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鳥遊(타카나시) = 鷹(매, 타카)가 無(없다,나시)없으니 → 小鳥(작은새)들이 遊(뛰어논다). 읽는 방법이 매우 기묘한 성씨는 사실 몇개 더 있습니다. 현지에서도 매우 희귀한 성씨로 손꼽힌다고 하네요. 四月一日(와타누키): 봄이 왔으니(4월1일) 이불에서 솜(綿, 와타)을 빼도(抜, 누키) 좋다. 十(츠나시): 일본어도 한국어와 똑같이 숫자를 두가지 방법으로 세는데요 이치, 니, 산, 시...(일, 이, 삼, 사...)와 히토츠, 후타츠, 밋츠, 욧츠...(하나, 둘, 셋, 넷...) 이중 아홉(九, 코코노츠)까지는 끝에 "츠" 가 붙는데, 열(十)은 토오 라고 읽기 때문에 츠가 없다(나시)고 츠나시라고 읽습니다. 이름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심각한데, 한자 표기를 놓고 읽는 방법을 물어봐야지만 알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가 신분제 사회였다고는 해도 양반이라는 게 애초에 정의가 '4대' 내에 과거급제를 한 조상이 있는 양인이라서 왕족, 유럽의 귀족, 일본의 부시계급처럼 핏줄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애초에 신분의 이동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자유로웠다는 점도 양반이 대폭 늘어나게 된 경위 중 하나이긴함. 일반 평민이라도 과거급제 하는 순간 양반 되는거고 양반이었더라도 3대가 과거급제를 하지 못하면 바로 평민 신세. 애초에 성씨가 양반 성씨라 해도 과거급제 못하면 그냥 성씨 있는 평민에 불과했기 때문에 성씨의 유무 자체가 본인 신분에 큰 영향은 없었음. 노비가 주인 성 받았다고 바로 양반 되지는 않았던 것 처럼
@@lilllililiiillilllililiiil 상공업 발달로 돈많은 평민이 과거를 보기도 하고. 조선후기 비리가 많아 과거를 사기도 함. 양반을 매수하거나 대리시험만 전문적으로 봐서(돈이 됨) 급제하고. 그러나 평민이 보는 과거시험의 경우 정승같이 높이 올라가진 못함. 족보를 사서 신분세탁후 과거시험을 보기도 했음. 망한 양반의 양자로 들어 가는 방법도 있었음.
4:45 1690년을 1960년이라 하셨어요 ㅋㅋㅋ 그리고 진짜 양반의 후손이란걸 아는 방법은... 본관, 성씨, 무슨무슨 파/계 그리고 종가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같음. 오래된 선산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거까진 모르겠음. 어쨌든 지금와서 양반 후손이란건 다 부질 없는 이야기.
조상기린다며 명절마다 제사 꼬박꼬박 지내고 그러다 싸우고 이러는집 안 양반 아닐 확률 높고, 명절때 가족들끼리 해외여행가서 힐링하는 집안 양반일 확률 높음 . 부는 어떻게든 대물림됨,, 몰락하는경우도 있지만 소수의 경우고 거의 대물림 된다 보면됨..그게 꼭 재산이 아니더라도 교육이라던가 경제적 마인드 등..
양반이면서 돈도 많았던 집안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권세가'라고 불릴 정도는 되야 부유한 양반 소리 듣기 쉽고... 그 정도 권력없이 부유해지려고 하다가 탄핵당하거나 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저 집안은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 하고 조사 들어가는 일도 종종...)
저희 집안은 일제강점기 때 증조부께서 토지와 선산을 모두 팔아치웠가지고 증거로는 족보만 있어가지고 난감합니다. 고조부는 양반이였지만 증조부 때 일제가 간섭을 심하게 하자 급격히 재산이 줄어가지고 선산과 토지를 모두 팔아치웠다고 합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을 한다면 대략 80억 원 이상인데..자손한테 토지와 선산을 맡기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로는 무슨 파라면서..양반가문이다 어쩌다고 친가쪽은 그러면서 선산 있다는데..정작 문제는 큰아버지쪽은 거기 너무 멀다고 자기들끼리 땅 따로 사서 가까운쪽에 모시고 있음. 친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묘 가볼겸 가봤는데 징하게 멀어서 태어나서 한번 가봄.. 양반가문 그런거 쓸데없음
본인의 집이 설이나 추석 또는 각종 조상님의 제사를 위해 권씨가문을 위해 태사묘에 가거나 하포리에 선산이 있거나 안동권씨대종회에서 부모님이 종친들과 모여 1년에 3~4번씩 큰 사당에서 제사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 내가 진짜 권씨가 아니라 권씨네 가문에서 일하던 소작농이나, 몸종, 노비 개똥이의 자손이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ㅋㅋㅋㅋ
성씨는 조상이나 족보도 다 의미없어요. 그냥 한자의 뜻 그 자체가 중요하죠. 중국의 이(李)씨중에는 자두라는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가 나중에 자두나무의 은혜를 기억하고 이(李)씨로 성씨를 바꿨다고 하죠. 이런 사례처럼 자기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의미부여하고 싶은 어떤 대상으로 누구나 성씨를 쉽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들어 복숭아나무가 좋으면 도(桃)씨로 바꿀 수 있게하고 소나무가 좋으면 송(松)씨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담이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많은 성씨가 공교롭게도 한국계 '김'씨라고 알려져 있는데... 문제는 우즈벡에서 많다는 김씨 조차 우리나라 같이 극단적으로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략적으로 우리나라 김씨가 한 50% 정도라면 우즈벡 김씨가 한 2%? 많아봐야 5% 정도?
세종때 시행한 종모법때문에 피크때는 인구 절반이 노비였다고하는데 그로부터 500년은 흘렀으니 진짜 뼈대있는 가문 후손 아닌이상 다 섞였다고 봐야지 명절때마다 시골내려가서 갓쓴 할배들 본기억 없는 사람들은 그냥 노비/평민 뿌리라고 생각하면 됨 그래도 다행인건 다른 나라처럼 외국에서 노비를 끌고 온게 아니라 '자국민'을 노비로 만든 최초의 나라니까 같은 민족인건 맞아!
ㄴㄴ 종모법으로 피크 찍은게 아니라 세조 시기 경국대전에서 명시된 일천즉천에 따라 노비 수가 증가되었습니다. 세조 시기 노비의 수가 대략 사노비 100만, 공노비 20만 명으로 파악된 인구의 3할 정도로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안은 1894년 의금부가 폐지되기 전까지 조선시대 6품 금부도사 관직을 지냈지만 굳이굳이 관직 지낸 집이라고 티내고 다니진 않구요, 자국민을 노예 삼은 민족은 차고 넘치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