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이 이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그는 갔다. 시련도 없는 곳으로 그는 갔다. 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그는 갔다. 저 부는 바람이여,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았던 소년을, 어떤 풍진도 모욕하지 못했던 시대의 순결을, 저 부는 바람이여, 이제는 어디에 가서 만날 수 있을까.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작은 봉우리, 작은 등선, 아니 그저 고갯마루면 충분하다고 나직이 속삭였던 사람.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여긴지도 모른다고 노래했던 사람. 바로 여기라고 하지 않고 바로 여긴지도 모른다고 읊조렸던 시인. 바람이여, 저 부는 바람이여, 데려가 주렴. 저 키 큰 봉우리들의 허상을 쓸어버리고, 우리들의 바로 여기로 그를 데려와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