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5세3세아이들 두고…. HR부서 다음주에 첫 출근이예요… 어떻게 시간관리를 해야하나 넘넘 궁금해서 유튜브보게ㅜ되었어요.. 저는 100프로 오피스 출근인데 넘넘 걱정이 되어요.. 아이들 아프면 어찌해야하나. 재택이 안되는 회사라서 이직준비하고싶은데 언제 해야하나 아지구아가랑 같이 자서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알람 맞추면 아기도 같이 깰까바 아침에 일찍일어나기는 어떻게 해야할지ㅜ넘넘 궁금합니다…
한류 현상에 대해 이제는 어리둥절해 하거나 믿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 사관과 중화 사대 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한류열풍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사와 해양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반도에 갇힌채 외세의 침략만 당한 것이 아니라 넓은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장수를 보내어 후한의 북평(현재의 북경),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하였다. 이에 후한의 요동태수 ‘채융’이 은혜와 신의로써 화친을 청해와 화친하였다.>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요동 변방의 맥인(고구려)이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략하였다.> [후한서] [동이열전] <구려(고구려)와 선비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침략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요수 서쪽에 10개의 성을 쌓아 후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입니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입니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습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동해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변한•진한인데 마한은 고구려요,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병이 100만 명이어서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 등 지역을 흔들어서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으며 수나라 황제가 세력을 잃은 것은 저 요동 정벌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위나라(북위)에서 군사를 보내 침공했는데 우리에게 패했다.> [자치통감] 영명 6년(488) <위병(북위병)이 백제를 침략했으나 백제에게 패했다.> [남제서] <백제가 위나라(북위) 기병 수십만과 싸웠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삭녕장군 면중왕 저근은 대대로 시무를 잘 도왔고, 무공도 뛰어났으므로 지금 가행관군장군•도장군 도한왕으로 삼았다.>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팔중후 여고를 아착왕, 건위장군 여력을 매로왕, 광무장군 여고를 불사후>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점거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점령하였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를 관중장군으로 삼고, 행정로장군 좌현왕 여곤과 행정로장군 여훈을 모두 정로장군으로 삼아달라>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백제에 22담로가 있었는데 모두 임금의 자제, 종족들이 나누어 다스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백제왕이 거주하는 곳은 동서 두 성이다.>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백제가 요서•진평 두 군에 거처했다.>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때 고구려는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소유하였고, 백제는 요서•진평 두 군의 땅을 점거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고구려에게 격파되어 쇠약해진지 여러해 되더니 남한으로 도읍을 옮겼다.>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송나라, 남제, 양나라 때까지 장강(양자강) 좌우에 있다.>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송나라, 남제, 양나라 때까지 장강(양자강) 왼쪽에 있다. 후위(북위) 때 중원에 터를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수서]에는 <백제에는 신라, 고구려, 왜인들이 나라 안에 섞여 있으며 중국인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백제촌, 백제향, 백제허>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백제향>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백제향> 안에는 <백제허>가 있다. <허>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백제향, 백제허>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백제허>를 <빠이쥐쉬>가 아니라 <대백제, 대박제>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 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Kpop, kdrama, kmovie 등의 한류열풍, 일본 의 무역보복에 대한 대처능력, 코로나에 대한 대처능력, G8 국가로의 진입 가능성까지 타진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우리 겨레가 갑자기 뛰어난 나라와 겨레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의 모습이 이제야 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고조선의 모습이고 고구려의 기질입니다 세계 4대 문명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내몽골 쪽에서 발견 되었는데 그 문명이 우리의 문명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시아 문명의 근원이 중국의 황하 문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보다 약 3천년이나 앞선 문명이 있었고 그 문명이 중국에 전해져서 황하 문명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 문명을 홍산 문화 또는 요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하 문명이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빛살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 고인돌 처럼 돌로 만든 무덤 등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인데 요하 문명에서도 이러한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우리의 조상들은 아시아 문명의 근원을 일구었고 고조선과 고구려는 아시아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것입니다. (홍익인간의 뜻도 우리가 문명을 주변 민족들에게 전해줘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수나라가 그렇게도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했으나 살수대첩에 의해 무참하게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당 태종 이세민이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고구려 원정을 단행했던 이유는 우리 겨레를 꺾지 않으면 아시아의 진정한 패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겨레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를 방치했다가는 중화패권주의를 이룰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나라도 전쟁에서 패하여 우리 겨레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우리 겨레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멸망으로 인해 그 위상을 잃어갔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에 대한 사대, 일제시대에는 식민사관에 의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잊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 식민사관에 의한 왜곡된 역사를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는 원래의 모습을 망각한채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DNA가 다시 우리의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시간이라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모습, 고구려 기질을 발휘할 때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중화사대사관과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우리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가능하며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00:00 Intro / Pre entering 유료전시장 입장 전 1:32 The 1st opening 입장후 첫 셋션 2:21 The 2nd section - 한국의 역사 Korean History 5:11 The 3rd section - 한국 드라마와 영화 K-drama & K-cinema 9:57 The 4th section - 케이팝 K-pop 14:15 The 5th section - 케이뷰티와 패션 K-beauty & K-fashion 15:51 HALLYU! exhibition real reviews 해외관객 반응 / 인터뷰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으로써 정말 행복하게 만든 영상입니다. 즐겁게 시청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제 인스타에도 놀러오셔서 런던 구경 하세요~ 아이디: londonkiki_lg
아이고 말만 들어도 힘이 불쑥불쑥! 감사합니다 ^^ 오늘 장례식 공휴이이라 집에서 장례식 시청하고 있는데 이제야 좀 실감이 난다랄까요.... 쩝.. 맞아요 찰스 3세가 왕이 됬지만 진짜 왕실의 미래는 윌리엄 케이트 부부에게 있다라고 다들 믿고 있는 분위기 랍니다. 앞으로 왕실의 미래가 어떻게 될찌... 새로운 챕터가 염려되면서도 기대되네요. ^^
0:54 서거 불과 몇일전 1:15 여왕님 서거 소식 들은 첫날 3:26 전국 십일 추모기간 National Mourning Period 3:48 지난 6월 여왕님 즉위 70주년 5:31 여왕님 장례식 5:40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에 관하여 10:29 새로운 왕 찰스 3세
런던 여행 한달을 앞두고 들린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6월에 있었던 플레티넘 쥬빌리 행사에 못 가서 너무 너무 서운했었는데… 이제 10월 중순쯤 가면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는 이번에 런던에 가면 그동안 못 가봤던 윈저에 가보려고 진작부터 계획을 세웠었는데, 마침 여왕님이 윈저성에 뭍힐 계획이라고 하니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벌써 확인하시고 댓글을 감사해요 릴리님 ❤️❤️ 솔직히 저는 다녀와서도 좀 현실같이 안 느껴지네요. 태어날때부터 늘 거기에 계시던 분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이라면 피할수없는 숙명… 그래도 참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꿎꿎히 강인하게 계셨던 정말 특별한 one and only 진정 존경받을만한 한 사람이자 여왕님 이셨던듯요
문해력의 중요성을 현실적으로 깨닫고 있는 11살 여자이이 엄마입니다. 어릴때부터 엄마와함께 놀이처럼 책을 읽고 너무 좋은거같아요. 저는 어릴때 그렇게 해주지 못했지만... 책읽고 독서록 쓰라고 협박하다시피 하는데 스토리북 저널도 너무 좋네요. 런던북스를 구독하기에는 저희아이는 나이가 좀 있지만 주연님 얘기를 바탕으로 다른방법을 좀 찾아봐야겠어요. 주연님 멀리서 항상 응원합니다!
영상에서 소개된 스토리텔링 클럽에 대한 정보는 위의 정보창 안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올리는 영국 초등 교육 관련 영상!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2:25 스토리텔링 클럽 소개 4:07 독서의 나라 영국, 이곳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이란? 5:00 책읽기는 정말 이를수록 좋을까요? 5:51 스토리텔링과 문해력의 연관성 7:26 스토리텔링 클럽 운영 시스템 14:35 신청하는 자녀의 나이대는? 15:24 늦게 시작할 경우 16:41 스토리텔링 육아법으로 책으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아이 17:53 런던북스 베스트셀러/추천 영국 도서 20:58 영알못 엄마도 가능할까? 22:54 스토리텔링 클럽 운영하며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구독과 좋아요★ 는 컨텐츠를 이어가는데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시는 디자인 비전공자 이시군요. 저도 비슷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은 다른거였는데 나중에 디자인 인스티튜트에 다니며 diploma degree (수료증/자격증) 공부를 했죠. 취업을 위해서는 전공자가 더 유리한게 사실입니다. 디자이너 뽑을때 대부분 학위 degree가 조건에 들어가죠. 비전공자 시라면 저는 디자인 학원/institute 에 들어가 자격증이라도 취득 하시기를 추천드리구요, 실전경험이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것이 매우 좋으니 인턴이던 자원봉사던 실제 대중에게 보여진 디자인을 넣으시길요. 학위보다 실무경험이 많은것이 더 좋습니다. 제 답변이 도움되셨기를 바래요. 응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