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께서 이미 잘 해석해주셨지만 제 생각엔 저 가석방 심사위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소자가 삶에 대한 의지가 있냐 없냐인 거 같아요. 20년, 30년째 심사 땐 레드가 스스로를 완전히 교화됐다고, 절대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죠. 교도소 밖으로 나올 때의 만끽할 자유에 대한 기대를 품고. 그러나 자유를 얻고나서, 그것에 익숙해질 거고, 그럼 점점 당연하다 생각될 것이니 자유를 얻은 기쁨과 만족감은 잦아들 거고 그러면 결국 다시 사회에, 세상에, 또 인생에 대한 불만이 피어오르겠죠. 그것이 으레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이자, 레드 자신이 교도소로 들어 온 계기를 다시 반복할 지도 모르죠. 심리학적으로든 통계학적으로든 심사위원들은 한 번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다시 범죄를 일으킬 소지가 타인들에 비해 다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겁니다. 그렇기에, 바깥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있는 재소자는 부적격자로 판단하는 거겠죠. 자유에 대한 기쁨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면 다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생기니까. 하지만 40년째 심사에서 레드는 그 가석방 심사 자체를 헛된 것이라 주장합니다. 교화가 됐냐는 물음은 그저 사회 체계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고요. 그 말을 시작으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후회해왔는 지, 그리고 그 어린 시절에 저지른 죄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진정성 있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교도소나 사회나 이제 나한테는 다를 게 없으니 쓸데 없는 짓 그만하고 빨리 거부 스탬프나 찍으라'고 종용한다는 건, 석방되고나서 누리게 될 자유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자유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자유에 익숙해질 일이 없다는 거고, 이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질 계기가 없다는 거죠. 밖에 나가서 그냥저냥 살든, 아니면 적응 못 해서 자살하든, 적어도 다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는 건 확실하니까요. 그래서 레드를 석방시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 생각은 자신이 교화됬다고 사회에 나갈준비가 되었다고 하는것은 나가고 싶어하고 또 자유를 원한다는 것인데.. 원래 자유인이었을때 그 자유를 책임지지 못해서 살인을 저질러서 감방에 왔죠.. 그러니 완전히 교화됬다고 나가도 된다고 말하는것은 그 자유를 이용해서 또 무슨짓을 할지 모르니 석방을 해주지 않는거죠... 근데 교도소 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수 없고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며 적당히 갇혀서 생활하는게 교도소나 사회나 똑같으니 나는 이제 교도소나 사회나 어디에서 살아도 별 상관없으니 니 맘대로해라 이런말은 아 이사람에게 이제는 자유를 줘도 책임지면서 살수 있겠구나 하면서 석방시켜주는걸로 보이네요
정말 쇼생크 탈출에서 보여주었던 모건 프리먼옹의 연기는 그 당시에 제가 봤을때도 이게 한 인물의 캐릭터의 연기인지 실제 그 인물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긴 연기였고 정말 몰입이 되서 보게 되더군요.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쇼생크 탈출을 방영하면 보게 되고 또 보게 되고.... 그냥 자연스럽게 채널 돌릴 생각도 안나고 보게 되더군요. 나이를 먹어가며 볼 때마다 느껴지는 프리먼옹의 연기는 아카데미상도 부족하다~ 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되었고.... 저 레드라는 캐릭터는 프리먼옹외에 어떤 연기자가 와도 대체 불가라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팀 로빈스님도 앤디라는 캐릭터를 살려내는 연기를 정말 잘 하셨지만.... 이 영화는 모건 프리먼옹이 더 살려놓은 영화라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프리먼옹이 아무래도 연배가 높은 배우다보니까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겪었던 어떤 사회적 차별이나 인고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람이 겪었던 인생의 풍파까지 자연스럽게 영화속에 한 캐릭터를 통해 녹아내리게 한다고 할까요? 정말 사람의 인생에서 인간의 고락이 모든게 담겼던.... 정말 지금도 좋아하는 명장면이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 정말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사실 교화됬다고 하는 말을 믿으면 바보. 히틀러와 6시간이나 얘기했던 챔벌린보다 히틀러를 직접 본 적이 전혀 없던 처칠이 히틀러를 훨씬 정확히 파악햏던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뀌었다. 반성하고 있다. (X) 나는 그 때 그 어린놈이 싫다. (O) 처음과 두번째에 레드는 본인이 바뀌었고 나갈 자격이 있다고 말함. 헌데 내가 변했다고 범죄를 저지른 본인이 주장하는건, 아직 과거 범죄를 저지르던 레드의 시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임. 범죄자의 시점에서 스스로가 반성했고 변했으니 얼른 나가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레드는 변한게 아님, 그가 하는 대사 또한 자신이 더이상 위험하지 않고 나갈 자격이 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춤. 마지막 레드는 과거의 레드를 '옛날의 그 멍청했던 놈'이라며 완전히 타자화 하고 그 시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얼른 감옥에나 들어가겠다고 말함. 이건 과거 범죄를 저지르던 시절의 자신을 이해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자신의 업을 받아들이게 된 것. 전자는 범죄를 저지른 레드와, 20년이 지난 레드 둘이 동일한 인물인 상태에서 스스로 바뀌었고 재사회화 되었으니 내보내 달라고 주장하는 거라면, 후자는 아예 과거의 자신을 몰이해함으로서 진짜 다른 인물이 된걸 증명 함. 대사도 이제 반성하고 싶어도 그럴 수 조차 없다고 이야길 함. 본인에 대한 변호를 하거나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타자화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담담하게 후회를 하는 것. 내가 착해졌고 반성했으니 나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범죄자랑, 내가 병신이었고 여기 있는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된 사람의 차이.
사람은 진정성을 볼 순 없다.그건 삶에서 어느누구에게 다 똑같은 말일터,단 여기에서 주는 메시지는 아첨하고 가석방 받을려고 교화되었다고 말했을때랑 몇번 실패 후 어차피 똑같은 형식에 의하여 부적격 판단을 또 하겠지 하고 심사위원 앞에서 당당하되 자신의 과오를 하나하나 말하면서 자신의 어린시절 자신에게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면서 그 어린 녀석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의 자신만 남았다 말할때....가석방을 안줄 수가 없었을듯...
처음엔 욕심에 의한 조급함 두번째는 순흥함에 의한 익숙함 마지막은 모든것이 부질없음을 뜻하는거로 보입니다 내려놓아서 이루어진것이 아니죠 sit 앉아 가축이나 노예에게 하는걸 sitdown 앉아요 어린이나 하인을 대하듯 한것에서 마지막에 않아주세요 로 변한것이 정말 중요한것을 알게되고 자존감을 되찾은 상태라는 증거로 보여집니다 그증거로 마지막에 니들 하고싶은대로해라 라는 태도로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거죠 그리고 그감옥은 자신이 만들고 있었다는것도 내포하는것 이죠
여러번 보면서 레드 전에 먼저 가석방됐던 브룩스 할아버지 출소 장면은 카메라 앵글이 쇼생크 방향을 비추고 레드의 가석방 장면은 쇼생크를 등진채 세상을 비춘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희망과 삶의 역학은 레드를 진정한 삶으로 이끌고 마침내는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한다 교정을 울리는 피가로의 결혼, 한순간의 자유란 짜릿한 감각을 일깨워 준 앤디의 더할 나위 없는 평온한 표정은 이제 중년이 된 시점에서 보니 더 눈물나게 아름다운 장면이다 명작이고 누구에게 추천함에 손색없는 명화
포레스트 검프도 10번 넘게 본 명작이긴 하지만, 좀 과장과 비약이 심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쇼생크 탈출이 더 훌륭한 작품이란 생각이 드네요. 검프란 인물은 사실 남들보다 지능이 조금 떨어질 뿐, 여러 모로 봐서 약한 인간은 아니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달리기, 미식축구, 탁구, 총조립, 전쟁에서의 생존, 새우잡이 사업 등등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죠. 그런 사람을 단순히 바보로 설정해서 공감과 감동을 유도한다? 크게 공감되지는 않는 듯.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시험치러갔을때와, 무식하게 공부하고 임계점을 넘고나서 시험보러갈때의 차이. 결국은 다른 대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얼마나 거짓말하지않고 질문했는가, 그 질문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려했는가라는 점이 석방과 가석방, 합격과 불합격을 가른다.
이 영화를 어린 시절부터 적어도 수십 번은 본 것 같네요. 애초부터 누명쓰고 감옥에 온 앤디와는 달리, 레드는 강도살인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오게 된 것이죠. 그리고 감옥 안에서도 밀수해서 담뱃값 챙기는 등 어쨌든 불법을 저지르는 인물이죠. 모건 프리만이라는 배우가 워낙 푸근한 인상에 선한 배역을 많이 하다가 보니 앤디와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극중의 레드는 죄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지요. 그러나 앤디 듀프레인과 약 20년간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그의 의지와 인격에 감화되어가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0년 간의 감옥생활 후 자신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진정으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겠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하고서야, 그리고 그 진심을 거칠게나마 표현하고서야, 그것이 가석방 심사위원들에게 비로소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그나저나 마지막에 멕시코 해변가에서 앤디와 재회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뭉클하지요.
40년 가석방 심사에서 진짜 머리 띵한 대사는 내 시간 빼앗지말라는 것... 교도소 같이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인 곳에서 40년 복역동안 3번째로 찾아온 가석방 기회에 대해 시간낭비라고 일갈할 정도면 그게 현자지 아마 시대에 따라 많이 바뀐 심사관도 그저 교도소 밖의 한 노인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서 교화됐다 판단했을 거라 싶음 물론 극중 레드의 심정은 미약한 하모니카 소리와 같은 희망과 브룩스처럼 이미 교도소 생활에 적응되어버린 백발의 본인을 봤을 때 나가기 두려운 맘도 있어서 그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거라고 생각함 근데 그 뭔가모를 담담함, 뭔가모를 두려움과 방어기제를 모건프리먼이 그가막히기 표현한듯 ㄹㅇ
개인적으로 이미 레드는 가석방되는 방법을 알고있었던듯 함 심사가 끝나고 그의 동료들이 축하한다고 하며 당연한 결과였다는듯 웃는 레드 모습이 아 일부러 연기를 한거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나서 앤디가 탈출하고 나갈 이유가 생기고나서야 지금껏 생각해왔던걸 솔직히 표출했던거 같음 마지막 시대흐름 생각지도 못했는데 재밌었어요~
1차 : Sit(앉아요)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나이가 많고 자세도 딱딱함. 레드에게 딱딱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임. 2차 : Sit down(앉으세요) 1차때처럼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자세는 살짝 편안해보임. 심사위윈중 한명이 유색인종. 레드에게는 전보다 말투가 부드러워짐. 3차 : Please sit down(앉아주세요) 심사위원중 한명이 여성이고 대체로 나이가 젊음. 처음으로 레드의 본명을 부름. 자세도 1,2차와는 달리 세로로 앉은 사람이 있음. 바깥사회가 제법 변했다는 복선이 있음.
예전 삼류 만화에서 가석방 도장 찍어주던 놈 속마음을 "이렇게 마음에 쌓인게 많아서 가석방 담당관에게 내지르는 싸가지 없는 새끼는 감옥에서 먼 일 저지르기 전에 빨리 바깥에 내보내서 햇빛 보게 해야해."라고 웃기게 재해석하던데 지금 이렇게 그 장면을 다시 보니 패러디이지만 딱히 틀린 거 같지 않아 보여서 또 헛 웃음.
법이라는 테두리안에서 가석방심사 자체가 형식적인 관례, 관행?이라는 것. 죄수의 대화 내용, 자세, 태도 이런 것들이 가석방 여부와는 그닥 관계가 없으며 법에서 하라니까 하는 공무원들의 뻔한 일처리? 같은 것에서 가석방의 기준은 우리 모두 생각하기 나름의 영역이라는 겁니다. 열린 해석이죠.. 답글
가석방은 개뿔 애초에 내보내줄 생각도 없었던 거라 생각함 최악의 범죄자 한테 나갈 수 있다는 또 다른 희망고문 같은거지 형량과 같은 형벌. 레드가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이 들고 연약한 노인이였기에 나갈 수 있었던거고 마치 난 이런 짓을 하기엔 늙었어 라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해서 사회에서 딴 생각 못 하게 하려는거 아니였나 하는 그런 생각.
죄의 댓가는 개인이 원한 만큼의 양의 아니고 그 이상의 형량일듯. 내면적 고통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있을듯. 희망이 고문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통해, 죄의 댓가를 치루는듯 보임. 가석방 심사의 목적이 고통을 주려는 과정, 댓가를 치루는 과정인듯. 자유는 한정된 공간,시간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누릴 수도 있을듯. 교도소 안에서 자유를 찾고 안락함을 느낀 순간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다른 고통을 일으킬 가석방으로 연결된듯. 종신형의 의미를 살린 가석방인듯. 누구든 자유를 원하면 죽기 전까지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잇으나, 사회는 질서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밖에 없는 영역도 잇는듯. 전혀 근사해 보이지 않은 역할의 배우는 연기를 훌륭히 잘했지만 평범한 인간의 삶을 특수한 환경에 담았을뿐.
감성적으로 해석할 필요 없습니다 흑인차별이 엄혹했던 시절 애초부터 흑인 범죄자를 가석방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0대에 들어와 50대가 될때까지요ㅎ 그리고 60대 노인이 되어 이빨 빠진 흑인 노인이 되서야 가석방을 승인한 이유는 노인이 된 수감자는 병들고 케어하는데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장례비용까지요 그러니 쓰레기 버리듯 사회에 내보내는 겁니다 이게 팩트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