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음)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작중 주인공은 표류 도중 살인을 저지르고, 무인도에 도착한 이후 많은 사건을 겪습니다. 수상한 장소, 기이한 의식... 첫 번째 엔딩에서 주인공은 괴물에게 먹히고, 매니네 가게의 신입 사원으로 재등장하며 끝이 납니다. 이 모든 것은 게임의 배경설정을 암시하는 것 외에도, 타일러의 청년 근로에 대한 현실비판을 통해 또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조난과 살인으로 은유되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허기에 시달리는 주인공 앞에 갑작스레 출현한 햄버거 가게는, 벼랑 끝에서 등장한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햄버거로 하루의 허기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햄버거는 사실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은 직원 타일러의 입으로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들춰지고, 또다른 절박한 인물과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한 세트에 한 사람, 타인을 해치고도 그 날의 끼니만을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지급하는 입장인 타일러는 아무렇지 않게 주인공의 개인사를 알고 지적까지 합니다. 남을 밟고 올라가길 강요하는 경쟁 사회, 만족스럽지 않은 박봉, 개인의 인권을 아무렇지 않게 침범하는 중간 관리자들, 우리가 늘 마주하는 것입니다. 도망치는 타일러를 쫓아 도착한 곳은 알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 곳에서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의식에 휘말리고, 괴물을 마주한 끝에 새 직원으로 재탄생합니다. '이 달의 직원'에는 주인공의 얼굴이 새겨져있습니다. 지옥의 모습은 새롭고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기이한 의식은 직장의 불합리한 규율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표현되는 고용주로부터, 주인공은 이전의 자신을 죽이고 완벽히 회사에 자신을 끼워맞춘 인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타일러에게서 볼 수 있듯, 그것은 고용주가 원하는 모습이지 자신이 바라는 모습은 아닙니다. 두 번째 엔딩에서, 주인공은 지옥으로 표현되는 사내에 들어선 외부인으로 남습니다. 그는 곳곳에 널부러진 다이너마이트, 즉 일반인이 보기에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해 거인을 공격합니다. 의식은 그대로 중지되고 맙니다. 직원 타일러는 중대사를 망쳤으니 자신은 해고될 것이라고 주인공을 나무라며 공격하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에 그마저도 멈추고 맙니다. 그는 '우수 직원'으로써 해고를 앞둔 시점에서도 회사가 정한 규율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타일러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듯한 행동을 취하지만, 주인공과의 대화로 새로운 희망을 품습니다. 앞서 첫 번째 엔딩으로부터 매니네에 입사하는 직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과 타일러는 절박한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외부인으로써의 사고를 가진 인물이며 타일러는 회사에 얽매인 인물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육을 가공하고, 제물을 바치고, 기이한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것은 단지 타일러의 직무가 그것이기 때문이며, 여기에 개인적인 의심이나 죄책감은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휴식을 위해 병가를 신청한다는 간단한 일조차 떠올리지 못 할 정도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외부인으로써 그것을 상기시켜주었고, 타일러는 전과 달리 병가가 반려되자 고용주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직접 대항할 정도로 정상적인 사고를 되찾은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타일러와 주인공은 괴물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위기의 순간 타일러는 이전의 대화에서 주인공과 함께 보러가기로 했던 콘서트를 언급하며 주인공의 손을 놓아 내보내고, 자신은 폭탄에 불을 붙인 후 괴물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직원으로써 고용주의 뜻을 대변하던 타일러는 끝내 자신 또한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필 다리가 끼어버린 장면에는 그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았을까요. 주인공을 내보낼 때 뜬금없이 그는 콘서트를 언급합니다. 하지만 타일러에게 있어 콘서트는 친구와의 약속이자, 끔찍한 근로 생활을 버틸 수 있던 유일한 소망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친구와 콘서트란 요소는 모두 자신의 회사와는 동떨어진 존재로, 잠시나마 직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런 타일러에게 있어 주인공은 자신의 고충을 해결해주려 나선 '새로운 친구'로 여긴 듯 합니다. 주인공은 자신과 달리 그 어떤 끔찍한 상황을 앞두고도 이 희망을 잃지 않고 저항해왔으며, 타일러는 그런 주인공에게서 자신이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을 보았습니다. '네겐 가야할 콘서트가 있다.'는 말에는, 주인공에게는 아직 이 모든 것을 벗어날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을 담은 것처럼 보입니다. 폭탄에 불을 붙이며 타일러는 햄버거 가게 직원이면서도 항상 패스트푸드를 싫어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직무 그 자체를 싫어했다는 것, 그리고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인내해야했던 자신을 향한 회의감을 담은 고백이지만, 죽기 직전에야 그것을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추락하면서 타일러는 자신이 신처럼 숭배하던 고용주에게 시원한 욕설을 날려줍니다. 조용히 눈을 감는 그의 모습은 해방감으로 편안해보입니다. 주인공은 매니네로부터 벗어난 끝에 때마침 지나가던 여객선에 발견되어 무인도를 탈출합니다. 그의 상황은 벼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평범한 사회 생활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심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매니네를 발견하고, 그것이 이전에 무인도에서 방문했던 매니네와 같은 곳임을 확인합니다. 무인도 때와는 달리 직원들이 여럿인 것은 도심이니 만큼 그 규모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외형부터 내부 구조까지,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같습니다. 사는 곳이 바뀌고, 일하는 곳이 바뀌어도, 그 곳에는 여전히 매니네가 버티고 있습니다. 매니네는 현 사회와 기업 문화에 대한 풍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