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회 예배에서는 말씀보다도 찬양과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것을 갈망해합니다. 이런가운데 자연스럽게 치유와 기적의 역사도 일어나고 마약에서 자유케되고 구원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이 타락했지만 중보기도자들의 금식과 기도로 곳곳에서 부흥이 일어나고있습니다. 얼마전에도 포트렌드 오래곤주에서 수만명이 스태디엄에 모여서 찬양예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미국을 미국답게 세우시고, 주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따라 인도하시는 미국인것입니다! 전 세계를 이슬람으로 지배하기 위해 끊임없는 테러와 전쟁범죄들을 자행하는 페르시아 시아파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후티 반란군등을 막아내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든 자유민들의 영웅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의 은총이 미국에 충만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러치맨 선수는 안 나왔나 싶네요. 은혜로운 소식 감사합니다.,,그리스도인. 선수들이 팀을 모범적으로 잘 이끌고 많은 사랑 받고 감동 주는 팀이 되길 바랍니다. 스포츠 ㆍ올림픽에 대한 기독교내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극히 세속적인 분야라 한지라도 그 안에서 오히려 기독교적 가치와 복음을 드러내고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인생은 경기와 같다(2) 3.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칙이 뒤따른다. 하키 경기에는 반칙한 선수가 퇴장을 당해서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일정 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패널티 박스"라는 한 장소가 있다. 다른 여러 스포츠에도 규칙을 위반한 정도가 심한 선수는 반드시 퇴장을 당한다. 어떤 하키 선수는 다른 흑인 선수를 "원숭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시즌 내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기도 했다. 당시 그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행동 교정"을 받아야 했는데, 그를 상담했던 여자 상담사가 "흑인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자 그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하키 선수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하려고 한다면, 당신이야말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원숭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칭찬이란 말입니다!" 4. 어떤 경기에서든지 심판의 판정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한번은 "야구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그 규정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심판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두 번째 요건은 공명정대한 자세이다. 셋째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즉 심판이 되려면 "경기에 대한 지식"과 "도덕적인 성품"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판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의 판정에 있어서 정직해야 하며,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결코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단 한 번뿐인 인생의 경기를 "패널티 박스"(지옥)에서 마감하게 될 경우, 그때 가서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심판이 판정을 잘못했을 뿐이요!"라고 아무리 불평해도 소용이 없다.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 그곳에 갔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잘못했는지 잘못하지 않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 심판의 몫이다. 당신은 그 심판의 판정에 왈가불가할 수 없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 프로야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팀에는 "펩퍼 마틴"이라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항상 심판들과 다투었으며 심판에게 침을 뱉고 대드는 선수였다. 언젠가 한번은 그가 심판과 크게 다투고 있던 중, 관중석에 있던 한 여성이 갑자기 쓰러져서 들것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심판은 "저 여자가 왜 쓰러진 거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펩퍼 마틴은 "당신이 생전 처음으로 올바른 판정을 하니까 놀라서 쓰러진 거 아니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생의 경기에서 당신이 아무리 심판에게 화를 낸다 해도 심판은 그의 판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심판이 정해 놓은 규칙대로 경기를 하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편이 훨씬 나은 것이다. 5.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누군가가 경기를 잘못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 사람의 잘못이다. 운동선수들 중에는 자기 책임을 너무나 쉽게 다른 선수에게 돌리는 선수들이 있다. 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순간에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경우, 공을 찬 선수는 공을 패스한 선수가 제대로 패스하지 않았다고 탓하고, 공을 패스한 선수는 공을 찬 선수가 제대로 슛을 하지 못했다고 탓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탓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창 3:12,13). 골프 선수들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곧잘 한다. 공을 잘못 치면 바람이나 잔디 탓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공을 칠 때 그 모든 것을 감안했어야 했다.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당사자인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선수"는 없다. 아무리 경기를 잘하는 선수라 해도 언젠가 한번은 실수하기 마련이다. 미식축구에서 아주 뛰어난 "풀백"으로 대학 풋볼 및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래리 촌카"라는 선수도 공을 놓친 적이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이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던 "지미 코너즈"도 어이없는 두 번의 실수로 상대 선수에게 서브권을 쉽게 넘겨 준 적이 있다. 월드컵 경기에서 자살골을 넣는 바람에 상대 팀에게 승리를 안겨 준 선수들도 여러 명 있다.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는 한때 홈런을 많이 쳐서(714회) 리그를 선도하는 선수였지만, 사실 홈런보다는 "삼진 아웃"을 더 많이 당했다(1,330회). 왜냐하면 공이 날아올 때마다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댔기 때문이다. 인생의 경기에서는 "완벽한 선수"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담은 금지된 열매를 먹고 "삼진 아웃"을 당했다. 노아도 술에 취하는 바람에 "삼진 아웃"을 당했다. 아브라함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함으로써 "삼진 아웃"을 당했다. 모세도 말만 했으면 되는데 화를 내면서 바위를 쳤기에 "삼진 아웃" 당했다. 여호수아도 아이 성과 기브온인들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삼진 아웃" 당했다.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함으로써 "삼진 아웃" 당했다.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함으로써 "삼진 아웃" 당했다. 바울 역시 성령님께서 세 번이나 가지 말라고 경고하셨음에도 예루살렘에 감으로써 "삼진 아웃"을 당했다. 인생의 경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유일하게 완벽한 경기를 펼치신 선수이셨다.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히 4: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죄들을 위한 온전한 희생제물로 받으신 것이다(벧전 1:18,19).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도 인생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1907년 9월 21일자 지에 따르면, 미네소타 주 마이너리그의 "윌마"와 "벤손"이 1903년 위스콘신 주에서 경기를 했다고 한다. 9회 말 벤손이 1점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윌마 소속의 "틸만" 선수가 1루에 있을 때 그의 팀 동료 "오툴"이 홈런을 날렸다. 그런데 틸만이 3루를 돌다가 갑자기 열사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날 날씨가 매우 더웠다고 한다. 야구 규칙에 따르면 후속 선수가 앞선 선수를 앞질러서 득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툴은 쓰러진 틸만을 일으켜 안고 홈까지 달려가서 틸만의 몸이 먼저 홈에 닿게 하고 그다음에 자신이 홈을 밟았다고 한다. 그렇게 얻은 2점으로 윌마는 승리했다. 당시 경기장으로 들어와 틸만을 검진한 의사는 그가 죽은 것으로 진단했으나 심판은 그 점수를 인정했다고 한다. 이는 규정집에 그런 플레이를 반칙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특별한 예외였고, 어떤 사람은 이것이 "전설"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실화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 사건이 있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면서 나를 "홈"으로 데려다주신 일이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반드시 위대하신 구주의 팀에 소속되어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명시한 책, 곧 "성경"대로 믿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