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 보살님들은 빌딩사고, 스님들도 코인도 거래하고 그래야 생멸세계가 돌아가지요~ 그런데 왜? 법정스님은 무소유로 살았을까요? 내 것이라 생각한 난초하나 때문에 그가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잊으면, 빌딩도 사고 코인도 소유하고 통장에 예금도 많이 보유해야 생명세계에서 배고프지 않고 살겠지요~ 붓다는 더 재미있죠. 그 많은 소유도 다 버리고 평생 비러먹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걸림이 없는 자유와 괴로움이 없는 행복들 누리세요~
무소유에 대하여 “세상을 모두 다 가졌으나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그는 무소유심이며 마음에 헌 바늘 한 개라도 지님이 있다면 아직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입니다.” 라는 내용이 유튜브 채널 우곡선원 과 우곡선원 홈페이지에 자세한 내용이 있어 올려 봅니다 비교해 보시면 확연한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Q :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고민이 늘었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최선이며 행복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누리는 물질은 모두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인지? 특히 요즘 어떤 승려는 외국의 일류대학을 나온 간판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치부와 호의호식하는 것이 알려져 불교의 무소유 논쟁이 한창인데 도대체 무소유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A : 불교의 깨우침과 해탈은 이해관계가 선명한 현실을 등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금의 무소유 논쟁은 해탈자의 무소유심과 유무상대의 물질적 무소유를 혼동한 것입니다. 자성(自性)이라는 근본마음은 따로 세우는 당처가 없어 속세상의 소유와 무소유라는 이분법은 해당사항이 아닙니다. 심의식이 유무상대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무심지혜가 생겨나고 생사윤회를 그치는 심오한 이치의 가르침이 불교입니다. 세상을 모두 다 가졌으나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그는 무소유심이며 마음에 헌 바늘 한 개라도 지님이 있다면 아직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입니다. 한때 세간에 회자되었던 무소유이야기는 기르던 난을 포기한 구도자의 담담한 소회이지 해탈자의 무심도 아니거니와 상대분별을 벗어난 무소유심의 정의가 아닙니다. 출가의 본질은 무소유처 무소유심에 이르기 위한 것이기에 걸식과 분소의로 물질에 집착하는 마음의 짐을 덜어 심신을 가볍게 하는 계율실천은 불도의 기본입니다. 승려가 토굴에서 기르던 난초화분이 성가시어 없애버렸다면 물질적인 소유가 줄어든 것이지 무소유심은 아닙니다. 무소유심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주착하지 않는 마음을 일컫습니다. 일체중생의 근본마음은 늘거나 줄지 않는 질량불변의 우주 삼라만상을 다 담고 있기에 물질의 유무에 저촉받지 않습니다. 애지중지하던 난을 포기하니 마음에 여백이 생기고 홀가분해졌다면 그 만큼의 무소유 진가를 맛본 것으로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불법(佛法)은 소유와 무소유를 탓하지 않습니다. 단지 마음 앞에 그 무엇이든 가려진 해탈지혜는 없기에 시대는 공유하나 상대에 집착하지 않는 무소유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체만유는 인간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진실상에 비추면 물질은 소유가 아니라 잠시 위탁받은 것이고 관리책임이 주어진 인간불사도구일 뿐입니다. 말세중생이 물질에 예속되지 않는 도리를 깨닫는 것은 천지개벽과 다르지 않기에 불도는 동기부여의 일대사인연을 맞이하기 위한 갸륵한 헌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는 물질의 유무를 나누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무(無)를 선택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무소유심은 마음에 아무것도 담아두지 않는 텅 빈 공적(空寂)을 일컫습니다. 영원한 자유 무념무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소유를 경험해야 합니다. 해탈에 이르는 여정은 어쩔 수 없어 스스로 놓고 비우고 버린 무소유와 영혼에 각인된 무명업장을 몽땅 빼앗겨 버린 처절한 무소유 체험이 유, 무위법에 물들지 않는 등각지입니다. 물질에 집착하는 중생심이든 영혼에 새겨진 전생업장이든 근본마음을 가린 습기가 완전히 사라진 지점을 굳이 유위법으로 표현하면 무소유라 할 것입니다.
무소유가 한창 유행 할때 한 승가원에서 스님이 무소유에 법문하시고 가시는 뒷 꼭지에 대고 이렇게 이야기한 결예를 했지요 ㅡ무소유는 성직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왜 재가 불자에게 무소유를 강조하는가 재가 불자에게 합법적으로 돈 많이 벌어서 보시 많이 하시라고 해야 할 일이다 화난 적이 있었 습니다 ㅡ왜?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으나ᆢ 잘못알구 계신분들중 연배있으신분들이나 여러 좋으신분들 지인분 다양한 인연에 계신분들도 있을텐데 ᆢ 쩌리들이란 표현은 부담스러움ᆢ단지 잘못알구 있을뿐인건데ᆢ 바로 면전에서도 연배있으신 보살님들께 이렇게 말할수 있을까요ᆢ 불특정다수가 보는데요ᆢ 소속되계신 절에 다니시는 수많은 보살님들중에도 다 정확히 알지 못한분 계실수도 있구요 ᆢ
불교의 삼법인 중 무아 사상 즉 나라고 할 것이 없다 따라서 내 것이라 할 것이 없다. 그냥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잠깐 가지고 있을뿐 내것이라고 할 만한게 어디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이해한 무소유. 텅빈 충만이 왜 공의 개념이 아닐까? 허의 개념일수 있지만 공의 개념이 아니라고 하기엔 작용의 실상을 잘 표현한 말인듯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