었습니다. 제가 파평윤씨 동네어르신 모시고 파주 간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갈 때마다 어르신이 이 시를 읊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홍랑이 최경창의 묘소에서 시묘살이 할 때 자신의 얼굴을 마구 흠집내어 사람들을 기피하고 시묘에 정성을 쏟았다는 이야기는 언급을 안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홍랑에게 후손이 있어 대가 이어졌다는데 정확한 건 아닌가 봅니다. 여하튼 선생님 수고 많으셨고 조금 더 압축된 내용으로 스킬만 좀더 다듬으시면 정말 좋은 해설이 될 것 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