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5일 제76주년 광복절 계기로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6대가 엄호 비행하며 78년 만의 귀환에 의미를 더했는데.... 최고의 예우를 다한 홍범도 장군의 특별했던 귀환길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유해 안장식까지 문워크에 담았습니다. #홍범도장군 #엄호비행 #유해봉환 #문재인대통령 #봉오동전투 #국립현충원 #독립운동 #홍범도
@@yn6801 지금 생각해보세요....... 나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거기에 따라 여러 앞으로 나가야 할것을 우선시 하지 않는 행퇴를 보면 보수의 방향입니다. 발전보다는 지금 유지하면서 우리를 우선으로 하는 집단적 행위를 보수라 보시면 됩니다. 진보라 함은 이와 반대로 나라의 이익보다는 앞의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위한 여러 행태를 진행시킨으로 약간 불안정 적인 행위의 집단을 진보 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앞선 문정부는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까운 행태를 많이 보였습니다.... 여러 독립운동 지사를 고국으로 모셔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이전 행위에 대한 보답밑 보은을 많이 강조하고 이를 통해 사회 결속을 많이 조장 했고 지금 있는 사회 기틀을 우선으로 하고 이에 따른 여러 보수 적인 행동을 많이 했고... 이에 제일 보수 적인 검찰에 많이 힘을 주고 이를 견인시키려 노력을 많이 했지만 대표적인 검찰집단은 안 바뀌고 거기에 따른 우두머리가 현 대통이 되어 지금 이꼴이 된듯합니다.
Vai-te foder, então devias respeitar o General Baek Sun-yup ou MacArthur. Esse cabrão é um comunista, um coreano que se juntou à Alemanha Nazi na Segunda Guerra Mundial!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쇄미록에는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5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와 사대주의로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O2b : 이 유형은 가히 한국인의 고유 Y염색체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의 37.3%를 점유하고 있으나 중국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반도 이외에 O2b는 주로 일본(31.9%), 만주족(3.8%)등에 분포하므로, O2b는 가히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특징적인 유전자라 할만하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해서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부정하는 이유는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의~~ 일제치하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비운의 역사가 너무도 슬픕니다... 다시는.. 남북한의 이 땅에서 이민족들의... 정치 야욕이 불러 들이는 민족이 살해 당하는 비극들이 사라져야 하는... 홍범도 장군의 역사는 절대 왜곡될수도 없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애국심의 역사가 맞읍니다
근데 저분은 독립군이긴 한데 사회주의 자잖아. 우리 헌법질서과 배치되는 사람을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모시는게 맞냐? 한민족은 엄연히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를 만들었고 유엔도 둘다 국가로 승인했는데 반일민족주의 정권이 너무 현실과 안맞게 모셔온듯. 그냥 현지에서 지원사업하면 되는거지 사회주의 국가만들겠다고 독립운동한 분을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에 모시는건 솔직히 아니라고 본다. 독립관련 대우해주는것과 별개로 한국헌법질서 안맞는 분임. 무조건 민족이 모든것에 우선하는 nl계열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본다.
@@yutk267 훈장준 박정희도 사회주의자로 치부하자 말 같잖은 소리 하네 당시 독립을 위해 소련과 협력한건데 사회주의자로 몰아 가는건 뭔소리래? 나라 없는데 이념이 문제였을까? 나라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였을까? 시대적 배경도 당시 소련이 지금의 북한처럼 주적이란 표현을 사이었나? 독립군은 우리나라 군대의 모태이자 근간이었는데 그게 이상하다는 게 이상하다
@@user-pu7ti3tb2e 박정희는 중간에 바꿨잖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것도 아니고 한국 헌법질서와 다른 노선을 간 사람을 한국 헌법질서를 보호하는 육군장교를 육성하는 곳에서 뺀다는 걸 헛소리라고 하면 그냥 니가 NL계열 운동권 출신이나 그 아류라는거 실토하는거 밖에 안된다. 일단 마지막 말에서 니 역사관을 알겠다. 현실을 도외시한 민족뽕. 한국은 국제법적으로 그냥 신생국이야. 그리고 니가 좋아하는 그 민족뽕 따라서 조선이나 대한제국 그리고 독립군 계승했다 해봐야 19세기까지만 올라가도 한국은 청나라 따까리 정확히는 외교권도 없는 속국이었다. 그 반증이 독립문이고. 니가 생각하는 쪽으로 가봐야 따까리국인데 멀 그렇게 정신승리하려고 그러냐. 앞으로 그렇게 안살게 힘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맨날. 개인적으론 박정희도 난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다. 결국 박정희 빠는 인간들도 니들하고 똑같이 인간을 평면화 시켜서 영웅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들이라. 그냥 잘한건 잘한거고 잘못한건 잘못한거고 공과를 둘다 후대에 알리면 되는거지 멀 그렇게 포장질들을 하는건지 원. 물론 지들세력에 유리하게 이용해먹으려고 그렇게 했겠지만 박정희 말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건 내 무덤에 침을...이다. 박정희 본인은 정작 공과과를 후손들이 다 평가하라고 한건데 후손이란것들은 유사종교를 만들질 ㅋㅋ 그리고 박정희 흉상이 육사에 있으면 그것도 당연히 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