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가 남자로 변하였다는 얘기는 소서노가 직접 갑옷을 입고 (변장을 하고) 다섯 장수(세력)과 함께 10명의 신하들을 치러들어 갔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뜻인것 같네요~ 10명의 신하들이야 후세에 역적의 무리들로 읽혀질수 없으니 그 흔적을 지우려 노력했을거구요~~ 암튼, 흥미로운 사실이네오~~
@@user-gk5lw1xn8y 일본서기를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도 식민지급 일본역사던대 전세계 중국기원설에 대한 도전이다. 둘이 신나게 싸워라. 님같은 사람이 역사서를 남기면 후세사람중 님처럼 멍청한놈이 그 역사서를 읽고 왜곡함. *한국이 인도에 자주포를 수출했다=수백년후 님처럼 멍청한 해석은 인도는 한국속국이라 무기를 지원했다로 해석하고 *일본에 스나미피해로 정부가 수십억을 지원했다=한국정부가 속국 가난한일본에 원조를했다로 해석하는거지. ㅋㅋㅋㅋㅋ
이거 예전 90년대초 하이텔 게시판에서 몇개월간 여러 사람과 이와 관련된 토론을 한적 있습니다. 그때 백제 왕가 교체설까지 나오고 토론이 꽤 길었었지요. 비류만 우태의 아들이고, 온조는 추모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태와 추모가 사실은 형제인데 당시만 해도 흔한 풍습이었던 형사취수제로 인해 사망한 우태의 부인이자 형수인 소서노를 취했다라는 의견도 있었죠. 그외 다른 의견으로 우태가 갈사국의 왕인 갈사왕이라는 설도 있었습니다. 갈사왕은 동부여의 대소왕의 아우이자 금와왕의 막내아들이지요. 이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기록에도 있는것이고... 왕가교체설중에는 우씨가 고이왕때 많이 등장을 하는데 이로인해 고이왕이 실은 '우씨'이고 온조왕계의 '부여씨'와는 다른 왕가였다는 의견등도 있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쓰여진것은 고려시대입니다. 이전까지 제대로된 역사서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요. 그래서 1,2설이 나오는 것이겟죠.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봤을때 2설이 유력해보이네요. 백제의 시조가 누구냐 하는것은 사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것이 아닌가 합니다. 국가로 발돋움하기까지의 발전시기니 만큼.
늘 그렇지만 또 한번 생각치도 못했던 이슈에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 언젠가 원균의 진실에 대해 다뤄주실 수 있을까요? 이순신 장군의 명성에 가려 너무 허접한 인물로 전락됐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내놓을만한 무장이었고 억울한 평가를 받은 면이 크다고 들었어서요. 청화수 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소서노의 정변설>>고대엔 큰 사건이 일어나려면 먼저 이상한 징조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노파가 남자로 변한다거나 호랑이가 성에 난입했다는것은 괴변을 의미하는것이고 이러한 괴변은 곧 소서노의 죽음을 나타내는 징조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그만큼 소서노가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수메르의 점토판을 예로 들어보자. 기원전 4-5천년전의 역사도 소소하게 다 정리해놨으며, 각종 신화들도 아주 상세하게 정리해놨다. 이집트의 가공할만한 건축물들을 보자. 그 규모는 현재의 기술로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잘났다는 우리민족은 도대체 뭐가 남아있나? 옛 조선 (고조선)이 우리 민족의 첫 국가라고 하면서 지금 남은 기록도 변변찮고, 유물조차도 기껏해야 비파형청동검과 고인돌이다. 도대체 뭐가 있나? 게다가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며, 그 마저도 식민지사관 반도사관 모화사상에 젖어있다. 한마디로 한심한 민족이다.
@@user-fd5yc6gx4x 너 혹시 옥기시대라고 들어보기는 했냐?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이런 시대분류나 들어봤지? 하지만 우리민족의 근거지였던 산동반도 이북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옥기문화가 발달했었다. 그것에 대한 규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몇몇 연구자들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식민지사과 반도사관 중화사상에 젖어있는 것들이 아예 연구실적조차도 애써 파묻어버리고 있다. 뭘 알고 좀 지껄이거라~~ 아침부터 개빡치게 만들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