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최후빙하기때 해수면은 고작 10~25미터 내려갔습니다. 서해는 평균수심60미터. 140미터 이상의 깊은 골도 수백키로미터에 달합니다. ***서해는 육로로 연결된 적이 없습니다.*** ***인류 등장 이후 단 한번도 없습니다.*** 빙하기 해빙기의 수면 상승하강으로 바닥을 찍을수있는정도의 얕은 바다가 아니란말입니다.. 어휴... 더 전의 최극빙하기때는 인류가없었습니다. 그 더 전에는 한반도가 한반도 모양도 아니었습니다. 과학을 믿는다면, 이딴 짜깁기영상보지말고 직접 논문찾아보고 책읽고 공부를 해보십쇼.
흥미로운 내용 감사합니다. 최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보면 산동성 임기시에서 발굴된 BC6,500년경에 형성된 동이족의 후리문화나 동이족 상나라 은허등을 보면서 동이족의 활동지역이 만주나 한반도 뿐아니라 중국대륙에 존재한 이유가 해수면의 변화로 인한 것임이 이해가 갑니다. 어쩌면 서해 바다 아래에 많은 유적이 묻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네 그 증거가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청동기, 철기,원삼국 시대의 유물과 유적지입니다, 조그만 섬을 메꾸어 현재의 영종도로 만들먄서 발견이 되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은 암사동의 두배나 되는 크기의 집단 거주지까지 나왔죠, 갯벌과 연결된 땅에서 이런 대단위의 유적이 있다는 것은 .. 제가 위에 댓글 올려 놓았습니다, 확인 해보시길요..
'끼니 때 고생해서 밥해오니 고기없냐' 고 투정하는 것처럼 염치없는 말입니다. 마는 혹시 500년 내지 1000년 단위 등으로 황해를 중심으로 동북아 해안선 변화를 시청할 수는 없을 까요? 품들이고 돈들여서 고생하시는데, (혹시 미리 준비하실지도 모르겠....???) 감사합니다.
@@chulkyupark8447 북방문화는 역사시대의 동이민족문화의 시원이죠. 여기서 언급하는건 민족 단위가 아니라 선사시대의 우리 원시인들에 기원에 가깝죠. 선사시대 이후 서해안에 자리잡은 선사인들이 동이족이 되고 역사시대에 북방 유목문화를 받아들여서 독특한 유목 농경 융합 문화를 구성했죠
강화도 아래쪽에 있는 영종도 섬( 인천공항 건설을 위해 용유도를 비롯한 그 사이에 있던 조그만 무인도 섬 2개 포함해서 4개의 섬을 메꾸어 혀재의 섬이 됨)에는 고인돌.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심지어 철기 및 원삼국 시대 등 선사시대 유적지가 4곳이 있습니다. 그중에 한 곳은 암사동 선사시대의 두배나 되는 크기와 집단 거주지 터까지 나왔죠. 이 곳에서 발견된 유적중에는 흑요석 도끼등도 있는데, 백두산과 일본 규슈 지역의 흑요석 성분을 비교 조사해보니 백두산 지역의 흑요석과 성분이 같다고 나왔습니다. 방위원소를 통한 연대 측정을 해보니 6천년전의 것이구요, 2년전에도 또 영종도 하늘 도시 지역에 아파트를 건설하려는데 신석기 유물이 나왔는데 그냥 깔아 뭉개고 아파트를 건설하였죠. 현재의 한반도 지형에서 바라 볼 때 내륙지역보다도 더 많은 수의 유적들이 섬에서 발견되는 것은 단순히 신석기 시대에는 해안가에서 모여 살았다라고만 치부 할 것이 아닙니다.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에 있는 조그만 섬인 신도에서도 유적이 나왔는데, 넓디 넓은 내륙땅을 놔두고 아주 조그만 섬안에서 신석기 문화 청동기 문화. 철기 문화, 원삼국 시대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부족도 아니고 씨족도 아닌 기껏해야 수십명 인원의 원시적인 신석기인들이라는 이론으로 흑요석을 백두산에서 이동시켰다는 것은 어찌 설명할 것이며, 서해 지역의 대초원 시절에 형성된 문화가 이후로로 이어져 신석기와 이후 문화를 형성하였다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죠. 분명, 영종도와 강화도 일대 유물들을 분석하다보면 구석기 유적들도 나올 수도 있는데.. 도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유적지는 건물들 아래로 묻히게 된 현실이네요. 차 참고로, 영종도 해안, 영흥도. 대이작도, 자월도. 연평도 등 인천 연안의 섬 해안가에서는 계속해서 한국 최고령. 아시아 최고령의 암석층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영상에서도 설명 해주셨듯이 해안가에 분포하는 해양 식물들과 패총, 어류. 그리고 얕지만 산과 들에서는 과실수. 약초. 들짐승들이 있기에 수렵과 채집 할동에 매우 수월할 수 밖에 없기에 선사시대인들이 거주지로 삼았던 요인들이 있지요. 20여년전에도 , 현재도 강화도,영종도. 영흥도. 대이작도는 벼농사는물론, 밤, 감. 배. 같은 과실과 약초등이 즐비하엿고, 우물이 있어서 식수 해결도 가능한 지역이었죠. 섬인데도 불구하고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는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용어입니다. "4-5세기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들어설 때까지 삼국은 원시부족국가이기에 일본열도를 통일한 야마토왜국이 쉽게 임나일본부를 설치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지요. 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인하죠. CE 6년에 백제 온조대왕이 마한을 정복한 기사 등이 이미 1세기에 백제는 강력한 국가였다라는 증거이기에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어느 박물관 연표에 보더라도 1세기초에 이미 망한 마한을 4세기까지 좀비처럼 살아있게 합니다. 바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박물관 연표에 라고 표시해 놓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대학강단/박물관/연구소 모두 식민사학 세력이 점령하고 있기에 있을 수 있는 현상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 해 봅니다. '일제 시대 때 영산강에서 다리를 놓기 위해 강 밑을 파내려 갔다. 튼튼한 지반이 나와야 건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팠으나 나오지 않았다. 20길 정도를 팠을 때 아름드리 참나무 수백 그루가 침향목 상태로 발견 되었다. 그 나무는 10길 정도 크기였다. 그 나무 몇 그루를 일제가 가지고 갔다' 강 바닥이 육지 였던 시대를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 소개 해 봅니다. 봉우사상을 찾아서(59) - 1990.06 백두산 천제기행 22분 37초 부터 입니다.
서해안은 고대에 평원이었고 그곳에 동이족이 살았고 백제와 신라가 살던 곳입니다. 그렇기에 사라진 서해 땅의 역사를 찾아내 한국 대륙설을 밝혀야 합니다. 지극히 가능한 논리라고 봅니다. 그 역사가 중국 고대 역사서에 있지만 일본은 한국의 역사적 지형을 한반도로 국한 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왜곡을 한국의 역사학자가 그대로 한국 국사로 채택해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이어서 중국역시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중국 동쪽 동이족이 살던 지역의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서해 갯벌 지역을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발굴 한다면 수없이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신선하게 봤습니다. 과거 상고시대에도 현 땅의 모양이였을까? 궁금했습니다. 뭔가 역사책의 지리와 비교를 해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서해 대평원은 참고할 만합니다. 아쉬운 점은 새토템을 한족으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고구려(고구리)에 새토템이 있습니다. 특히 삼족오는 고구려의 특징입니다. 역사책에 보면 우산국이 나오는데 현 사학자들은 우산국을 울릉도라고 합니다. 울릉도는 우산국이 될만한 면적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따라서 선생께서 소개하였듯 산동반도가 과거에 섬이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산국의 위치가 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한 시기 현 중국대륙의 어디까지가 해안선이였는지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중국 학자가 출토된 유물을 가지고 해안선을 추론한 논문을 본 것 같습니다.
마리산은 원래 고가도라 불리는 섬이었는데 고려 말부터 간척사업이 시작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간척사업이 진행되어 1600년대에 강화도와 합쳐지게 되었답니다. 배를 타고 참성단에 가는 불편함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고가도가 섬이 되기 전 서해대평원 시기에 참성단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근데 왜 판게아라는 초대륙이 있었을까요? 중력이 지구 중심에서 표면으로 골고루 작용한다고 보면, 대륙이 지구표면에 골고루 있어야 말이 되쟎아요? 지구가 계란처럼 찌그러져 있었을까요? 한쪽이 뻬쪽하게요. 달이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지구 가까이 공전했다던데 달의 인력때문일까요? 달이 점점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던데, 그럼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구가 다시 물의 행성이 될지도요...
일제 시대 때 항구도시가 먼저 발달한 이유 군수물자나 산업물자의 운송도 있겠지만 사람 실어나르는 용도로 많이 활용했어요 일제 초창기에 이대륙 저대륙에서 반도 땅으로 어마어마하게 실려왔습니다 일단 저는 전라도 출신인데요 전라도인 상당수가 중원대륙에서 이 땅으로 배타고 넘어온 듯 싶네요 대륙땅에 조선인들이 많이 살았었지요 제가 알기론 문화대혁명 때 조선인과 조선문화의 잔재 모조리 없애버린 걸로 알고 있내요 일제 시대 때 작사작곡된 노래를 관점을 달리 해서 들어보시면 이해가 될 거에요 독립군가에도 새 땅으로 새터로 이동하자 란 가삿말이 있죠 새땅은 한반도를 의미해요 머리가 있다면 부정하기가 힘든게 사실이에요
집단지성이 형성되는 인터넷시대에서는 인류문명사와 역사분석도 이렇게 지구과학과 연결시켜 해석이 되야 합니다. 1만년전 서남해지역은 바다가 아니라 대평원지역으로 1만년 인류문명의 요람이 되었던 마고한국(마한)이 존재했습니다. 단군조선이후에도 서남부지역을 마한이라고 칭한 이유라고 할 것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족의 고대 조상은 현재 러시아 영토인 바이칼호수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거기서 시작되어 몽골을 거쳐 한반도 북부에 정착하여 고조선을 건국한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선생님 말대로 하면 우리나라 조상은 지금의 중국 남부나 동남아에서 시작되었다는거러 이해하면 되나요? 글고보면 고려시대 조선시대 외세 침략전쟁일때 강화도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중국의 변방 소수민족으로 살아갔을것이다라고 보는데 이에 어떻게 생각 하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OriginOfMankind 현재도 武漢에 가시면 원래의 漢江이 있고 호북성 양양에서 仙桃(선도)시를 지나 무한에 도착하여 漢口가 됩니다. 오나라가 건업이라 불렀고 후에 백제의 땅이었던 곳이며 당나라에 백제가 멸망후 무한 서북쪽 안륙시에 5도독부중 하나인 덕안도독부를 잠시 설치하였기도 하였죠~ 참고로 무한에는 漢陽區(한양구)가 있습니다 청나라때까지 한양이라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