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남에 에고를 위한 자리는 없다. 깨어남은 '에고로부터' 잠깨어 일어나는 것이므로, 에고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이다. 깨어남은 '존재'에만 이롭다. 깨어남은 우리의 참모습 그것만을 이롭게 할 뿐, 에고에는 도통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도서명 :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 _ 아디야 샨티 지음 _ 정성채 옮김 _ 정신세계사 북메디 4oneness@naver.com
대부분의 돈오를 겪은 이들이 갖을 수 있는, 위험한 상태를 잘 설해 주셨습니다. 출발이 어떻든 그 돈오에 대승이 더해진다면, 에고와 미혹은 발붙힐 곳이 없어집니다. 그저, 원래 있던 당연한 것을 다시 알게된 것일 뿐, 더도 덜도 아니며 다만 그 사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온 우주에 가득차는 것 만이, 오로지 즐거움을 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늘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늘 혼란스러웠던 지점이 다루어진 내용입니다. 저는 발***학교, 교회 등에서 영적 허영이라고 할까요? 자신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런 영적인 부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보았어요. 종교나 영성을 떠나 다른 어떤 무엇도(정의, 평등, 평화 등등 모두) 에고가 자신을 숨기고 회피하는 회칠한 무덤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좋은 가치들로 이루어진 그런 공동체는 영적인 성장을 하기에 척박한 토양이라는 것을 절감했었지요.. 인간에 대한 불신에 빠지기도 했구요. 지금은 불신이고 아니고간에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말 알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른 이가 뚫을수는 없으나 삶이 그를 뚫는 다는 사실은 제가 직접 목격한 바가 있어 참으로 마음이 아픈 그런 사실입니다.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 있고 생동하는 것이고 나, 그 자체입니다. 나를 드라이브하는 삶의 위대함에 지금 이 순간 찬사를 보냅니다. 북메디님과 이곳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와..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상태가 어쩜 이렇게 잘 표현되어 있는지 신기해요. 우월감과 환희에 가득차 지내다 뒤에 찾아온 허무감.. 그리고 자유로워진듯 하지만 뭔지 모를 갑갑함.. 지금 저는 목격자의 관점에 묶여있었던 모양이네요. 딱 지금 이 영상이 눈에 들어온 우주의 타이밍도 놀랍지 말이에요. 북메디님 감사합니다 : )
북메디님. 이번에도 뭔가 띵~하는 깨달음,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종착지의 모습을 어떠한 것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혼자 고민하고 있던 부분인데 이제 좀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또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요즘 급격히 깨어나고 있는 저에게 그 상황상황에 맞춰 꼭 들어야하는 메세지를 우주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북메디님 목소리로 메세지가 전해져오네요. 그것도 제가 봉착하는 문제나 의문점에 맞춰서 알고리즘 최상단으로 제시되어지고 있어요. 진짜 지금이 딱 이 상태였어요. 어제 오늘 환희에 차있었고, 오늘은 우월감이 들더군요. 밤에는 몸이 피곤하니 에고에게 이끌려 아이를 허상이라 생각하며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신기합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들어야할 조언을 전해주는 우주가... 이런 귀한 컨텐츠를 만들어주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깨어남은 에고로부터 잠깨어 일어나는 것이므로 에고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이란 작가의 견해도 수행면에선 일리가 있지만... 한편으론 한 사람이 에고에서 참나로 성화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깨어남이 결코 에고에게도 나쁜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소멸하던 나의 에고에게 감사했습니다. 그가 완전히 소멸되고 없어지는 순간, 놀랍게도 그는 빛이되어 참나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수고했어! 우리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Q.에고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목격자로서 진을 친다는 말은 우주 전체가 곧 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 인가요? Q 저는 그간 관찰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참나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그 관찰자와 여기에서의 목격자는 다른 의미인가요 아니면 같은 의미인가요? Q.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건이나 대상은 실재가 아니고 환영이므로 실재인 참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라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분리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인가요? 영상을 보면서 이전에 알던 것과 좀 상충되는 지점이 나타나서 약간 헷갈리네요. 잘 아시는 분들의 답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보근님 반갑습니다~^^ 이원론과 비이원론의 관점의 차이로 보심 이해가 되실겁니다... 본래는 참나 관찰자 목격자 모두가 근원에서 나온 하나의 여러 개념들일 뿐, 이원론적인 관점의 접근입니다 나뉨없는 하나에서 나투어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하겠습니다 나와 삶을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분리되기도 하고 하나로 통합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도움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신의 사랑과 축복이 님과 늘 함께 합니다 😊💖☘🌸🙏
제 개인적인 견해는 '에고가 멀리있는 목격자로서 진을 친다'는 이야기는 우월감을 지닌 목격자로 변신해 에고의 힘을 강화시킨다는 뜻이고 여기서 목격자는 관찰자와 같은 의미인것 같네요. 이때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은 진실을 알고있는 우월한 판단자가 되어 또 다른 생각이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자신은 그 드라마에 편승하게 되는것 같아요. 우리는 우선 에고를 나쁘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에고가 만들어내는 모든 생각들을 마음껏 허용해주고 막지말고 오히려 더 크게 소리치게끔 마이크를 쥐어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중요한것은 그 대신 에고의 생각들과 한 배만 타지않으면 됩니다.(허용하되 한덩어리가 되지 않는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