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론 빠져도 되었던 불교가 선불교라는 말씀은 비약논리입니다. 티벳도 즉신성불을 말하지만 윤회에 지극합니다. 그와 같이 선불교의 돈오도 지금 바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이유로 윤회의 괴로움을 기본으로 깔고 있습니다. 역대 선사 중에 윤회를 부인하는 분은 없고 곳곳에서 윤회인과를 말합니다. 윤회를 기본으로 깔지 않는 불교도 돌아갈 수는 있가지만 엉뚱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스님의 법문 전체적인 흐름은 윤회에 대해 나는 확신하지 못하겠다로 들립니다.) 불교의 윤회를 불안 쪽으로만 편협하게 생각할 필욘 없을 것입니다. 희망 쪽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까지 갈 것도 없이 금생에도 지위와 복이 떨어지기도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런 법칙이 다음 생에도 적용될 뿐입니다.
저도 강의(설교,법문)중 대중들에게 반말하는것에 거부감느낍니다. 스님이나 목사님이나 마찬가집니다. 마치 자신이 신과 인간의 중간쯤 되는줄 아는 종교인의 경우 더욱 거부감느낍니다. 다만 이분 강의를 많이 보면, 다짜고짜 반말이 아니라, 존댓말과 섞여서 사용함을 봅니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하여 "메라비언의 법칙"이라는게 있습니다. 스피치에서는 단순한 텍스트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한 의사전달의 포인트라는겁니다.(직접찾아보시길) 자현 스님의 말투는 아들이 엄마에게, 조카가 이모에게, 손자가 할머니에게 하는 표현과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그런관계에서의 반말은 좀 버르장머리 없기는 하지만, 오만이나 우월감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강의중 상당수가 서로 친분이 상당히 있는 신도들을 앞에 두고 하시는 경우임도 고려해야할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스스로가 완성형인간이 아님을 유머로 자주 밝히십니다. (쩌리, 반푼이, 관종 등등). 이런 점을 고려하시고 들으셔도 거북하시다면 아쉽게도 그 거친 말투속의 알맹이들을 맛보시기는 어렵겠네요. 부디 좋은인연으로 만드시길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