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역사책 충실하게 읽으셨네요.역사를 모르는 사람한테 이야기로 해주기는 딱입니다. 그래도 두가지는 첨가해야겠어요. 1-간축객령에서 재주 있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이 다른나라로 가서 쓰이게 되고 진을 공격하게 됩니다란 이사의 말이 핵심인데 그건 쏙 빼 드셨네. 2-분서갱유:분서는 군현제에 반발하는 기존기득권의 선동하는 글이 적힌거 골라서 분서했구요 .그 이듬해에 그래도 반항하는 호족의 문객을 죽인거임.한나라초기 기록에까지도 술사로 나와 있구요.후에 한나라(한무제이후)가 유가를 숭상하면서 마치 유가 학도를 죽인거로 술사를 유생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런 폭군을 몰아낸 한나라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됨.
@@jlove1383 이런 악의적인 편집이 역사를 왜곡합니다.한나라시기부터 학자들이 부단히 바로 잡았지만 왕에게 아부하는자들이 진시황처럼 폭정하는자라 강조하기 위해 진시황과 상관이 없거나 있는 사실을 교묘하게 짜집기한걸 역사라고 강의는 수박 겉핧기한 유사학자에게 공손하게 님 좀 틀리셨습니다.교정하여주시옵소서 그래요?펀집이 잘못됐다면 화살이 자연히 펀집자에게 향하게 되있습니다.제 말이 틀렸다 생각하시면 정확한 논리로 가르침 주십쇼.모르면 배우고 잘못 알았으면 교정하는게 학자의 품위라 무례하다 생각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jlove1383 그리고 중국인들은 사람 좋고 한국인들 보다도 심성이 바르고 착한 분들이 대다수 예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70년대 한국인들이 유럽여행 하면서 제일 시끄러웠던게 코리아노 예요. 그렇듯이 중국인들이 세계여행하는 성수기에 그런걸 가지고 판단 할수 없어요!
진나라의 군대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을 통일한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이 군대의 강력함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무기의 우수성이 빼놓을 수 없는 요인입니다. 진나라 군대가 사용했던 무기 중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석궁입니다. 진나라의 석궁은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석궁보다 강력하고 정확했습니다. 이는 진나라가 석궁의 구조를 개선하고, 더 강력한 활시위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의 석궁은 약 140미터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500미터 떨어진 적도 맞힐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진나라의 석궁은 100미터 떨어진 적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나라의 석궁은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진나라 군대는 석궁을 사용하여 적의 진영을 공격하거나, 적의 기병을 저지했습니다. 특히, 진나라의 석궁은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진나라 군대는 석궁 외에도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진나라의 창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진나라의 창은 길고 가늘었으며, 날카로운 칼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나라의 창은 적의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진나라 군대는 검, 도끼, 곤봉, 방패 등의 무기도 사용했습니다. 이 무기들은 진나라 군대가 전투에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진나라 군대의 무기들은 당시 중국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우수했습니다. 이러한 우수한 무기들은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의 전쟁도 얼마나 잔인한가...220년대 전쟁은 ...포옹력이래...굽히고 들어오고 항복하면 포용...아니면 잔인하게 살육하고....인류 역사에 영토를 넓힌 권력자는 잔인한 인간이란 공통점이 있다.타국민에게도 자국만에게도 잔인한 인간이란 것이다...백성은 밥 한끼.지금은 세끼라지만 그 당시는 하루 두 끼 시절...그런데도 지금도 하나 구하기 힘든 진주를 700여개씩 달아 옷을 만들어 걸치던 여러분이 상상도 못한...알아보고 전 세계의 역사를 공부해 보세요...안되면 조선의 역사라도...박정희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였지...그를 반대한 사람들의 뿌리가 어떤 사람들인지....라도라구요.아닙니다.라도 이전의 조선역사를 알아야 이해가 조금. 아주 조금 알게 될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에게는 미래란 없습니다. 특히 한국 과거의 조선은 내부적인 문제와 일본의 침략으로 당한 아픔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계속 병들게 합니다. 지금이라도 내부적인 문제점을 고치고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대비한다면 똑같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ssu663 RISS에 조관희 검색하니 학술논문 연구논문 많이 있네요 ^^ 저 사람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무식은 죄가 아니랍니다...모르는건 남에게 말해보슈 라고 알려달라고 하기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찾아 알아갈때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유튜브만 보다가 뇌가 절여진거같은데...책도 좀 읽으시구...바깥 공기도 좀 쐬세요 ㅎㅎ
@@sssu663 중국사 연구했다고 알려줬고 중문학 연구자라 사기를 중심으로 강의하고 있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앞뒤 맥락에 따라서 연결지어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신거예요? 뭔 대답을 원하시는걸까? 다른건 모르겠고 오로지 진시황만 연구한 교수가 나와야 맞는다고 보시는지? 대중강연에 불편함 느끼는 교수들 수두룩하고 그나마 게중에 그 분야 강의할수 있는 교수가 나오면 대중 입장에선 전문가지 방송프로그램에서 뭘 더 해야할까요? EBS도 아니고...진시황 전문가 보고싶으시면 중국tv 시청하시면 될것같아요 ^^
오히려 당시 백성들에겐 좋았죠. 님이 뭘 잘못아시나본데, 저런 강력한 법은 당시 백성을 착취하던 지주 귀족 계급에게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강력한 법이 지주계급이나 귀족계급에게 적용되면서 자율적으로 백성을 탄압할수있는 재량이 줄어들어버렸죠. 오히려 이덕분에 백성들의 권리가 일정부분 보장되었습니다. 사기에 “백성들이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겼으나, 나중에는 편히 여겼다”는 것이 이 대목입니다. 이때문에 영성조씨 왕족들이 관중지역 백성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그 영향이 진나라가 무너진 뒤에도 남아서 항우가 진나라 왕실을 멸족한것에 반감을 가지고 유방에게 적극적으로 관중지방이 협력한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단지 진나라가 이 강력한 법을 다른 육국에 적용한것이 해당 지역들의 지주들과 지배계급에게 반감을 샀기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유방이 군현제와 봉건제를 함께 시행하는 군국제라는 병행책을 썼던것이고, 한 무제대에 이르러서는 진나라와 같이 완벽한 군현제로 지방을 통치하게 되는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진나라의 정책은 옳았으나, 유연성이없었기때문에 무너진것이지 그것이 옳지 않았다고 볼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