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싸웠다하면 이기는 막강군대 였고 자만할만 했지만 문제는 그 자만이 정신병 수준이었단 거죠 총검을 꽂고 총알이 난무하는곳에 뛰어드는 일본군들을 보고 미군은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릴 지경 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서구열강들을 만만히본 일본이었지만 이건 서구열강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일본의 스승격 이었기에 당연히 우리가 이길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싸워보니 졌죠 근데 이 자만이 일본은 선 넘었음 당시 미국유학파였던 일본군 수뇌부는 미국 공격을 애초에 하지말자고 주장했지만 묵살당했죠 본인들을 너무 과대평가 했습니다 만약 당시에 운좋게도 일본군 총 사령관이 미국유학파 였더라면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하더라도 기습하고 방어작전에만 충실했을 겁니다 계속 들이박는게 아니라 이랬다면 무승부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미국과만 싸웠다면,, 근데 독일이 져버려서 소련까지 합세했을테니 결국엔 졌겠지만요
2:00 동일하게 서양의 기술력을 뼈저리게 느꼈던 우리나라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책에 의해서 근대화가 압도적으로 느져지게 되면서 식민지가 된 것과 상반되게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려 근대화에 완벽하게 성공하면서 동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된건 참 뺘아픈 역사네요,, 현재 일본이라는 국가가 거대한 경제 침체기를 겪고도 여전히 건재한 국가일 정도로 성장한 것도 패전이후 아작이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이 강한 국가 였다는 인식이 강했던 덕에 식민지였기 때문에 관심마저 못 받던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후 복구를 완벽히 마치고 경재대국으로 발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쓰리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개항기 인거 같네요,,,
애초에 조선 초기 이후엔 일본이 경제력을 뛰어넘기도 했고 사회도 꽤나 안정되어 있었고, 포루투갈과의 무역으로 국고가 튼실할때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도한거였고 우리나라는 국고도 부족했고 정치가 개판이라 민생은 씹창나서 서실상 근대화를 못할 확률이 높다 봐야죠.. 대한제국 당시의 높은 경제 성장률도 일본에 막대한 채무를 받고 한거였으니 ㅠㅡㅠ
뭐든 아껴야 잘살고 이기는 것임, 전투에서 부상한 병사를 치료해서 재투입하는 게 전투력이 높게 유지되고 신병을 뽑아 보충하는 걸 주충원수단으로 쓰면 망한다는 걸 2차대전 보고서로 발간할 정도로 뭐든 전투력유지를 위해 모든 걸 연구함(먹는 것부터 똥싸는 것까지). 전투병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장군치고 명장없고 병사를 아끼는 장군치고 졸장없음(억울하게 누명쓰는 경우는 있어도 나중에 후세가 재발견해줌)
@invitebyte3278 Well, i don'tthink it is appropriate to compare Gen. Lee to Gen. Sherman. General Lee and his Confederate Army were basically overwhelmed by much larger Union forces. Yes, he was the most respected general in the Confederate Army during the Civil War. However, not many generals could overcome those limited resources even with his respected characters and extensive battle experience in war of attrition. 😢
8:53 이부분은 많이들 오해하는데, 당시 워게임통해 앞으로의 전투가 어떻게 진행될지 보는거라서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뽑아야했는데, 문제의 부분은 시작하자마자 격침 전멸떠서 전투가 진행이 안되어 데이터 못뽑으니까 우카키 총장이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워게임 계속진행하라는 취지로 한겁니다. 자만은 맞는데 저일화처럼 워게임중 우리가 질리가없어 이런경우는 없었어요. 그 KCTC훈련받을때 전투금방끝나면 훈련의미없어서 계속 이어가는것과 비슷합니다.
16:16 이것도 일본의 거짓전과로 간것보다 격려차원으로 간거고 당시 미국은 야마모토 시찰을 암호해독으로 알아내서 아예 대통령허가 받으며 암살계획세웁니다. 그리고 일본은 여기서 병크인게 자신들 주변으로 연합군비행기가 돌아다닌다는것을 어느정도 알아도 제대로 규모, 수준을 파악못했죠. 아직 레이더기술이 제대로 쓰이지못한것도 있죠
일본이 서양문물 받아들인 이후, 식문화와 의상문화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죠. 메이지유신 이전까지만 해도 불교의 영향으로 1200년간 육식금지령으로 인해 고기를 먹지않는 대신, 생선과 채소반찬을 즐겨먹었죠. 서양문물 받아들인 이후, 일본인들의 식습관은 달라졌고 고기반찬과 유제품을 즐겨먹기 시작했죠. 일본인들도 서양인들처럼 체격을 키우기 위해 육식섭취하게 됐죠. 메이지유신이후 나온 음식이 바로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 니쿠자가(일본식 고기감자조림)와 각종 고기요리가 등장하게 됐다죠. 또한 제과제빵기술도 습득하게 되었고 도미빵과 도라야끼(일본식 팥빵)역시 메이지유신 이후에 나온 음식이라죠.
당시 일본을 실질 지배하던 군부의 양대 축이 해군과 육군이였는데 이 둘은 협력보다 경쟁 관계가 강했음 중일 전쟁으로 비록 고착화되었으나 상당지역 점령하고 인도차이나반도까지 점령해가는 상황에서 해군도 육군 못지 않는 전과를 올리고 싶은거였지 이 해군들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주범임 ㅋㅋㅋ 중국 인도차이나 전선은 육군이 단독으로 전쟁했고 미국 상대한 태평양 전선은 해군 단독으로 전쟁한거임 ㅋㅋ 그래서 태평양지역 섬을 점령하기 위해서 해군육전대를 만들었음 ㅋㅋㅋ 둘이 따로국밥으로 놀았음
일본측에선 육군에 쿠라비야시 다다미치 해군에 야마모토 이소로쿠,이노우에 시게요시,이토 세이이치. 이 양반들이 일본 군내서 그나마 제정신 박힌 장성들이었고 공통점이 미국에서 무관을 지내면서 미국의 국력을 직접 본 입장으로 미국은 일본 따위가 어떻게 해볼 나라가 아니라면서 미국과의 전쟁을 결사반대했던 인물들임. 근데 제정신 박힌 것들만 있었음 우리가 독립을 못했음
정말로 지휘관이나 지휘체계의 문제가 컸으면 아쉽게 진거기 때문에 일본이 힘을 키워서 다시 싸우거나 다른 나라들이 덤벼봤을 가능성이 큼. 근데 어느 나라도 그렇지 않음. 그냥 미국의 압도적인 체급의 물량과 전술적 위치가 이미 너무 강한거임. 뭐 핵위력도 그렇겠지만 여러가지로 덤벼볼 깡조차 못낸거지. 2차후에는 이념싸움하느라 바쁘기도했고.
저때 일본군의 정신상태는 심각했음 메이지유신으로 정신까지 서구화된거로 착각했지만 일본군의 똥군기는 매우 심했고 상부에 거짓보고 한것도 결국 상부의 갈굼이 두려워서 저런거 미국도 베트남전쟁때 까지만해도 똥군기가 있긴했으나 일본군 처럼 막장이어서 승패에 영향을 줄정돈 아니었음 근데 일본은 상부에서 총검 꽂고 총알이 난무하는곳에 뛰어들라 하면 뛰어드는 정신나간 군대였죠 이런 자살명령을 곧이곧대로 들은 일본군들은 참,,,,, 만약 저때 일본군이 정신이 제대로 였다면 명령 거부하고 상부에 보고해서 저런 명령 내린 넘이 참수 됐을 것 그랬다면 저 전투에서 이겼을거고 일본군이 패배했을건 같지만 적어도 더 적은피해 입고 졌겠죠 본토에 핵은 안맞았을 겁니다 다만 소련이 선전포고 했을때 일본군 특성상 항복안하고 개기다가 본토에서 난리나고 항복했겠지만,, 핵맞는것보다 낫죠
넘어가기 쉬운데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얻은게 별로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이기면 패전국에게 배상금 받는데 일본은 러시아에게 한푼도 못받았습니다 전쟁 계속 할래? 휴전할래?일본은 전쟁 배상금 요구 했지만 러시아 측 대표였던 비테는 지금 국내사정 때문에 전쟁을 중단하려는 것뿐이지,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며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맞섰지요
미국이 초반에 열세였던 이유는 고립주의라는 외교노선과 반전주의자들이 넘쳐나서 군축을 많이 해놨었음 1차때도 남의 나라 전쟁인데 고립주의 버리고 굳이 참전해야되냐는 여론도 많았으니 1차 후 여론을 무시하지 못한 정부는 최대한 군축을 한 상태였음 거기다 대공황까지 와서 어질어질한 상태였음 반대로 일본은 군국주의를 천명하며 국방력에 힘쓰다보니 결국 세계 해군순위 3위안에는 들어갈정도록 강했음 하지만 미국 생산력을 너무 무시했었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