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때 마다 눈에 눈물이 그렁 합니다. 20대 꽃 다운 나이에 논산 훈련소입소 건강상 귀가 조치 일 년 반 후 재 신검 현역받고 102보충대 재 입소 재 신검에서 귀가 조치 2년 후 방위병으로 재 입대 18개월 근무후 제대 하였습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늦은 입대에 설움도 많았고 머리카락 좀 길라치면 재 입대 또 재 입대 내 청춘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40대 중반까지도 꿈 속에서 병역기록 잘못됐으니 다시 입대 하라는 우편물에 난 제대 했노라고 항변하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원망보다는 지금도 내 조국을 사랑 합니다.
먼저 사랑 하시는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저는 교인도 아니며 꿈도아닌 현실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만나 이분들의 사연과 저를 만난 사연을 2시간40분 동안 듣고 보고 대화한적 있습니다 이 이후로도 세번의 현실 경험을 더 했구요 빈집에 두번이나 화재가 발생 했을때 두번다 돌아가신 조상님 께서 제 귓가에 속히 집으로 돌아가라 알려 주셔서 돌아가 불길 번지기전 연기만 가득했던 상황에 발견해 두번의 큰 화마 모면 했구요 제가 사고로 100% 죽었을 상황에 사고순간 돌아가신 어머니 께서 제앞에 나타 나셔서 알려 주신대로 행동취해 가벼운 타박상만 입고 목숨 구했다면 믿으실수 없겠죠 모두 꿈도아닌 현실에서 격은 일인데요 우리가 한번살다 죽으면 모든게 다 끝인줄 알고들 살지만 아닙니다 저는 현실에서 직접듣고 보고 격었어요 신의존재 영혼 사후세계 천국 지옥이라 말하는 그곳이 가설아닌 현실로 정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요 선생님 돌아가신 어머님 그리워 하시는 마음이 마음 아프고 저도 10남매 7남3녀중 막내인데 부모님 두분다 돌아 가셨어요 하지만 저는 알수없는 이유로 4번이나 현실에서 그 누구도 믿기힘든 일을 격었기에 사후의 일을 알고 있기에 죽음 또한 두렵지 않고 사후 만난것을 알기에 마음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께서도 모르고 사시지만 훗날 어머님 다시 만나십니다 분명 선생님 께서 직접 현실에서 격으신 일이 아니기에 믿기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훗날 마지막 가시는날 사후 모든일을 아시게 될거예요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저는 교인도 아니며 무속인 사이비 등 이런 것과는 아무 연고없는 평범한 사람 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올해 58세 남성 입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녹봉 받고 있지만 대한민국 공직자들, "발상의 전환" 이 필요합니다. 저는 80년대 중반 강원도 산악부대 출신이다 보니 "전선을간다" 가슴에 와닿는 군가네요. 이런 진주같은 멋 진 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제발 눈여겨봐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군가 정말 최곱니다. "나비드" 님 파이팅~~~
40년도 넘은, 기억을 소환 하는군. 돌아보면 엊그제 같은데...점호시간 음치인 내가 지목되어 이 군가를 부르면, 웃음을 참지못하고, 결국 단체로 머리를 박던 전우들도 이젠 머리가 허옇게 변해가겠지. 잘 들었소. 다비드씨... "내마음은 당신곁으로" 는 언제 불러 주려나.
내가 국민학교 5,6학년 학예회때 세일러복을 맞춰 입혀서 무대에 서게 해주셨던 우리 조부모님깨서는 지금 내나이보다 젊어셨을때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6.25전쟁 얼마후 라 어려운 시기 였는대도 어린 손녀가 뽑혀서 율동을 한다는게 자랑스러우셨던지 기뻐하시던 어른들이 기억 납니다. '마스게임' 연습을 위해서 외부에서 무용선생님을 모셔와서 방과후마다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던 그 '전우야 잘 자거라' 들으니 정말 감회가 새롭고 또 고맙습니다 우리는 누가뭐래도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자랑스러운 대한의 용감한 아들딸임을 부끄럽지 않게 삽시다 충성!!!
우리 아버지 28년생 용띠세요. 가난하게 사시다가 일본 탄광에 징용 끌려갔다가 탈출, 정신병자 행세하며 구사일생 살아 돌아오시니, 다시 625 전쟁 참전하셔서 허벅지 총상, 파편상 당하시고도 5년 만기 제대하셨네요. 그때 하도 포탄소리를 많이 들으셔서 귀를 잡수셨어요. 지금도 고향에 살아계시지만 이 아름다운 군가는 들으실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40여년 전 멸공의 횃불 등 군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80년2월 초 백두산부대 21사단 65연대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 훈련소에서 8주간 훈련을 마치고 4월 초 66연대 4대대 13중대 도솔산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으며 눈이 오면 제설 작업. 비가 오면 도로 작업. 화목 작업. 사단 문선대의 포상휴가. 유격훈련 월운 저수지 건너편. 사격훈련 PRI. 대대ATT. 소양강 도하훈련. 연대RCT를 받으며 그해 가을 가칠봉 밑 4기지 방책선에 투입하여 6개월 간 근무를 마치고 절터부대로 하산. 펀치볼에 제4땅굴 발견 전 갱도 파견 근무. 만대리 오유리 현리 동막동마을의 추억. 절터부대로 철수. 18개월 후 4기지에 제투입 방책선에서 전역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루의 중동 생활이 님과 비슷한 코스입니다. 저는 전역 후 10여 회 이상 펀치볼마을를 방문했는데 당시 현3리 1반 민간인 친구분들 민병준님 안봉주님 김병환님 이종훈님 허진영님 등 그리고 그때의 전우님들이 모두다 그립습니다.
군가 오랫만에 들으니 국가가의 중요성이 생각남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과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을 볼때에 우리도 자주국방으로써 미사일 사정거리1500km 개발과,핵도 가져야 되겠음니다 언제까지 미국만 의존할수 없을꺼고 계속되는 북한의 핵위협속에 지내야 되는 한국의 미래가 답답할뿐임니다 늦을수록 방해와 협박땜에 군비증강은 어려워질것이고 지금부터 대비를 해야 된다고 봄니다(개인의견)
젊은 처자가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군 시절의 군가를 불러주니 너무 고맙네요 40여년전의 군생활이지요 이제는 군인들이 미국처럼 대한민국에서 장당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2번의 군사 구테타로 인해 군대에 대한 국민의 이지미가 많이 실추된 상태인데 이제는 대한민국 군대를 다시금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군인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