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미덕이어서가 아니다. 워렌 버핏도 인간은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질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했다. 특히, 한국인들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민족이다. 겸손은 그 시기질투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쓸모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남의 눈길을 끌고, 주목받고, 심지어 존경 받으려고 한다. 성공한다 해도 결국은 사회에 의한, 사회를 위한, 사회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은 사라지고 좀비처럼 살게 된다. 홀로 설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라.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다, 다른 지옥은 없다. 사회, 즉 대중과는 거리가 멀수록 좋다. 노자도 결국 산으로 들어갔다.
겸손해지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겸손할 이유가 없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부족한 존재임을 알기만 하면 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가 겸손해서 한 말이 아니다. 안다는 것-그것이 바로 모른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아는 것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대의 소관이 아니라 신의 소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