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정치가 문제지 경제는 분배문제로 항상 나라가 절단이 나지 경제자체가 어려워 절단나는 경우는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음 조선도 조총빼고는 화약무기가 얼마나 발전했는데요 선조가 똑바로 전쟁대비만 했어도 조총은 커녕 왜군 얼굴도 보기전에 화포로 다 아작낼수있었음 정치가 중요함 지금 굥을 보면암
이치 전투가 힘들 수 밖에 없었음 그때 이치 전투 하기 전에 이미 웅치가 함락되어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맞나?)의 일부 병력이 이미 전라도의 주성 전주성으로 가고 있었음 그래서 이치에서 막지 못하면 전주성까지는 다이렉트였고 그 이후 전주성이 함락되면 전라도는 점령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음 그러면 이순신의 전라좌수군도 위험해지니... 이치전투는 거의 벼랑끝 전투였음
저번에는 12편을 모음으로 해준던데 15편이상으로 늘렸네요. 드라마를 모아서 한 싸움을 드라마로 교차되서 하는 것도 좋을 꺼 같네요. 예를 들어 한산도대첩에서 임진왜란1592, 징비록, 불멸의 이순신, 행주대첩은 징비록, 불멸의 이순신 이렇게요. 징비록 결말은 무엇보다도 감동적이므로 업로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0회여서 아쉬운 드라마
사실 왜군은 병력이 10배가 넘었는데도 불구 그냥 인해전술마냥 닥돌하다가 망한 전투. 그에 반해 조선군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굳은 결의가 있엇기에 이겨낼수 있엇지. 물론 유리한 고지에서 싸운것도 있지만 당시 조선군이 가지고 있던 최첨단 무기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고. 이 전투의 여파로 왜군들은 결국 한양 버리고 철군할수 밖에 없엇음. 물론 권율도 행주산성에서 계속 버티기는 힘들엇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더 유리한 파주산성으로 옮기게 되고...왜군들은 파주산성 쳐보려고 간만 보다가 다시 줄행랑...진짜 행주에서 패했으면 전쟁의 흐름이 크게 바뀔수도 잇던 중요한 전투.
역시..... 전쟁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대포인 것은 저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의 군이 천하무적이었던 이유도 포병대였고 나폴레옹의 몰락 이유도 러시아 원정에서 그 강력한 포병대가 와해되고 엄청난 대포도 다 뺏겨서이니까 말입니다. 지금도 크레믈린 궁의 무기고 (박물관으로 쓰임) 앞에는 그 당시 프랑스군에게 노획된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mayli5206 때문에 일본군은 벽제관 전투, 행주 대첩 모두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름만 총사령관이었지 실제 전투 작전 입안 및 총지휘를 백전노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수행... 그러니 행주 대첩 때 우키타 히데이에가 중간에 피격당해 드러누운 상황에서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계속 지휘했던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