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용운 스님, 그 암울한 시대에 따듯한 우리 말의 봇물을 터놓아 한국 근대문학의 지평을 일구신 스님이시여. 이제, 스님의 시에 나오는 알수 없어요 의 계절이 찾아 왔습니다. 저의 기도하는 창가엔 바람도 없는 허공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낙옆이 보입니다. 떨어지는 잎새를 보며 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나무가지에서 땅 바닥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생명을 떠나 무생명에 이르는 이 거리는 얼마나되는 거리 일까요, 이는 나무의 기럭지와는 무관 할 터. 이 세상과 온 우주는 알수없음의 세계입니다 참, 앎이란 무엇인가, 오늘도 살떨리게 기도합니다. 이 철수목사 드림
나 태주님, 사랑에 대해 말하는 여러 시가 있지만 님의 사랑 법이 간결하고 좋네요. 예쁜 것을 예쁘다고 칭찬하고 조금 모자라란 부분은 덮어주고 싫은 것은 참아 주는 것, 그 다음 구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래요, 나중까지가 빠지면 사랑도 이가 빠진듯 할거에요. 안 그렇습니까? 이 철수목사
류시화님, 나무를 알려면 나무를 안아보라는 말이 있듯 시인께서는 간곡히 부탁하네요. 나무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보라고요. 나무처럼 흔들려도 보고 나무에 앉은 새소리도 들어보고 해질녘 너의 그림자와 나의 외로움이 만날 때 그 때서야 나무에대해 말해보라구요. 님의 말을 듣고보니 나무 한 그루가 선명히 보이네요 이 철수목사
뵙고싶은 윤 동주님, 우리는 흔히 새털 같은 허구헌 날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의 엄중함, 오늘 첫시간에 열린 새벽 빛 이 모두는 어제의 연장이 아닙니다. 차라리 어제의 어둠을 깨고 일어서는 새날 새 시간의 무대 입니다. 숲을 넘어 마을로 , 내를 건너 숲으로 가는 그 길은 어제의 길이 아닙니다. 오늘 새 마음으로 걷는 [새로운 길] 입니다. 시대처럼 올 새벽을 맞는 길 입니다. 이철수목사
윤 동주님, 당시나 지금이나 삶은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님의 상황에서 시가 쉽게 써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님의 발설은 [표현은] ,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니의 일생에 걸친 묵상주제 입니다. 불가에서는 화두라고 하던군요. 시가 쉽게 써진다.? 그 건 부끄러운 일이다? 참 많은 생각을 주네요. 나는 짧은 댓글도 생명을 걸고 답니다. 화답해 주는 분은 없어도. 이 철수목사.
김 수영님. 비록 거칠은 공간 이지만 , 사철 순하고 아득한 바람이 솟는 곳 ,죄없는 대화가 오가는 곳 , 각기 다른 것을 꿈꾸어도 오직 조화와 통일만 있는 곳, 우주의 위대함 따위는 유순한 입김으로 녹아 드는 곳 오래된 단면의 거칠고 억셈도, 낡을 수록 아름다운 사랑 뿐인 곳, 그 곳의 이름은 가족 입니다. 이철수목사
해인 수녀님, 맞아요, 인생이란 흐름 끝에 만나는 것은 가장 고귀한 정신적 가치인 자유 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찾기 위해 흐릅니다. 공부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자유만 있으면 그 것 또한 공허 합니다. 자유가 참 자유함이 되기위해선 속살이 벌겋게 드러나는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안그래요? 자유가 노랫말이라면 사랑은 음정이에요. 둘이는 하나에요. 세상 끝날 사람들이 서로 손잡고 노래를 부를 날이 있지요? 자유와 사랑의 노래를. 이 철수목사
원태연님, 처음 뵙습니다. 시어가 짧게 단락지어 흐르나 깊고 넓은 반전의 울림을 갖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온통 [없고, 없고 ]의 인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왜인지, 몇신지, 뭘할지]를 묻지 않았고 나 타 나 주 는 당 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타나 줌으로 모든 것은 환원 되었습니다 시에 나타난 모든 [없고, 없고 ]가 [있고 , 있고 ]로 변했습니다. 끝 연이 참 아름 답네요. 당신이 나타나 주기 전에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읽히네요 이 철수목사
김 광섭님, 어차피 별하나를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지요. 내가 그랬듯, 누가 나를 바라보네요. 우리는 다시 무엇이 되어 만나나요. 어느분은 말했어요, 어느 가문날 우리 처마끝의 빗물이 되어 서로 만난다면. . . . 얼마나 반가울까. 이 망망한 바램은 저절로 아득한 멜로디가 되어 우주를 채웁니다. 무엇이 되어 만나는 것이 아니라 [ 정다웠던 그 사이]로 영원히 다시 결합하는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철수목사
정 호승님, 유난히 물음표가 많이 보이네요. 사랑과 그리움을 위해 태어나고 자란 별의 고향을 묻네요. 아름다운 별빛을 고향으로 둔 시인은 행복하실꺼에요. 고향을 물을 적마다 사랑과 그리움은 더욱 애틋해 질테니까요. 그러나 실은 사랑의 만남을위해 거리를 걷고 추워 서 모닥불도 피워야해요. 어느 때는 새벽길걷기위해 마음에 칼날을 예비하기도 하네요. 그럴 때도 별빛은 그냥 그대로 별빛이었으면 좋겠네요. 이 철수목사
나 태주님, 원래 사람은 그렇게 창조되었답니다. 한 사람이 내게로 와, 사랑의 이름으로 내 안에 들어오면 세상은 온통 그 하나로 아름답습니다. 어마나, 그가 오늘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가면 도시는 텅빈 곳이 되겠네요 왜냐하면 당신으로 세상은 그득했으니까요 당신도 나 없으면 텅 비임이 되실 수 있나요? 이 철수목사
@@quietly_reciting 원래, 사람이 중한 존재 입니다. 한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채운다는 사실은 우주가 그득해 진다는 의미와 동의어 입니다. 나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 보다 말씀이 육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안에 계시고 그 분은 하나님 안에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온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니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은 창조되었습니다.
빈 집은 비어있지 않아요, 빈 집은 빈집의 방식으로 방안을 채우네요. 짧았던 밤과 겨울 안개 그리고 시인이 펼쳐 놓은 흰 종이들. 이제 열망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고 한 숨과 함께 흐르는 내 눈물, 그래요, 문을 잠그니 아, 내 사랑이 그득 방안에 갇히네요. 아직 온기가 있네요. 기 형도님을 그리워하며 이 철수목사
우리나라를 집어먹고 세상에 전쟁을 일으킨 일본 땅' 홀로 앉은 육첩 다다미 방, 창밖엔 비가나리네. 아, 고향 동무를 떠나 홀로 침전하는 이 시간.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 시대처럼 아침은 오누나. 나는 내게 손을 내밀어 굳세게 악수한다. 오, 멀리서 오는 아침이여./ 윤동주님을 생각하며 이 철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