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 하루미(본명 李春美)출생 1948. 02. 22. (12:00) 일본 엔카계를 대표하는 가요계의 거물이다. 본인은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인2세 일본인이다. 미야코 하루미의 아버지 이종택 (李鐘澤 / 1904~ 1987)은 성주이씨 가문으로 1904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 일본 교토의 비단 명산지인 니시진(西陣) 으로 이주하여 직물기술자가 되었다. 아버지 李鐘澤의 일본 이름은 마츠다 세이지(松田 正次) 이며, 아버지가 운영하던 직물공장에 여공으로 일하던 마츠시로 (松代 1919~2005)와 결혼하여 얻은 딸이 [미야코 하루미 都はるみ]다. 그녀는 1948년 2월 22일 교토에서 태어났으며 어릴때부터 [키타무라 하루미]의 이름으로 살았고 교토시립중학교 졸업식때 졸업증서를 받고서야 본인의 이름이 이춘미(李春美)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미야코의 한국이름을 이춘미(李春美)로 지어놓고 조센징이라는 차별을 염려해 딸에게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 그녀의 첫 출발은 1963년 제14회 콜롬비아 전국 가요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64년에 [앙코츠바키와 코이노하나]를 발표했는데 이곡이 일본 열도를 발칵 뒤엎어 놓았다. 이 곡으로 일본 레코드 대상과 신인상을 휩쓸어 버렸다. 불과 그녀의 나이 16살이었다. 그녀가 발표한 [앙코츠바키와 코이노하나 / 앙코 동백은 사랑의 꽃] 은 엄청난 흥행을 몰고 밀리언 셀러가되는 역대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가수로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