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훈-d1y 뭔 소리야 베이징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 수도였는데 그래서 북경이라고 부르기 전에 연경이라고 했음 우리가 아는 고조선 지도는 세력권이지 영토가 아님 베이징이 고조선 땅이였으면 히틀러가 독일인이 사는 곳은 모두 독일인의 생활권 레벤스라움이니 정복해야한다랑 말이 비슷하잖아
밀같은 곡식류를 심어서 재배후 먹어보면 압니다. 그냥 못먹습니다. 처음에는 야생밀이나 곡식을 생으로 씹어먹었고 곧 이것을 넓적한 돌에 기름이나 물에 넣고 구워지면, 그것을 씹어먹었던 유골이 발견됩니다. 그러다가 토기가 발명된후, 땅을 파고, 장작과 불씨를 넣고 그 구멍으로 공기가 순환되면, 불이 잘타는데, 이때 진흙으로 밑둥이 볼록한 토기를 놓을 자리를 만들면, 그게 오븐이되었고, 그곳에 물을 부어서 끓이면 냄비가 되었습니다만, 뜨거운 토기를 꺼내서 먹기보다는 밑둥이 오목하거나 평평한 국을 담는 그릇도을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해안가에 가까운 부락이였다면, 대부분 조개나 물고기를 끓여서 국물로 많이 먹었던 흔적이있습니다. 토기가 발명되기전까지는 곡식을 물에 불려서 구워먹거나 짐승 지방으로 튀겨먹기도했습니다(이건 물이 귀한 지역에서 원주민들 곡식 요리법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인과를 따져보면, 곡식을 불에 그슬려서 먹었던게 처음이였고, 물에 불려서 먹었다면, 곡주가 먼저 나왔을것이고, 곡식을 건조시킨후 빻아서 도우 처럼(이집트 에이시) 반죽해서 토기에 구워먹는 형태는 나중에 나옵니다. 거기에, 발효시킨 술과 짐승의 젖을 첨가하여 반죽해서 구우면 부드러워지고 더욱 맛이 증강되는것도 이집트 시대 이후로나옵니다. 몇천년전에 죽은 알프스의 아이스맨의 위장도 검사했을때, 밀,풀,자두,야생사슴 고기같은게 나옵니다. 이렇듯, 곡식종류는 비상식량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매우크며, 사냥이나 유목이 아닌 농사같은경우 비상식량이자 비축해두고 먹는 주식이였을겁니다.
절은 과거 일반인의 집을 조그마하게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규모 있게 조성을 할 수 있었으며 자금이 있으면 더넓게 영역을 넓힐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라고 보면 됨, 여기가 왕성이어도 그냥 절이다. 국사(대사)를 파견하는 것도 일도 아니다...앞에서 껄떡 거리는 시방새를 봤냐.저런 행사도 얼마 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