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치와 가우스 일화는 대학교에서 천문 쪽 교양강의를 듣다가 들어봤는데 교수님 말로 당시 천문학이 천재들의 학문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재밌는 건 그 수업을 들으면서 전공수업으로 수치해석을 들었는데 거기에 가우스법 라그랑쥬법이 나왔다는 것 ㅋㅋㅋ 단순 수학을 떠나서 모든 이공계 전공하시는 분은 가우스라는 이름을 못듣는게 불가능할 정도인 것 같아요 그만큼 대단한 천재였던 것은 분명한 듯
귀족이나 왕족의 사생아였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누군가로부터 계속 후원,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 같구요. 10세 때 학교를 다녔다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10세의 학생들에게 누가 1부터 100까지 더하라캐요 ㅋㅋ 교실 수준이 높았던 것 아니였을지... 자기 아내 건들여서 애 낳게 하고, 또 그 애를 본인들이 직접 길러볼라 하는데, 이 귀족이나 왕족은 지네들이 데려가 직접 기르는 것도 아니면서 돈만주고 이런 교육시켜라 저래라 이러니깐, 벽돌공 아버지란 사람이 짜증나서 공부를 안 시키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ms-vo6pd 혀교수님은 조선시대부터 오~~~~래 사셔서 잘 아시나보네~~ㅋㅋㅋㅋ 그럼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이유도 아실텐데? 임진왜란 때 선비가 일으킨 의병들중에 광해군을 지지하는 북인세력의 지방향리들이 의병장으로 공을 세워서인데ㅋㅋ 그 밖에도 선비들이 백성들이끌고 희생한건 치매가 오셨나 잘 기억을 못하시나보네요ㅋㅋ 애초에 대부분의 선비는 과거에 낙방하면 집이나 산으로 들어가서 산림처사라고 학문을 닦거나 제자들을 가르쳤는데ㅋㅋㅋㅋㅋ
콩진호는 2의 인생을 살았다 콩진호는 2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가우스는 3×콩진호+1의 인생을 살았다
파스칼 수학천재임여. 근데 빨리 죽음. 39세에 죽음. 천재성 하나만큼은 나머지를 발라버릴정도임. 파스칼은 계산기를 개발함. 어린시절에 아버지의 회계일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원추곡선론을 어린시절에 냈고. 확률.유체 부분에서 천재적인 업적을 이뤄냄. 하지만 파스칼은 몸이 안 좋았고 굉장히 불우한 삶을 살았음. 어쨌든 여러 이유로 종교로 들어가게 되었고. 종교에 집중하기 위해서 학문을 접어버림. 그리고 위 종교저서들을 쓰게 됨. 파스칼이 치통이 너무 심해 접었던 학문을 다시 펼쳤었는데 그 때 나온 게 사이클로운동의 정리임. 저기 낄 수 없긴 함. 너무 빨리 죽었고.학문을 접었어서. 오일러도 마찬가지임. 오일러는 오래 살았지만. 자신의 모든 재능을 후대를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수학을 정리하는데 써버림. 어쨌든 파스칼은 저만큼의 천재는 맞음. 오일러 역시도
현재 인정되는 세계의 3대 수학자로는 아르키메데스 (그리스), 뉴튼 (영국), 가우스 (독일) 입니다 파스칼도 물론 뛰어난 수학자이지만 안타깝게 3대 수학자엔 끼지 못하는군요 최고의 수학자라 함은 새로운 수학적 방법을 창안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업적을 동반해야 합니다
@@guideline277 저정도의 업적은 누가 뭐라도 인정 할 수 밖에 없죠~ 6살때 아날로그 시계를 보고 9+1=10 8+2=10 7+3=10 6+4=10 이라는건 알았지만 그것이 등차수열이라는 것 까지는 가지 못했음~ 가우스 말고도 그정도 통찰력을 갖은 사람은 많았을 거에요. 왜냐구요? 어렵고 복잡한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 통찰력으로 가우스는 어린나이에 등차수열을 알아낸건. 대단한거죠~ 업적이 대단하다고 모든게 대단한건 아니라고 봄~
@cj j 글쵸~ 가우스가 페르마의 마지막정리에 대하여 생각을 안해봤을 리가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가우스가 집착스럽게 수학에 대하여 완벽함을 고집한 이유는? 페르마의 마지막정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라는 강력한 의심이 듭니다. 가우스는 그 누가 뭐라 해도~ 현재까지는?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라 생각합니다. 가우스 자신도 최고의 수학자라고 생각했을겁니다. 그런데 가우스가 못푸는 문제가 있다?? 그것을 아마추어수학자 페르마가 해결했다?? 그런데 증명과정은 없다~!! 여기서 가우스는 페르마를 의심했을겁니다. 페르마가 직관으로 없다라고 말했을 거란 생각을 가우스가 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가우스 자신도 남몰래 완벽하게 증명하려 했지만 그것이 실패를 했고~ 그것은? 내가 페르마보다 적어도 이정리에 대해선 못하다~ 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겁니다. 그부분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완벽한 논리로 증명 하지않는건 정리로 인정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트라우마가 가우스의 인성을 결정짖는데 한 몫을 했을것이다~ 근데 난 이점이 너무 아쉬움~ 어쨌든 가우스라 해도 인간이지 신이 아닌데~ 꼭 자신이 다 하려했던게 너무 안탑가움~ 완벽하지 못했더라도 공동연구를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리들이 만들어 졌을텐데 라는 아쉬움 그러면 좀 편안하게 수학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그점에서 가우스는 당시 우리가 모르게 많이 고독했을꺼 같다 라는 생각들 들고~ 참으로 안탑가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