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너무 다르지 않은 국방외교, 덤으로 북한, 다르다면 우리 국격이 훨씬 높아졌지만 모두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정글법칙은 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어지럽고 외로웠던 구한말을 살아낸 우리 선조들이 가엽네요! 선생님 덕분에 외면만 햇던 우리의 역사를 다시 보게 됩니다! 진정 감사 드립니다.
ㅋㅋㅋ 강의 잘 들었습니다. 저도 오랜 기간 외국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중국어 강의를 할때 역사를 워낙 좋아하는 탓에 우리나라 역사 얘기를 중간 중간 했었는데. 잼나게 하지는 못했던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하시는 동영상 보고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저도 야사를 접목시켜 설명은 했지만 강한 어조로 잼나게는 못했네요. '졸라게'^^넘 잼 나네요. 한국에 첨 와서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졸라리 라고 하길래 그말이 넘 웃겨서 무슨 뜻이냐고?물었더니 아주,또는 완전.등의 의미라고 해서 젊잖은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귀엾게 들었던 '졸라리' 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했다가 엄청 혼났던적이 있어 그 단어를 잊고 있었는데... 강의하는 중간에 이런 강한 어조와 단어가 넘 넘 잼나고, 지루하지 않아서 저도 강의할때 활용해볼까나. 생각 해봤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관점이 저랑넘 같아서 진진하게 강의를 들었는데, 옆에서 같이 듣던 어린 딸이 엄마랑 진짜 같은 말을 하네. 하더군요. 학교에서는 역사 얘기를 딱 교과서로만 하고 특히 민비도 미화시켜 수업을 하다보니, 딸아이가 제가 설명해주면 선생님은 민비라고 하면 안된다고 했다고 엄마는 왜 욕하는데...하곤 했는데. 이 강의를 듣고는 엄마말이 맞네. 하네요.오늘 강의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톡 가신다고 하니 훈춘까지 가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물론 훈춘을 알고 계시겠지만, 북중러 접경지대인 훈춘까지 버스로 넘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우수리스크, 크라스키노까지 거쳐가면서 느끼는 점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직접 그 허허벌판을 버스로 이동하며 느껴지는 지난 선조들의 힘겨움과, 북중러 접경지대인 방천에서 느껴지는 답답함. 많은 분들이 경험해보셨으면 해서요
폐하, 요즘 신이 기침이 심해서 궁에 입궐을 하지 못했사옵니다. 폐하께서 내려주신 비답을 어찌 받아야 하나 몇 일을 고민하면서 겨우 한 획씩 읽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신을 생각하는 하해와 같은 마음과 쉬는 것을 윤허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모잘라 신의 불충을 용서해 주시니 그 광대무변한 은혜에 몸둘바 모르겠사옵니다. 그러나 폐하, 기침을 핑계로 정사를 멀리하는 신의 불충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저 자신 스스로가 아는 바, 부디 숨길 수 없는 불충을 부디 용서하지 말아주시옵소서 그것이 신의 진심이옵니다. 폐하를 위해 일백번 만백번 죽고죽어 백골이 진토가 될 지언정 신의 허물이 폐하께 번지다는 사실을 두고볼 수 없나이다.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몇 일 후,, 궁에 입궐하여 조회시간 알레르기성 기침을 참지못해 ‘에헥에헥’하는 순간, 순간적인 관심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khd5031 고종은 의의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근대화에 자금을 매우 많이 투자했조. 허나 외국의 간섭이 문제였고 이미 영-미는 일본편에 든지 오래였습니다 물론 그레이트 게임 떄문에 프랑스가 조선편을 들고 조선도 그에 맞춰 고종이 프랑스제 무기,방식 미군 장교등을 가저오고 회사도 짓는등의 노력을 하였지만 시대는 시대였고 이미 국제사회는 일본편에 든지 오래였습니다.
역사 강의 잘 듣고있습니다. 명쾌한 논리와 연구결과를 유튜브에서 쉽게 접한다는 게 감사한 일입니다.그래서 때로는 강연자가 대본없이 할 수도있고 그로 인해 약간의 감정도 이입될 수 있는 것인데 과격한 댓글도 있는 거같아 좀 그렇습니다만 지금까지 해오신대로 밀고나가시면 좋겠습니다.유료 시청도 아닌데 강연자의 개성과 스타일을 탓 한다면 그 것은 예의가 아니죠. 마음에 안들면 안보면 될터이고요.애정 있는 사람들이 바른 지적과 시정을 요구한다면 더 좋은 영상과 강의를 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감정적 접근은 건강한 시청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user-yl8wv9gv9v 정확히는 "조약"이라는 개념은 알았지만 근대적 형식의 조약을 몰랐던 것 그리고 미국한테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 주면서도 조선이 얻은것도 있는데 하나가 거중이고 하나가 관세였음 (방곡령을 내릴떄 통보없이 해도 됨도 있었는데 조선은 이후 일본한테 방곡령 명분으로 협박도 하고 방곡령 내려가지고 일본에서 엄청난 식량적 타격도 많이 입게하는 식으로 씀)이후 일본한테도 관세 매기는걸로 조약이 개편됨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영상 계속 챙겨보는 학생입니다 이 영상 주제와 관련이 없지만 혹여나 보실까요 싶어서 여기에 여쭤봅니다 제가 역사를 보수 유튜버들한테서 많이 배웠는데요 선생님 영상보며 깨달은게 많습니다. 선생님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우리나라의 좌, 우의 주장을 나누어 설명해주시는 주제를 해주실 수 있으실련지요 선생님 께서 해주신 강의를 꼭 듣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약을 가정하여, 1875년에도 여전히 대원군이 집권했더라면 (운요호 사건)으로 불리는 일본의 1차 침략은 병인, 신미양요 때처럼 막아낼 수는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거리 상 조선과 가까운 일본이 그냥 물러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분명 2차, 3차 소요를 일으켰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 때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드네요. 그리고 저 역시 청나라 관리인 황쭌쏀이 진정 조선을 위하는 마음에 (조선책략)을 집필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나름 조선의 종주국으로서 약간의 도움을 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조선을 열강들에 대한 견제 및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번 강의도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최혜국대우에 대해 한마디 올립니다 국사전공이셔서 설명이 맞을거지만 제가 알고 있는 최혜국대우란 대상국가가 경제적활동을 제재가 거의 없는걸 보장해주는 조약인줄알고 있습니다 무역이란 일대일조건인데 그걸 깨는게 최혜국대우죠 장사활동을 해도 제재가 없으니 독점하기 쉽고 세금에 대해 혜택이 있으니 물가를 제맘대로 할수있고 경제적인 불평등 조약이라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