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그 누구도 석가모니를 판단하거나 평가할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감히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아무리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라도, 석가모니의 철학이나 사상, 말을 보면 차원과 급이 다른 존재입니다. 같은 인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영혼으로 봐도 차원이 다른 존재네요.
이 위대한 진리를 2천년이 넘는 과거에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하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모든것에 집착하고 갈애하며 살아가죠. 그것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고 특히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세상은 더더욱 힘들기만 합니다.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지는것보다 모든것을 내려놓고 평온하게 집착하지 않는것. 부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도 많은 중생들에게 큰 울림을 주네요.
불교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존재부터 인정한다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모든 생각과 행동은 나로부터 나오고 번뇌와 쾌락, 깨달음, 오만 까지 일단, 자존을 인정함을 통해 시작됩니다 부처에게 가르침은 받되, 의지하지 말라 아... 이 얼마나 현명한 가르침일까요
내가 겪는 문제나 어려움이 무엇인지 먼저 제대로 인식하고 그다음 그것을 직면하고 인정해야만 진정한 해방 그리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게된다는 붓다의 깨달음.😇 당연히 인생은 고통 그자체. 그 고통을 제대로 아는 것만으로도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가질 수 있다는게 중생들을 향한 붓다의 마음
윤회를 한다는 것은 곧 전생을 믿는 것이니 오늘의 전생은 곧 어제요. 오늘의 내생은 곧 내일과 같습니다. 어제의 하루하루가 모여 오늘을 만들고 오늘의 하루하루가 모여 내일을 만드니 전생-현생-내생으로 생각하면 윤회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기를 두손모아 발원합니다. 🙏
윤회는 이렇게보면됩니다. 죽으면 무엇이되도 되겠죠? 흙으로가든 물이되든 동물이되든 사람이되든..근데 사람이 그나마 가장 높은 존재입니다. 사람에서 떨어지면 다시 사람으로 오기가 힘듬. 왜냐면 동물이하는 업을 쌓기가 힘듬.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났을때 좋은 업을 많이 쌓아라는거임. 해탈은 그 위 존재이긴함. 기독교는 나쁜짓을 하면 신이 벌해 착하게 살아라고하겠지만 불교는 좋은일은 좋은일을 낳고 나쁜건 결국 나쁘게 돌아오기에 착하게 살아라고합니다. 인간의 지성으론 그 인과를 못깨달을뿐입니다. 근데 현대과학에선 세상 모든게 연결되어있다고하는게 서서히 밝혀지고있죠. 쉽게말해 나비효과로 이해하면 그나마 이해가 쉬울겁니다. 그래서 윤회는 그런 개념으로 보면됩니다.
굉장히 신화적이고 가상의 존재같은 붓다는 가보면 역사적 유적이 책여적힌대로 그대로 있음 즉 역사적으로 실재하셨던 잘 가르치고 잘사시다 늙으셔서 열반한 현자 철학자임 반면 예수는 예수쟁이들이 사실인것처럼 너무 강하게 말하지만 오히려 역사적 실체나증거가 하나도 남아있는게 없음
@@ndkndkd5900 보통 불상이라 하는데.. 불교를 잘 모르시는군요?ㅋㅋ 그건 기복신앙과 비슷한 뉘앙스라 저도 좋다 생각하지 않지만 중요한건 마음가짐 입니다. 단순히 빌거나 복종하는게 아닌 깨달음을 구하거나 존경의 의미라면 우리가 설날 절을 하듯이 큰 문젠 없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 대승불교(혼자만 알기보다 모든중생을 보살펴야한다는 종파) 가 들어오며 부처님이 신격화된 모습도 있습니다만, 그건 좋지는 않지요. 다만, 그리되지 않았다면 안타깝게도 불교는 이리 퍼질 수 없었을 겁니다. 종교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이용되왔기에 (불교포함)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신격화 덕분에 더 널리 퍼져 알려질 수 있었죠 (아마 대승불교권에서는 말이죠) 또, 많은 생(生)동안 (부처님은 부처님이 되기 이전 여러 전생 가운데에서 수련했습니다) 수련을 해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이니까요. 저는 깨달음을 얻은 삶 전과 후가 달라졌음을 느껴요. 전까지 있었던 집착,탐욕은 줄고 화도 줄었는걸요. 괜히 긴 글 남겨 죄송해요~
부처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이 영상으로 쉽게 이해했네요. 깨달음을 쫓다보니 깨달음이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고있는 내가 만들어낸 신기루 와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지금 까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이유는 그시대에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파한데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네요. 깨달음이라는걸 얻는다고 초월적 존재가 되는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건 변함이 없으나 그 삶의 질이 달라지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수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정화가 됨으로 인해서 지혜가 개발이 되고 지혜 개발로 인해 심리가 바뀌는 것이 반복되고 번뇌가 덜어진곳에 청정함이 자리하고 행복감이 일어납니다 고로 어제의 나 오늘의 나는 다르다고 느끼며 수승한쪽으로 나아가서 결국 범부가 성인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것입니다.
영상 끝까지 잘 보았고 유익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현일지언정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현생의 시간을 스쳐지나갈 운명이라면 선택이라는 굴레를 못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선택하시면 본인의 운명 또한 밝은 빛을 보고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리라 생각해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감하실것이 우리는 본연에 주려고 태어났지 얻으려고 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그러니 좋은것을 주고 가는것이 좋겠죠~^^ 어떠한 종교든 좋은것을 후대에 주는것이 목적이였듯이 말이죠~단순한 세포처럼.......
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만들어진 통찰력있는 영상은 처음이예요. 연속 세 번 보았어요😅 불교의 핵심용어도 알기쉽게 설명해주셔서 이분 누구시지?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노자,장자 뵙고 다시 한번 더 봅니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도 했어요👍👍
대단히 감사합니다.ㅎ 최근 한국에서 니까야가 쉬운 한글로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ㅎ 전재성 선생님과 초기불전연구원에서 각각 나와 있습니다. 근데, 같은 부분을 비교하여 읽어보시면 전재성 선생님의 번역본이 너무 쉽게 잘 되어 있습니다.ㅎ 기존의 대승경전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이 니까야를 읽으신다면, 아마도 의구심이 많이 들겁니다. 니까야 속 세존께서는 대승경전 속 부처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말이죠. 결국 경전 속 가르침마저 크게 다릅니다.ㅎ 후기 인도불교가 대승불교화 되고 이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종교의 탄생 즉 선종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었죠. 다른 종교입니다. 명칭은 불교라 해도 말이죠.ㅎ
@@net-carrier 네, 감사합니다.ㅎ 그렇다해도, 우리 스승 고타마세존의 가르침은 스승을 믿고 가르침을 믿고 올바르게 계정혜를 실천하여 다시는 이 지구라는 사바세계에 더 이상 윤회전생하는 것을 끊는 것이죠. 서구의 그 철학처럼 학문을 탐구하는 바가 아니죠. 이 점이 대승이라 자처하는 종교와 서구철학과의 극명한 차이점이죠.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종교란 결국 인간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오랜시간이 자나도 가르침이 유효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하다고 봐야지 인간이 어리석다는 편협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봐라보는 것은 어르석은 행동이 아닌가 싶다. (feat。부처가 예수님임? 2000년...)
여러분! 불교는 참선 위빠사나 명상 등과 불교경전읽기 염불 등 여러 방법으로 공부 수행 하는 종교이고 부처님 열반 후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한쪽으로만 공부 수행하지 말고 다양하게 공부 수행하길 바랍니다. 불교를 만나면 그 인연 끊지 말고 진리를 깨달아 부처님 되어 영원한 자유인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생명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역사에서 불교만큼 위대한 종교를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 되어 불국정토 극락정토 이룩해야 합니다 힘차게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일본에서도 제대로 된 불교가 있고 사이비가 많고 sgi(남묘호렌게쿄)도 사이비입니다 제대로 된 불교를 종교로 하여 모두 부처님 되시길
부처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십니다..3천년전에 이미 남녀평등과 동물살생 금지를 말씀하셨으니깐요!! 인간이 수명이 주는건 살생때문이라고 했습니다..인류가 수명이 느는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살생이 줄어들기때문이 아닐까 합니다..!..!!(물론 전쟁때문에 도루묵이지만) 거기다 부처님의 첫번째 불교의 핵심 교리는 보시 즉 기부입니다.. 아무리 도를 딱아도 전생과 이생에 보시를 쌓지 않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제물은 물론 몸도 스스로 바치는 엄청난 보시를 거의 매생애 마다 쌓아서 부처님이 된것입니다..!! 지구상에 그렇게 보시를 쌓아서 될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붓다가 6년간 고행정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나는 한 10년+@ 정도 집중적으로 고민을 해서 깨달은 듯 하다 물론 붓다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이 같은 수준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이고 붓다는 모든 중생에게 설명할 수 있는 깨달음이다 내가 10여년 동안 고민해서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그 고민들 속에는 분명 붓다의 유산이 없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속세의 삶을 병행하면서도 10여년만에 나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 거다 대부분 나혼자 사색을 하면서 고민을 했을 뿐 누군가의 사상을 탐닉한 것은 아닌데 깨달음을 얻어가면서 세상을 둘러보니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동서고금 너무 많았고 붓다 장자 공자 예수 니체 아들러 같은 위인들의 사상이 별로 놀랍지가 않고 그들의 격언이 너무 당연하게 수용이 되었다 그래도 놀라움이 있다면 추상적인 사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체계화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나름의 깨달음을 얻기는 했는데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깨달음에 대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평안하고 아무런 불편함, 이를테면 지겹다든가, 지루하다든가 하는 느낌이 없습니까? 다시 말하면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고 아무런 취미활동도 없고, 친구도 없이 홀로 그야말로 나물먹고 팔배게 하고 나무 밑에 주구장창 누워 있어도 만족합니까? 깨달은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 것입니까?
@@박희욱-h5p 깨달음이라는 인간의 언어에 집착하지 마세요ㅋㅋ 인간의 언어는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것이 결코 본질은 아닙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더이상 도가 아니다 와 비슷한 겁니다 깨달았다고 했으나 그 깨달음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전적 정의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아주아주 최소한의 의미만 담고 있을 뿐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평안하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것도 깨달음을 설명하거나 정의하는 한가지 방법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깨달음을 설명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앞으로 더 고민할 것은 이 깨달음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것인가 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세상 무엇을 봐도 왠만해선 더이상 놀랍거나 새롭지가 않아요 영상에 나오는 붓다의 사상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좋기는 한데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이네요 어째서 세상이 놀라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냐고 한다면 아직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네요 그래도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서 설명하듯이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해야겠지요ㅋㅋ
@@ojw0127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죠 다르게 말하면, 타인을 의식하면서 사는 삶이기도 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삶이기도 하죠 그러한 삶에 의문을 품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오직 나만의 욕망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욕망에서 해탈한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진짜 욕망은 없더군요 그 무망감에 한동안 괴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해방감과 진정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왜냐면 내 마음대로 삶의 의미나 욕망을 채우면 되니까요 진정한 자유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 같지만 때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던 때가 덜 괴롭다고 느낄만큼 진정한 자유는 정말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욕망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의 욕망으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쉬운 게 아니더군요 이런 게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사상들이죠 심지어 그들은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져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래서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서 그것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나 싶기도 합니다 종교도 결국 좀 특별한 타인의 욕망인 거죠 그렇게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자신만의 욕망과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하는데,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거 같아요 행복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죠 생존에 필요한 행복들은 적당히 누리면서 살고 있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햇살의 따뜻함을 느끼거나 살랑이는 바람결의 시원함을 느끼거나.. 영화 소울과 비슷합니다 그런 행복은 당연한 거고, 살아있으면서 하고 싶은 것(욕망)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을 고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윙수트 입고 베이스 점프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을 동경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상이 없는 스포츠라고 조롱을 하지만 그들은 목숨까지 걸 만큼 신나고 재밌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삶의 허무함 속에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건 어차피 언젠가 죽을 인생인데 목숨까지 걸 만큼 의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남 눈치 볼 것도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스스로 그렇게 느끼면 그만입니다 근데 남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은 쉬워도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의미를 찾는 건 진짜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그런 자신만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많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생어우환 사어안락인 겁니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단식수행을 하고 있을때 강의 배위에서 악기를 팅기는 모습을 보고 중도를 깨달았습니다. "줄을 너무 세게 당기면 줄이 끊어지고 줄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고행으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단식 수행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처이 첫번째 깨달음 이었습니다.
불교가 내면적인 과로움은 잘 분석햇는데 이건 싯다르타가 왕자의 신분이라 사실 외부적인 괴로움이 대부분인걸 몰라서인것 같다. 회사에는 갑질하는 오너나 상사가 넘쳐나고 일도 많아 괴롭고 나라 안에서는 이념이나 독재 비판했다가 고문 받거나 처형되는 사람이 넘쳐나고 나라간에는 전쟁으로 죽거나 학살되는 사람이 백만에서 수천만이다 불교의 심리적 분석은 좋지만 고통을 줄이기 위해선 각자가 바른 인간사회를 위해 뮌가를 해야할것 같다
그거는 솔직히 과대해석이라고 생각함 물론 붓다가 굉장한 인물은 맞지만 나는 붓다가 그냥 천재적인 인간의 한 사람일뿐이고 논리적으로 자기 철학을 전개해나간거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해했다는것은 너무 과장되게 신격화 하는거라고 생각함 붓다의 말이 애매해서 양자역학과 비슷한 부분이 겹치는거라고 생각함 그렇다고 붓다의 생각을 절대 폄하하는건 아님 양자역학을 나는 붓다가 당연히 몰랐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의 생각은 위대했음 굳이 양자역학을 붓다가 알았다는 과대해석에 신격화하지않아도 붓다의 생각은 유용하고 위대함 애초에 양자역학을 모르더라도 대략적으로 붓다는 세상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추상적으로 파악했다고는 생각함 굳이 양자역학을 붓다가 알았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건 너무 신격화임 뭐 그쪽이 종교로서 불교 믿는 신도라면 그런 주장하는걸 이해는 할수있음 본인이 그런 과장되고 신격화하는 주장을 하는 순간 내가 보기에 그쪽은 이미 종교적으로 불교신자임 불교신자들이라면 부처가 수천년전에 양자역학을 포함한 모든 세계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서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믿을수있긴하지 불교신자들의 입장에서 부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고 초월적인 깨달음을 얻었고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모든 진리를 알고있는 존재니까 그런데 무교인 관점에서는 그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몇가지 허구가 섞여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는 굉장한 천재이고 실용적인 철학을 이야기한 사람이라고 생각됨 확실히 부처는 예수하고는 다르긴함 나는 그리고 굳이 부처가 그당시에 양자역학을 모르고 설법을 했다고해도 부처가 설법한 내용은 전혀 퇴색되지않는다고 생각하고 현대인들은 현대과학으로인한 몇가지 증명으로 양자역학의 이론을 알수있으니 부처는 당시에 몰랐겠지만 최종적으로 그가 말하고 싶었던게 이런거일수도 있겠다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면되는거임 그쪽이 불교신자가 아니라면 굳이 부처가 양자역학을 명상하다가 수천년전에 알았다는 허무맹랑한 가정하면서 신격화는 굳이 안해도 될듯
정말 이해도가 엄청 나시네요. 귀에 쏙쏙 들어오게 어려운 내용을 쉽게 잘 풀어주셔서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팔정도에서 바른 말, 바른 행위가 조금 이해가 안 됩니다 사성제를 올바로 알고 탐진치를 짓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행하기 위한 계율로 바른 말과 행위를 해야 하는데 바른 말을 거짓말, 폭언, 욕설을 하지 않는 것 바른 행위는 살생,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 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거짓말, 폭언, 욕설만 하지 않으면 바른 말이 되고 괴로움이 사라질까요? 살생, 도둑질만 하지 않으면 바른 행동이 되고 괴로움이 사라질까요?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게 가능할까요? 과거 조상들은 지구가 네모라고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지만 결국 저 말은 거짓말이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무명으로 인해, 그리고 여러 이유로 바른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바른 말이 지금은 바른 말일 지라도 미래나 과거에선 바르지 않은 말이고 또 무아, 나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의 역할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같은 말이 바른 말이 되기도 하고 바르지 않은 말이 될 수 있습니다. 팔정도의 가르침이 결국 부처님이 중생에게 알리고자 하는 핵심 수행법인데 과연 지금 저 말대로 수행하면 그 수행이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사람에게 모두 무명이 있어 그 실체를 보지 못 하는데 과연 바른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가능할까요? 바른게 무엇인지 사람이 알 수 있는 부분인가요? 그걸 알 수 있다면 무명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논리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예수, 부처, 노자와 같은 위대한 선각자들이 있었고 가르침을 남겼건만 인류는 가르침을 훼손하고 종교를 권력화하고 끊임없는 전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가르침은 대동소이하다고 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면 천국이든 천당이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동감합니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깔끔하게 정리했네요. 무상 무아 등은 어차피 거의 깨달음의 경지에 가서야 얻을 수 있는것이기에 실질적으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사성제와 팔정도 겠지요. 다른건 다 거의 뜬구름이겠지요. 너무나 논리적이고 명백한 사실을 평생을 공부했지만 24시간중에 23시간 이상은 까먹고 사는듯... 영원한 범인으로 남을 인생을 살 모양입니다.
@@승민이-d3l 그런 식으로, 될 거 같지가 않은데... 모든 것이 연기라는 것에서 출발, 3법인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이해 그 자체가 깨달음의 처음이자 끝이지... 4성제나 5온, 8정도니 하는 것은 그 과정이나, 그런 상태를 유지함을 설명한 것이고??? 뭔가, 순서가 잘 못된 느낌이네요~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지만 ㅎㅎㅎㅎ 애초 삶이 괴롭지 않은 사람은 굳이 깨달을 필요 없습니다.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없지요. 윤회니, 열반이니, 불상, 스님이니... 하는 것에 집착하면, 그냥 우습지요 ㅎㅎㅎㅎ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에 다 있지요~
@@kimstone2147 무상ㆍ고ㆍ무아 이 삼법인은 이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진리이지요 이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수행의 끝이 아니지요 무상ㆍ고 ㆍ무아의 현상의 이세상에서 탐ㆍ진ㆍ치를 소멸해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표는 탐ㆍ진ㆍ치의 완전한 소멸이지요 윤회를 끊고 열반을 획득하는 서원을 세우는것을 두고 이것또한 집착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집착은 불선법을 낳지만 열반으로의 서원은 선법을 낳습니다
와 ! 정말 정리 잘하셨네요. 불교가 위대한 이유는 4성제,연기법 같은 구체적인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는 뜬구름잡는 거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믿으라 하죠. 불교는 맹목적으로 믿는 것보다 똑똑한 지성을 발휘해 깨닫는 것이라 지혜로운 사람들의 종교라 생각됩니다.
그 진리가 맞습니다 말그대로 그 본능들을 비워내면 열반이지요 기독교에서는 그본능들을 근본적인 죄라고 얘기하고 우리가 지옥의 고통으로 향하는것은 우리의 죄때문에 가는것이라고 합니다 조금 다르지만 불교 얘기도 같은 맥락이구요 그냥 신을 믿으라 하는것이 아니라 기독교도 그 죄의 해결을 제시하는것입니다 아무리 저 방법들을 실천해도 정말 무아가 될수 있을까요? 정말 완전히 죄를 비워낼수 있을까요? 비워낸것 같다가도 조금만 툭건들면 그세 올라오는게 인간 본성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해도 도저히 할수 없기에 그 고통을 대신 감당해 주셨다는 예수님이라는 해결책을 믿고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선한방향을 따라 살아가고 끝내는 그분과 같은 성화(불교에선 이걸 열반이라 표현하네요)의 과정에 이르는것입니다 그냥 무작정 너네 복받을거니 믿으세요 이게 아닙니다.. 진정한 크리스챤이라면 현세에서 내대신 이 모든 고통을 감당해주신 예수님을 믿으며 감사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위해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삽니다 인간이기에 넘어지지만 내대신 감당한 예수님의 고통과 그 사랑을 생각하며 매일매일 선으로 나아갑니다 저도 이 불교 교리를 많이 들어보았지만 해결될수는 없었어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완전히 비워낼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허점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자신의 관견으로 고대종교 운운하면 토론 나가서 어떻게 대처하실려구요. 종교 자체보다는 철학적 학문에 가깝다는 말도 자신의 좁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종교적 요소가 훨씬 강합니다. 단순 철학이라면 석굴암 이나 전세계에 산재한 거대한 석불, 사원, 종교 예술들을 어떻게 설명하실건지요?
@@삼수목 종교적요소가 강해진건 후세 사람들, 즉, (권력자)들에 의해 종교화 우상화가 되면서 비대해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재의 불교가 많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버렸지요...종교화 되면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부처의 본래 가르침에서 많이 어긋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왜곡되어진 다른 이유는 대승불교에서 힌두교를 받아 들이면서 윤회라든지 복을비는 기복신앙들도 같이 들어오면서 많이 왜곡 변질 된것으로 압니다~~^^
이게 아무래도 고타마 싯다르타가 종교 창시자이다 보니까 신격화되고 꾸며낸 이야기들이 많아서 설화가 많긴 한데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정말 지금도 적용되는 실질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함. 특히 개인적으로 사성제의 삼전십이행상을 처음으로 봤을 때 정말로 소름이 돋았음. 그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철학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실질적인 가르침들도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