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귀가 일치한 세 명의 전사자! 그 비밀을 파헤치다 | KBS 다큐공감 20140624 방송 묘비에 "1953년 7월 27일 화천 전사”라는 글귀가 일치한 세 명의 전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회차 정보: KBS 다큐공감 20140624 방송 #다큐 #diaspora #전사자 #정전 #전쟁 #한국전쟁
전쟁은 참 미친짓이다. 죽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군이 점령하든 적군이 점령하든 ? 결국 사람은 일하고 밥먹고 결혼하고 자식두고 똥누고 세대를 이어가며 살아갈 뿐이다. 이념을 사상을 위해서 전쟁하는 것도 모두 참 어리석은 것이다. 생명이 죽어 나가는데 ? 무슨 전쟁에 명분이 있나 ?
전사자의 차별을 먼저 없어야 국민통합이 됩니다. 이 차별로 인하여 그 유가족들은 전사자들의 죽음을 3등분하는 차별 정부는 대단히 잘 못된 차별입니다. 이 차별로 유가족들은 10배가 넘는 수당차별은 헌법에도 없는 차별이므로 정부는 이 희생자들의 가족을 억압하고 희생자의 유해도 아직 찾을수없는 비운의 현실정책을 정부는 방관하며 반드시 이에 대하여 별도의 위안 수당이 있어야 그 가족들의 한맺힌 원한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희생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급 존재할수 있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정부는 이를 방관한 허울좋은 개살구 정부는 이번 총선을 통하여 퇴출정부로 국민들은 그 유가족들에게 보답😮해야 합니다. 25:40
8사단..... 5,6살 때 8사단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태백산맥 삽당령 밑에 있던 왕산도매 (강원도 명주군 왕산면 모개리 목계리?도마리?)는 산골이었고 패퇴하는 8사단이 북한군 5사단?에 찢기던 상황을 수근대던 어른등을 통해 알고 우리는 동해안 쪽이 아닌 삽당령을 올라 첩첩산중 임계리쪽으로 깊숙히 도망갔다. 이 지역은 모두 당시 국군8사단과 북한군 5사단의 작전지역이었다.다시 귀환했다가 중공군 내습후 삼척을 거쳐 후포까지 피난하는 와중 마을에 주로 동정복같은 군복입고 반 공갈 구걸하던 상이군인들이 나타나서 행패가 심했는데 어른들이 견장을 보고 8사단이라 했다. 그래서 미안한 예기지만 당시 우리들은 8사단이 완전 괴멸된 걸로 알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네 소 끌어다 놓고 정수리에 총 쏴서 죽여 잡아먹고 (동네 사람들 다 같이 먹긴했지만) 이유없이 우리집 들이 닥쳐 가재도구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나 2살 1947년 4살 누나와 부모님 우리 가족은 북한 장전읍에 살다 남한으로 집단 탈북해서 정착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인민군의 반동색출에 걸릴까봐 일찌감치 도망가고 없었는데 오히려 국군이 우리집을 왜 수색한 걸까. 어떤 군인은 밤에 휘발유 한병들고 와서는 엄마한테 주고 치근대다가 엄마가 빨리 가라고 하니까 엠원총 철컥 장전해서 엄마 쏘려고 하고 우리남매가 벼락같이 우니까 슬그머니 도망갔다. ...건빵 주며 귀여워해 주고 내가 갖고 놀던 칼빈 실탄 달라하고 대신 군번줄과 엠원 총알로 만든 목걸이를 주던 좋은 아저씨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8사단 군인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컸다. 동네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인민군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민간인을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사상을 떠나 군인은 절대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