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민총생산에 있어서 1974년 1975년경에 북한을 앞섰다는 국내외 기록에서 정확히 볼수있습니다 그 전에는 기록상으로 북한이 경제력에서 우위에 섰다는겁니다 60~70년도에는 북한이 우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간첩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 지도자와 국민은 그런 공산화를 다 이겨내고 산업화의 탄탄한 기반을 이룩했던것입니다 오늘날의 삶의 풍요로운 번영은 그때의 기반에 의한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꽂개잡이를하는 큰배에 딸려나온 박신혁의 작은배였는데 무동력선을 손으로 저어서 와야되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의 관계 바람의 관계 등등 자연환경에 철저히 관찰을 해야 이룰수있는 한국행인것입니다 군대 10년 외화벌이를 바다에서 10년함으로써 탈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 싶습니다 박신혁이가 배로 출발할때는 물이 남쪽으로 많이 밀려나가는 시기를 선택했는데 이러한 관찰력때문에 무사히 왔다고 봅니다 박신혁의 군사분계선 NLL해상을 뚫고 온것은 세심한 관찰력인 과학의 뒷받침이라고 봅니다
유미님은 늘 호기심 천국입니다. 북조선에서도 수많은 경험을 하고, 장사를 하다보니 그 모든 것이 경험이 되어서 지금도 참으로 아름다운 봉사를 하고 있네요. 교동도 망향대에서 북한을 보면 2km 남짓 가까운 곳인데, 그 가까운 거리를 28시간 노를 저었다니, 참 고생 많았습니다.
2008년 6월 길이 4m넓이2m의 배를 나무로 직접 만들어 28시간에 걸쳐 직접 노를 저어 삼엄한 군사분계선 NLL을 뚫고 한국에 도착한 박신혁입니다 바다로 나오기는 꽂개잡이 큰 배에 딸려 나왔습니다 바다의 밀물 썰물 바람의 관계등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어려운 시도인데 박신혁은 이를 잘 알았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굳은 의지로 굴복시켰습니다 그래서 성공한것입니다 집은 한국측 교동도 앞에 있었습니다 10여년간의 기나긴 인고의 준비과정을 거쳤는데 너무나 대단한일입니다 환영합니다
전기에 대해 정확히 말씀드리면 저는 지리산 밑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초등학교 졸업때(1970)까지 한전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동네에서 작은 수력발전을 해서 저녁에만 전기를 공급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읍내에는 한전의 전기가 24시간 들어왔고 1973년에 중학교를 경남 진주시로 갔었는데 그때 당연히 24시간 전기가 모든 가정에 이미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서울은 이미 60년에 중반이나 훨씬 그이전에 공급 된것으로 압니다. 단지 전기 절약 하자는 말은 항상 듣고 살았지요. 그러니까 아주 깡촌에까지도 한전 전기가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모두 들어 왔다고 봐야 합니다.
양복 양쪽에 뺏지가 오데 것 인동.. 대한민국 국기같기도 하고요❤ 환영합니다다다..❤❤❤❤❤ 우리 유미카님 오날 하얀 목련으로 내 사슴에 피어나심 종일 붕붕이 기분!!^&** 박쌤에 .천지해의 흐름을 읽으시고 대한민국에 오심 곰왔슴다.. 오날도 두분 남북소통 왕래를 기원하는 북한소식 줄감감감 유미카님 뻑꾹 뻐꾹 뻑뻐꾹 여름 오네~~ 꾸뻑.. 충!!떵!!&^^*
60 년대 70년대 그때까지 남한도 보릿고개가 있었어 참 국민들이 많이 배고팟지요 근데 그당시 대통령님이 셨던 박정희 각하께서 국민들 배불리 먹이기 위해 정말 많이 애쓰셨습니다 오죽하면 요즘 봄 5월에 만개하는 하얀 꽃이 있는데 이팝나무 꽃이라고요.그 꽃을보고 이팝 {쌀밥} 이라면 하는 생각을 하셨다는 설을 어디선가 들었어요 저꽃이 쌀밥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이팝나무라고 했다듼데 사실인지는 잘모르겠으나 어디서 그렇게 들었어요 그만큼 박정희 대통령님께서는 어떻하면 대한민국을 잘살게 할까 또 국민들께 배불리 먹게할까 오로지 그생각 뿐인 분이셨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살게 된대는 박정희 각하의 업적을 절대 있으면 안됩니다.
한국이 경제 지표상으로는 73~74년도즈음부터 북한을 앞서기 시작한건 맞는데 함정이 실제 생활상은 6.25전쟁이 끝나고 60년대 중반부터 즉, 5.16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고 5년정도 지나고나서부터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먹고,입고,자는 의식주 생활형편에선 한국이 북한보다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것이 여러 경제 전문가들과 결정적으로 그 당시 북한에서 초년시절을 보냈던 원로 탈북인들의 증언과 술회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공산진영에 동유럽까지 막대한 경제적 원조를 바탕으로 창건되고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6.25때 국토 전체가 공장 하나 남김없이 쑥대밭이 되었던 한국이 초반엔 군수공장을 비롯해 일제가 건설한 여러 산업시설이 있는 북한보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건 실로 당연한 일이고 GDP와 국민총생산인 GNP까지 우리보다 앞선 건 실제 전쟁 끝나고 20년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우리보다 앞섰던 건 10여년뿐이 안됩니다. 광복후엔 모든 전기에너지도 북한에서 끌어다 쓰다 김일성이 끊어버리며 우리도 암흑속에서 살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원자력 개발 정책을 기초로 사후 60년대 후반부터는 웬만한 도시에는 전기가 다 공급되었고(물론 지금과 비교해선 안되죠)70년에는 최초로 400km가 넘는 고속도로가 완공되고 한국이 본격적으로 북한의 경제를 앞섰다는 70년 초 중반부터는 시골 지방도시에도 아주 깡시골정도를 제외하고 전기가 공급되고 생활수도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전기사정과 대한민국의 전기사정에 결정적 차잇점은 북한은 전기가 들어와도 아직까지 24시간 공급이 안되지만 한국에는 간혹 일시적으로 정전이 되는 경우는 있는 대신 1년 365일 24시간 TV를 보고 냉장고를 가동하고 형광등이 들어 왔습니다. 댓글에 진짜 한국인인지 의심스러울만큼 80년대부터 전기가 들어오고 88년에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터무니없는 가까이고 왜곡입니다. 탈북민들은 이렇게 얘기로만 들으면 전혀 실감도 안될게 분명하니 당시 과거 풍경을 짐작하려면 옛날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시면 알 수 있을겁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78년 개봉한 혜은이 주연의 당신만을 사랑해 라는 영화속에 동대문 거리와 대한민국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던 82년 제작한 배우 유지인 주연의 도시로 간 처녀 83년 정윤희가 주연한 아가씨 참으세요 라는 영화를 보시면 서울 한복판에 자동차가 얼마나 빼곡하게 많은지 주변에 가로등,가로수 공중전화를 비롯해 네온싸인의 상점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평양보다도 대비도 안될만큼 서울을 중심으로 주변 도시들까지 생활수준이 앞서있었습니다.
1978~9년도 영상이나 사진을보면 지금의 모습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것을 느끼실수 있을거예요. 빌딩의 크기나 높이만 달라졌을뿐 도로나 공원등 엄청난 발전상을 느끼실수 있어요. 이미 지하철이 깔렸을 때이니까요. 박정희 자체를 역사에서 지우고자 무척이나 애쓰고는 있으나 그를 떼어놓고는 대한민국을 설명할수 없는것이 현실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을 역사에서 지울려고 하는 세력들은 4부류로 우선 떠오릅니다 1.적화통일하려는 북한 2.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는 중국 3.박정희대통령이 핵을 만들려고할때 강력히 거부 반응을 보였던 국제 글로발리스트 4. 일제시대 조선시대 외세의존적 정치인들의 맥이 현대에 와서는 민주화를 내세우며 맥을 잇고있는 한국의 지식인과 정치인들 이들 4개 부류들은 박정희를 지우는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습니다 박정희를 지워야 그들의 세력이 확장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에도 박정희를 지울려는 세력들이 아주 많이 보입니다 나라의 중심을 없애고자 하는 매국노들입니다 이를 반영해서 현재의 정치권에는 박정희 지지하는 분들을 찾아보기 극히 어렵습니다 반면에 국민들의 어림잡아 70%정도 마음속에는 대통령을 할려면 박정희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있습니다
남북이 갈리고 열세에 있던 경제력을 역전시키고 총한자루 제대로 못만드는 나라를 지금은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로 만든 한국 삼성의 반도체 LG의 TV 현대의 자동차가 전 세계를 누비는 한국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부러워하는 선진국들 이런 나라를 만들고 공산화를 방어해내면서 지금은 여력이 남아 탈북민이 오면 잘 정착하라고 받아주는 한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탈북민들과 함께 북한과의 자유민주통일이 되는 길이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리라고 또한 믿습니다
박신혁님은 머리가 일찍 깨인 현명한 분이군요...하긴 교동도 바로 앞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머리가 안 깨이면...심각한 세뇌병 환자이겠지요.. 말씀도 시원시원하고 막힘도 없고..후속편이 점점 궁금해 집니다..하여간 유미님의 섭외능력과 진행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에고,60 년데 후반에는 이미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60년대 중반 굶어 죽은 사람이 신문에 났었는데 전국적으로 극히 소수(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였지만 그 것이 큰 뉴스로 났슴. 이미 68년 정도에 고속도로 공사 시작하고 70년 개통 71년에 서울 지하철 착공등등..
@@oohlee100 믿지 못하겠지만 제가 83년생인데 90년대까지 제가 초가집에 살았습니다. 제 나이에 초가집을 경험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겁니다.제 고향이 전남 순천시(승주군)낙안면 입니다. 당시 우리 마을에 초가집이 다섯채 정도 있었습니다. 제가 유치원?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새로 집을 지었습니다. 학교 갔다오니 집이 허물어져 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초가집이 보존되어있고 실제로 사람도 살고 있습니다.
OK. Ok 7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발전했음 70년대 중초반부터 70년대 말까지 전국 전기가 다 들어왔응 이유미씨 남조선이 못살았다 못살았다 하던데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말까지 수력발전소(12곳) 화력발전소(18곳) 원자력발전소(1곳) 을 완공하여 대한민국 발전을 이뤘징,ㅎㅎㅎ
60년대 북한이 대한민국 보다 잘 살았다는 것은 왜곡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청와대 습격하러와 붙잡힌 김신조씨 강연을 들었습니다, 당원이나 간부급들은 제한된 배급을 받지만 일반인들 배급표가 있어도 배급을 받지 못해 웃돈을 주고 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개울이나 도랑에는 물고기와 개구리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굶주려 영양실조로 손 발의 허물이 벗겨지는 삘라그레 병이 걸린 어린이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해방후 남한은 전력을 북한에서 70%가져다 사용했습니다 48년도에 이를 갑자기 중단하니 남한은 호롱불신세의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 25의 잿더미 언제 남한에 전력을 건설할 시기가 있었습니까 1975년도에 통일벼로 쌀 자급자족을 이루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한 엄청난 공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도 경제는 무능했다고 봅니다 대내외적 기록상으로는 1974년 1975년도 경에 국민총생산에 있어서 북한을 앞섰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게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이 북쪽에 공장, 도로같은 기간산업을 집중 건설했던 영향으로 6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이 더 나았답니다. 그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북한은 결국 아사자가 속출하는 고난의 행군시대로 접어들게 되죠. 산업화로 기적을 이룬 선대의 어르신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봄꽃이 만발한 요즘의 우리 대한민국 정말 아름답고 풍요롭습니다.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