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의 모습을 박물관에서 그리고 덩이쇠 만들기 과정을 영상으로 만나보면서 가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불과 철을 다루는 가야, 금관가야의 유물을 보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에 댛래서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김해시에서 금관가야에 대한 내용을 잘 보관해주어서 의미있는 역사의 모습을 오늘도 이어갈 수 있네요.
김해는 옛날 바다와 강이 만나는 접경지대로 고대 왕국이 생기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 입니다. 그리고 고분은 고대 국가에서 왕성 주변에 위치하게 됩니다. 왕성인 김해 봉황동 유적 근처에 김수로 왕릉과 허왕후 릉이 위치해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아직 발굴 조사가 이뤄지지않은 백운대 고분군(구산동 고분군, 고분 2기)에 허씨의 고분이 있을것으로 추정(김수로 10명의 자식중 2명에게 허씨성 하사, 무덤 2기)되고 아래로 김씨 왕조의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칠산서부동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가야시대 귀족들의 고분이 즐비해 있고 구산동 고분군과 별개 시설로 세계 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이 있죠. 김해는 난개발로 인해 수많은 유적이 땅에 묻혀 있는걸로 추정되고 지금현재 김해서중을 허물고 발굴 준비 단계에 있고 김해 여중, 건설 공고도 조만간 허물고 발굴 한다고 하네요.
금관가야는 언제부터 금관을 썼을까요 신라는 내물왕부터 썼을 것 같은데 금관을 쓰지 않은 금관가야의 이름은 가라, 가락국 이죠 금관가야의 왕은 몇분이니가요? 12명이던가? 금관가야의 존속기간은 김수로왕부터--- 법흥왕에게 항복할 때 까지인데 금관가야가 김수로왕부터라면 왕조기간이 500년이 넘습니다. 12명의 왕으로 500년을 이어올 수 있나요 금관가야는 왕이 금관을 썼을 때부터이니 신라의 내물왕하고 비슷한 시기에 금관을 썼을테니 350년 부터 계산하면 180년 정도이니 12명의 왕과 부합한다 기마, 철기 문명을 가진, 시니라 내물왕과 같은 기마병이 가락국에 들어와서, 김수로왕이라고 참칭한 것이고 이 김수로 참칭왕의 7왕자가 큐슈 남부에 정착하고, 이들 자손이 기내지역을 차지하면서 왜의 초대왕이 된다 금관가야 유물들은 전연의 모용씨 세력들의 것이니, 전연 문화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