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후원 감사 드립니다!! 좀 더 재밌게 만들어 드리려고 소질이 없는 이미지 작업을 해가면서 지도 및 상황을 준비했는데, 재밌게 봐주셔서 뿌듯합니다!! 얼마 전 건강을 며칠 잃어보니, 건강이 인생의 대부분이더군요. 그래서 운동 시작했습니다. ㅋㅋ M님도 일도 좋지만 꼭 건강 돌보시면서 더운 여름 무탈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사실 저 시대까지만해도 문관 무관의 구분이 엄격한 것이 아니라서, 정말로 전문적으로 무관에 임관해서 군인만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건 사실상 송대 이후라고 보면 됨. 특히 현장에서 구르는 중하급 장교 정도 지위는 아무래도 전업 군인들로 만들어 썼지만 그 위로 가기 시작하면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서 군주가 내정직에 임명하면 내정 하는 거고, 일 생겼을 때 장수로 임명하면 장수로 출진 하는 거고... 하는 식.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당시에도 군호와 관호의 구분 및 군부와 조정의 일이 구분되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직 관점에서는 대업을 이룰만한 큰 세력으로 성장했을 때이고,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직급에 올라갔을 때나 구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각 지방의 작은 세력에서는 대개는 군주가 그 때 그 때 필요해서 시키는거 하는 식임.
사실상 연의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인듯 ㅋ 조인 같은 경우는 무패의 명장이었지만 연의에서는 관우한테 발리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었는데, 악진은 핵심 전공이 관도대전에서 순우경 목벤거라 언급 자체가 많이 안되는듯 ㅋ 장합 장료는 각각 대촉 대오 전선에 활약해서 촉빠 오빠 들에게 고평가 받는 부분이 있고 서황 우금 역시 관우의 최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묘사가 많이 된 방면 악진은 촉오를 상대로 활약한거보다는 조조가 중원에서 패권을 잡는 과정에서 여포, 원소와 싸울때 큰 공을 많이 세웠는데 이게 대촉, 대오 전선대비 연의에서도 삼국지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아무래도 언급이 부족한듯 ㅋ 솔직히 조조입장에서야 서황이 관우 잡은거보다도 악진이 오소에서 순우경 목 벤게 최고의 전공 아니겠음? 관도대전이야말로 조조 입장에서는 중원의 패권을 결정짓는 최고의 승부였고 원소세력을 흡수한 이후에는 사실상 조조입장에서는 쩌리들을 정리하는 수순이었지 원소와의 일전이나 여포와의 일전처럼 졌다고 캐삭되는 전쟁이 아니었음 ㅋ 그러니 조조 입정에서는 대 여포전, 대 원소전에서 전공을 세운 악진이 대오 대촉 전선에서 활약한 장료 장합보다 더 고평가 받을수 밖에 없었을듯
남군 공방전때 악진, 이통, 문빙이 포위망을 뚫은후 협공해서 유비와 주유를 몰아내는게 아니라, 조인이 퇴각할 정도면, 남군 공방전 당시에 적벽의 패배로 인해 조조군의 병력이 상당히 부족했던것 같네요. 악진이 더 오래 살았다면 대오 전선에서 사령관으로 활약할수 있었을까요?
@@이하늘-c3g기본적으로 당시절에는 호족이 개인 사병을 부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것때문에 조조시절에는 기본적으로 친족말고는 아무도 못믿는다 여서 친족외에는 대규모 군권을 쥐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비대에도 촉-조진, 오-조휴라는 라인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다음은 사마씨에게 권한이 넘어갑니다. 이 중간과정의 일련의 문제는 저는 개인적으로 하후씨의 몰락에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조조가 하후씨를 혈족으로 보고 묶은 이유는 인재의 보충입니다. 자신과 혈족인 조인,조홍만으로는 분명한계가 올것이란 판단에 하후씨를 묶었지만 아시다시피 조씨는 입양이든 사돈의 팔촌이든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할 능력자들을 보충했던 반면 하후씨는 1세대 이후 사실상 몰락이라 부를 만큼 인재가 메말라버립니다. 이에 조비는 조진 사후 결국 자신의 사우중 군사적 능력이 있던 사마의를 차악으로 선택한 것인데 문제는 혈족을 키우기전에 조비가 가버리죠. 그래서 어느정도 공과 호족들의 뒷배를 업고 사마의의 군권이 유지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하늘-c3g 그렇다면 장합은 왜 군권을 잡지 못했나? 전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전공탓이라 생각합니다. 장합은 1세대에 속하는 무장입니다. 거기에 주인을 몇번 바꾼 경력도 있죠. 배신경력도 있는데 나보다 윗세대 거기에 군공도 많다? 어느군주도 단독 군권을 주지않을 겁니다. 우리야 결과를 알고보니 배신하지않을꺼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는 판단하기 쉽지않다면 불안요소를 최대한 치우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의는 조비와 같은 동시대의 인물이고 접점이 높기때문에 차악이라 판단하고 썼지만 선대의 유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기에는 조비가...좀 그런그런 인물이었죠...결국 총대장은 우리가 게임에서처럼 충성도 100이고 통무지가 높으니 장군! 이 아니고 정치적인 요소가 엄청녹아든 인편일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조조가 상장 중 하나로 삼았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는거죠. 코에이 삼국지는 밸런스 문제 때문에 초창기에는 조위의 장수들을 의도적으로 폄하했고 최근엔 제갈량까, 조비빠로 변한 모습 ㅋ 코에이 삼국지의 숫자장난은 나관중의 그것 마냥 창작도 아닌 그저 역사왜곡물로 봐야할 겁니다. 저 시대 인사들의 평가기준은 정사기록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거죠. 게임성으로 쳐도 코에이 삼국지물은 그 수명이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비는 장강 남쪽 무릉영역인 공안에 있었으니, 그럼 형남의 각 지방을 지방관을 보내 통치해야했을텐데 그 과정에서 강릉 북쪽의 한수 아래쪽에 관우를 배치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악진이 양양태수로 있는 동안은 상시 관우랑 대치할 수 밖에 없던 것이죠(편지 속 언급) 그리고 악진이 격파한 것은 임저장과 정양장이지 임저와 정양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격파된 위치가 임저와 정양이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조나라의 진양태수 땡땡을 격파하였다" 가 일반적으로 "진양"을 격파한게 아닌 진양태수의 관직을 가진 "땡땡"을 격파한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건 가설이긴 한데 악진의 움직임이 조조와 양동작전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후 위나라의 남정에서는 형주와 양주방면으로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이 행해진 경우가 꽤나 있으니까요 뭐 여튼 다 감안하고 악진이 위왕부 직속 우장군이란건 악진 생전에 동급은 우금뿐이고 장합 장료 서황은 한단계 아래였다는 점
청니대치 당시 관우 악진은 그저 대치만했다는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 이유로는 이때 유비는 익주에 있었는데 유장에게 보내는 서신에 손권이 내게 구원을 청하고 관우는 청니에서 대치중이다라고 시작하는 구절인데요 이때 정말 관우가 패햇다면 유비는 유장에게 편지를보내 병사 더달라할게 아니라 열나게 형주로 뛰엇어야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정신건강 전문가, [공감 디자이너] _ 하투빠 입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데, 유튜브 검색하다가 손찬이형을 발견했네요. 삼국지 관련해서 이런 잼있는 영상들이라니!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고~ 진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덕분에 힘을 얻어 더욱 육아에 정진할 수 있겠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악진이 평가 절하되는 이유 1. 연의에서는 이전과 함께 세트로 묶이는 조조군 따까리 콤비였다 2. 연의에서는 그게 제대로 언급된건 순우경, 곽도 죽일떄 밖에 없는데, 그 나마도 유비랑 관련없는 관도대전이고 순우경이 졸장으로 묘사되어 잘 주목 받지 못했음 3. 정사에서는 군공이 또 ㅈㄹ리 많지만, 조인, 하후연의 경우와 비슷하게 생각보다 에피소드화 되기 힘든 전공들... 4. 인생사의 드라마틱한 전공이 있어도 주목을 못 받는 와중에, 말년에는 직접 출병하는 입장에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합비에서는 장료가 그 모든 주목을 다 가져가 버림 ㅠㅠ 결국 악진도 예토전생 후 나관중 레이드 참가하는 1인이 될 느낌.. ㅋㅋㅋ 솔직히 악진 정도 되면, 조조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초기부터 함꼐한 유능한 이사진의 일원으로서 거의 백두혈통 바로 아래급으로 대우 받았다고 생각함. 우금도 그럴수 있었는데, 말년에 운수가 꼬여서 그만.. 개인적으로는 창천항로에서의 악진이 초반에 병졸출신으로 나온 고증오류 빼면, 캐릭터는 정사와 가장 가까운 이미지 아닌가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