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자사 백마장군 공 손찬은 황제폐하의 조서를 받드시오 ‘짐이 자네의 영상을 측간과 마차에서 잘 시청하고 있네, 뛰어난 분석과 말솜씨가 마치 제갈량 앞의 왕랑이요 장소가 다시 살아온듯 싶네 진즉 황실 내탕금을 내어 자네를 위무하고자 하였으나 짐도 유부남인지라 눈치..으음 아니고 재정이 궁핍하여 늦은 점 이해해주기 바라네 이리 조서를 내린 까닭은 내 일찍이부터 삼국지 게임을 하며 오환이며 산월, 선비,강,저 등이 어떤 민족인지 궁금하였으며 답돈,구력거,유표,가비능,어부라 등 또한 어떤 인물들인지 심히 궁금하였네 그래서 이민족에 능통한 자네가 이 일은 꼭 맡아주길 바라네 이 영상은 준비에 100시간 제작에 100시간 편집에 100시간을 줄터이니 너무 서두르지말고 제작해주게 그리고 임무 완수 시 자네를 연공에 구석을 내리며 조운을 기주자사에 공손범을 청주자사에 공손월을 병주자사에 봉하겠네 그대는 수고롭다 말고 황실을 위해 영상을 꼭 만들어 주기 바라네 내 측간에서 그대의 영상을 보며 기뻐할날을 기다리겠네‘
신이 미력하여 역경루에 짱박혀 있음에도 구석을 내리심은 비록 삼국지가 중화의 근본에 머물러 있으나, 널리 모든 민족을 살피라는 깊은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금 신이 재생목록에 '서진'을 신설한 것은 유표와 유총 등의 이민족을 살피기 위함이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이들의 서사를 정리하여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정봉, 진수 등의 이미 기획된 무리들이 있어, 시일이 다소 걸리더라도 폐하께서는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유비와 완전 반대로 솔직한 만큼 인기를 얻지 못해서 실패한 인물이 원술이죠. 젊었을 때부터 나쁜 짓을 많이 했고, 거병 초기 근거지 약탈, 이런 부분으로 지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제위에 오르고, 심지어 유씨 진왕을 쳐서 죽여버렸으니 이 구실로 조조한테 좋은 일 시켜주고 역사에서 퇴장..
야심만만한 능구렁이 유비.. 한편으로는 헌제에 대한 충정과는 별개로 한 황실 복위는 진심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번에 여색에 혹하여 가남풍을 가규 가충보다 먼저 다뤄서 올리셨다는데, 그렇다면 손찬이형 취향에 맞을지도 모르는 제갈량 마누라 -금발태닝갸루- 황월영에 대해서도 한 번 다뤄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반대지 강압이든 어쩌든 지가 지손으로 선위한건데 뭔 역적드립임. 오히려 같은 유씨가 명맥을 이어주니까 고마워해야하는거지. 애초에 백성들이 유비따라간거부터가 중산정왕의 후손 뭐 이런게 아니라 유약한 유협을 대신할 수있는 한의 명군감이라 생각해서임. 애초에 국가시스템이 완전 붕괴된 영제이후의 황실을 백성들이 좋아했다면 황건적도 없었겠지.
오서 제갈근전에서 제갈근이 이릉대전을 막기 위해 보내는 편지 내용을 보면, 적어도 이릉대전 전까지는 촉과 오 양쪽 모두 헌제를 죽었다고 잘못 알았던 게 아닐까요? (”폐하께서는 관우와의 관계와 선제(헌제)와의 관계 중 어느 쪽이 더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형주와 해내 중 어느 쪽이 크다고 보십니까? 똑같이 원수를 갚는다고 할 때 어느 쪽이 우선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끼끼 나름대로는 충성했다고 생각한듯.. 대충 후한처럼 유씨에 의해 천하가 유지되면 그만이지, 그게 꼭 광무제의 후손일 필요가 있냐는 주의인듯. 그러니까 천하의 안정에 필요한 쬬를 선택해서 지원했고, 협천자 하라고 한거... 일단 협천자 하면 원술같은 참칭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왠걸 지가 왕을 하겠다고 때를 쓰는 일이 벌어질줄 몰랐지 .
정치적인 이유를 보면 손찬이형의 말이 정확하게 맞죠. 만약 유비가 통일을 했다면 유협이 살았겠는가에 관해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비가 헌제의 충신이었는가, 제갈량이 한의 충신이었는가는 맞는데 제 생각에는 그게 당연하고 또 촉한의 입장에서는 상책이 아니었는가 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진정하게 원소를 계승해서 헌제를 동탁 포지션으로 탈바꿈 시킨 논리를.계속 이어가고 그걸로 한중왕까지 따낸거 보면 맞긴함.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 외의 그 누구도 진심으로 믿지.않고 정치질의 대상으로 본 원소랑은 다르게 이 양반은 자기 사람을 제대로 만들고 유지하는 무서운 인사관리 만렙 끝판왕이니..
저는 삼국지를 이토록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유비가 진짜 한부활이 목적이였음 관우가 죽었을때 대의를 위해 오나라와는 전쟁을 안했을거다 그러니 유비는 한나라의 부흥은 그냥 명분 뿐이고 본인이 황제가 되려는 목적이 있었을 거다라고 옛날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의혹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셨네요 ㅎㅎ
후한 황제들의 직계조상은 장사정왕 유발이고, 유비의 조상이라는 중산정왕은 유발과는 동부이모의 배다른 형제지간임. 각각의 조상은 2촌 형제지간이지만 아래로 쭉~ 내리면 헌제 유협과 유비의 항렬대에서는 촌수가 2천 촌에 가깝거나 넘어가는 사실상 남남임. 촌수 계산도 존나 어렵다. 😎
1:28 조조가 태어난 초는 譙, 오초칠국의 난의 초는 楚입니다. 譙는 양나라에 속했으며 훗날 양나라 왕실의 삭번으로 초현이 양에서 분리되어 패군에 귀속됩니다. 오초칠국의 난에서 반란을 주동한 楚는 삼국지 기준으로 서주와 양주 북부, 청주 남부에 해당하여 관련이 없습니다.
전혀 근거없는 소리임. 유비가 헌제 데리고 있으면 오히려 한중왕 등극하기가 더 쉬웠을 거임. 조조가 위왕됐을 때 반발이 컸던 이유 중 하나가 조조가 황족, 유씨가 아니라는 점인데 유비는 황족, 유씨였기 때문에(비록 혈통이 아주 멀지만) 한중왕에 등극하고도 전혀 반발이 일어나지 않았음 헌제를 모시고 있으면 오히려 천자의 명을 받든다는 식으로 행동하면 됨. 조조나 조비가 한 '실제로' 한 행위는 미화하면서 유비는 하지도 않은 행위로 비난하는 건 말이 안돼지
댓글 정성들여 쓴 거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조조와 조비가 최고대우해줬다는 말도 어폐가 있는게 핍박했다는게 정사에도 나와있는데 이게 어떻게 최고 대우임 황제가 살려달라 했는데도 황제의 아이를 임신한 후궁을 잡아죽였는데 정작 유비는 헌제를 죽일 이유가 없음 비록 한참 멀어도 같은 유씨에 황족이라 오히려 명분 세우기가 훨씬 좋음 조조가 위왕됐을 때 그렇게 반발 심했던 반면 유비는 같은 유씨였기 때문에 한중왕이 되고 심지어 칭제할 때도 반발이 없었음 유비가 칭제했을 당시에도 어쨌거나 명분은 조비가 헌제를 죽였다는 것이었음.
조조 조비는 최고대우 안했습니다~ 황제의 아이를 임신한 후궁을 멋대로 죽인게 최고 대우일리가요 유비는 오히려 헌제 데리고 있는게 훨씬 좋아서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조조의 위왕 등극과 유비의 한중왕 등극이 여론이 달랐던 이유가 유비는 아무튼 황족의 먼 핏줄 유씨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천자를 등에 업고 있는게 유비한테 훨씬 좋아요
연의처럼 동네 소심하나 사람좋은 형이 아닙니다. 정사의 유비는 야심이 가득한 야심가였죠 애초에 야심이 없다면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중화전토를 떠돌아 다니며 숱한 죽을고비를 넘는 고생을 안해도 됐습니다. 이런 죽을고비에서 살아남는 지략도 갖추었고 전쟁터에선 자신의 군재도 보여줬었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도 갖추었던데다 사람을 따르게 하는 통솔력도 훌륭했던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의 만능캐였던 사람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유씨 성까지 가지고 있는데 야심이 없을리가 없죠
손찬이형님...제가 삼국지를 읽다 보면,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제갈량 사후, 위나라는 장완, 동윤, 비의가 있을때 나라가 안정적으로 굴러갔지만...위나라는 글자그대로 깽판이었고... 오나라 역시 손권이 노망나서 이궁의 변이 터지는 바람에 완전히 막장인데...왜 가장 먼저 멸망했을까요?? 조금만 더 전략적으로 잘 이용했다면, 촉한이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저는 이 부분에 대해 항상궁금한점이 있었습니다. 1.위나라는 유비의 제위명분을알고 있었으면서 왜 살아있던 헌제를 적극이용하여 도덕성과 정당성에 타격을주지 않았나? ( 군권없는 명예직을 신설하여 헌제와 그일가들을 앉히고 촉나라에 적극 선전한다거나) 2.위가 바보도아닌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것은 안하는것이 더 이득라는 얘긴데 그 판단근거는 뭘까? 3.둘다 아니라면 당시 촉은 위나라입장에서 이러든지 저러든지 큰 비중을 둘필요가 없는 소국취급이었나?
유비의 칭제 명분이 조비의 칭제 명분보다 훨씬 큽니다. 기본적으로 조비는 헌제를 몰아내고 칭제한 것도 있지만 황족, 유씨가 아니었습니다(조조의 위왕 등극과 유비의 한중왕 등극에 대한 반응이 사뭇 다른 이유) 유비가 아무 것도 없는 거렁뱅이라면 유씨든 말든 상관없지만 유비가 세력을 갖추고 나서는 유씨라는 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위나라가 유비의 칭제에 대해 도덕성과 정당성으로 타격을 준다면 그 타격은 오히려 조비에게 들어갔을 겁니다.
이용한거치곤 역적 프레임을 가져가는 바람에 군권을 계속 조씨일가가 쥐는 시스템을 가져가야 했었죠... 쬬가 황제를 잘 이용한거면, 그거 이용해서 한을 재건하고 역적 처단한다는 프레임으로 유비도 스스로 황제 안 모시고 ㅈㄴ 잘 이용했다고 할수 있을듯..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평민이나 다름없는 떨거지 유씨지만 그거조차 극한으로 쥐어짜서 그걸 명분상 말이 되게 했다는 점에서 원술이랑 비교대상이 아닌듯... 일단 원술은 유씨가 아니니까... 할거믄 조비처럼 선양을 받던가 해여했름
개인적으로 유비를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해서 선주전도 하루에 여러번 읽고 유비 관련 기록만 주구장창 찾아서 읽었었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칭제를 한 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많네요. 황제를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말년의 유비는 꽤 급하고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때를 기다리던 예전 유비와는 다르게..
정작 칭제에 대해서 딱히 태클이 걸리지 않았음. 그게 무리수라는게 이해가 안되네 조비가 헌제 몰아내고 황제가 된 순간(심지어 초기에 헌제가 죽었다고 알려져있다면) 역적 조비를 몰아내고 한왕실을 세우겠다는 일념하에 칭제하는 건 명분상으로나 실리상으로나 큰 문제는 없음 우리야 헌제가 살아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보니까 유비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거지 당시에는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음
삼국지를 처음 접하면 천하일통 계한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백성을 생각하고 의리를 지키다가 망한 안타까운 영웅.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삼국지를 파고들다보면 진짜 바닥부터 시작해서 황제가 된 정치100단의 능구렁이. 유비는 그냥 처음부터 황제를 하고 싶었던 것임. 만약에 유비가 진짜 헌제 유협을 세워 한의 부흥을 노렸다면 아마 동승일파와 같이 죽었어야 맞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