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온다는 흐릿한 대답속에 제작진의 흐느낌이 섞여있는 장면이 더슬프게 합니다. 누가시킨것도 아닐테고 촬영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흐느꼈다는것은 제작진도 엄마가 문득생각나서 복빋치는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나 봅니다. 이런게 진정한 방송이고 이런프로그램이 우리삶에 와닿는 진정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합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또 망각하겠지만 잠깐이나마 이프로를 통해서 엄마를 생각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나이도 이제60이네요.
우리네 어릴적 놀던 골목길 같으네요 다만 바닷가가 아니지만 아름답고 정겨운 사람냄새 나는 인간세상이네요 점점 사라져가는 골목길 정겨운길들... 어릴적 추억을 일깨워주는 정말 사랑스러운 동네입니다 살면서 힘들때 그 동네 살던 추억 한껏 꺼내어 힘든것 하나하나 덜어내시고 행복한길 걸으소서 부러워요 저런 동네 살으셨다는것이...
내가 어렸을적에 친구들과 대만동으로 해수욕장 다녔는데 온금동에 친척이 살고있어서 아버지와 두번정도 방문한적이있다 저곳까지는 가본적은 없지만 지금 유튜브로 보고있자니 몆십년전이 생각나네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있지만 어렸을적에 살았던 죽교4동 그때가 그립다 고향목포 항상 잊혀지면 안되는곳 나의 젊음을 유달산 밑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유달산이라는 예명으로 쓰고있다 수없이 올라다녔던 유달산
반가워요 고향분. 본인은 유달동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 (유달국민 62년 졸업) 살았었지요 아직도 열악하고 낙후된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녜요 .허리 불편하신 할머니 잊혀지지 않고,,,,,,,, 본인도 미국의 서북쪽 바닷가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73년 마지막 방문했던 나의 고향 가고파라. ~~ ~ 🇺🇸
제가 살던 섬 5일장이면. 피난민이라 불리던 보따리장사 아줌마들이 저희 집에서 묵었지요. 제 아버지도 난민이셨거든요. 그 중 한 분이 온금동에서 사셨어요. 저는 중학교때 죽교3동에서 하숙생으로 목포살이를 시작했죠. 떠난지 오랜세월이 흘렀는데도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오늘 밤처럼 잠못 이루곤 하죠. 지난 것이 다 그리운 건 아니지만..그 시절 그대로인 원도심 구시가는 당장에라도 가고파요.
엄마의 사랑은 뭐에요? 겪어보지 못해서 공감을 잘 못하겠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날 버린 21살의 젊은 친모. 친척집 떠돌아 다닐 때 구박 하던 큰아버지의 여자친구.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시 돌아왔다가 중1때 날 또 버리고 29살에 연락와서 이제 나를 잊겠다고 나도 생전 본적 없던 내 돌사진과 유년기 사진을 돌려주고 후련하다는 듯이 가버린 친모의 뒷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모성애란 뭘까요. 이미 훌쩍 30대가 되어버린 저는 평생 가져보지도 느껴보지도 못 할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참 슬프네요.
누구는 의사 손주를 둔 노인이 나라에서 공짜로 해주는 도우미 호강하면서 살아쳐가고 세상은 참으로 웃기는 것이다.이것보시요 복지부 장관 나으리...하루빨리 기초생활 수급자 추려서 진짜로 어려운 삶들을 주시요..타막지 말아야할인간들이 타쳐먹고 진짜로 타먹어야 할 사람이 못타먹는 웃기는 사회 복지 정책이 썩어도 개판입니다
콘트리트 아파트에 대출 잔뜩끼고 사는 그곳 도시에 하루는 어떤가.. 매일 똑같은 일과 스트레스에 집에서 조차 옆집과 윗집 아랬집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가.. 주차할때조차 신경쓰면서 주차하지 않는가.. 마음편안하고 가종의 정이 있는 그집이 가장 좋은집 아닐까.. 공시지가가 오르는거 만큼 우리의 신경도 날이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