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일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보니.. 진짜로 광주궁전제과랑 대전성심당이랑 빵레시피 교환한거네.. 궁전은 튀김소보루를 전수.. 성심상은 부추빵을 전수.. 서로 교환한거고 그래서 서로 다른지역에 분점을 안 차린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네요.. 진짜 옛날 사람들의 약속이란건 대단하구나..
8:09 소보로빵과 곰보빵을 마치 서로 다른 빵인 것처럼 나열해두셨는데, 소보로빵과 곰보빵 사이에 차이점이 있었나요? 본래는 지금의 소보로빵에 해당하는 빵이 곰보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차츰 소보로빵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평소 영양가 높은 정보를 잘 모아오시던데 종종 이번 영상 같은 경우에 자료정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너무 바쁘셨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보름달빵 빵계는 북한의 초코파이 계 이야기와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진다 가족에게 직접 먹이려고 한다는 점, 팔아서 살림에 보태려고 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어쨌든 지인 간 신용을 바탕으로 돌아가며 실속을 살뜰히 챙기는 게 한민족 핏즐 어디 안 가는구나 싶음.. 조금 맘 아프네
호빵 찜기에 넣어 팔던 거 중에 은박지로 싼 고로케도 있고 호차 라고 코코아 같은 음료도 있었지요. 그러나 고로케와 호차는 사는 분이 적어 단종됩니다. 여름 거리에서 냉차 라는 음료를 팔았는데 보리차에 사카린, 얼음을 섞은 불량식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이다. 콜라 보다 이게 싸니까 많이 먹었어요. 50년전에 5원인가 했던거 같아요. 당시엔 빙수도 팥이 비싸니까 식용색소와 시럽만 넣은 일본식도 맛나다고 잘 사먹었어요.
얼마 전 장충동에 태극당을 가봤습니다 제가 중학교때 아버지와 가보고 거의 40년도 넘어서 가봤습니다 저 영상에도 있던 벽에 붙어 있던 태극식빵 배너가 아직도 붙어 있더군요..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태극당 이성당 성심당 코롬방 등 전국의 유명한 오래된 제과점 빵집들 오래오래 백년 이상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진짜 SPC가 너무 미움...그놈의 프랜차이즈 빵집때문에 자영업빵집들이 많이 사라졌음... 아직도 기억나는 동네빵집인 보리베이커리라고 있었는데 모닝빵으로 만든 사라다빵이랑, 커피크림빵, 커피번이 진짜 맛있어서 이틀에 한번씩 만원으로 한손가득 들고오는게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그놈의 파바가 동네에 들어오고 빵집밀어내기로 없어짐... 그일이후로 파바는 한번도 안갔음...
영상에 영심이 시대가 빵집에서 미팅 도 하고 친구들끼리 지금처럼 커피랑 먹는 디저트 개념보다 우유에 식사빵 을 먹던 마지막 시대였던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 잼민이들은 마라탕에 후식은 탕후루 나 버블티 를 먹는다 해서 놀랬어요 라떼는 즉석떡볶이 에 하드 나 부라보콘 먹었거든요 그 이후 분식이 점점 가격이 올라서 그 시대가 사라진듯요
90년대 극초반 어린시절, 아직 농경사회 핵가족 문화가 잔존해있던 시절 대도시로 이주한 부모님과 달리 부모님의 사촌형제들이나 육촌형제들은 인근 집성촌에 남아있던분들이 많았음 상이 나면 상갓집이 지금처럼 대도시 장례식장으로 일원화된게 아니라 시골 가정집에서 상을 치르고 장지갈때 상여쓰는게 당연하던 문화가 남았던 시절인데 영상화가 된 이문열 작가님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은사님(작중에선 신구님이 분함) 장례식 장면처럼 장례를 치뤘음 시골 상갓집 아버지 따라서 가보면 마당에 천막치고 소반펴서 문상객받고 문상객들이 도시로 다시 올라갈때면 상가에선 검은 봉지에 뭔가를 싸주던 시절이었음(뭔지는 기억도 안남 하도 어릴떄라) 장지 갈때도 지금처럼 버스로 문상객들 태워서 가는건 같았지만 그때 문화로 버스안에서도 막걸리, 맥주 돌리면서 상갓집 김치를 안주로 먹곤 하던 시절이었음(이당시 장례를 촌에서 치를 정도면 대개가 종갓집이었고 재밌는건 대학생들에게 맥주는 이때까지도 "좀 사는집"애들이나 먹는 술이었음) 영상에서 이병철 회장이 언급한, 인생에도 내마음대로 할수 없는 3가지 얘기는 일본 헤이안 시대 시라카와 덴노가 말했던 "천하에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카모가와(賀茂川. 하무천. 교토 시내를 흐르는 강)의 강물과 쌍륙(당시 유행한 일종의 도박, 경주 안압지 유물에서도 발굴됨)의 주사위 패, 그리고 엔랴쿠지(일본 천태종의 본산으로 세속 영주화해 오다 노부나가를 괴롭히다 전멸한 사찰로 유명)이다." 라는 발언으로 보임 일본통이었던 이병철 회장이 이 일화에서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음 희석식 소주같은 경우 00년도 후반부터 "부드러운, 약한 소주의 유행이 급속히 일어났고 지속적으로 낮아지던 소주의 도수는 현재 16도까지 내려감(이 당시 끝까지 20도는 소주의 정체성이라고 고집부리던 대구지역 소주인 참소주가 진로에게 점유율을 뺏기면서 낮춰버린건 제법 유명한 일화)
ㅋ 예전 기억이 떠오르는 영상! 조름달은 지금도 나오고 가끔 사먹음. 호빵은 최희준 가수의 구수한 광고가 먹히지 않았나... 싶음 미풍은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 뭐하러 또 만들지? 했다는... 다시다는 전혀 새로운 조리료로 인식할 수 있도록.... 기존 강자 시장에서 싸움터 자체를 바꾼 현명한 선택 소주 2홉(지금 작은 병), 4홉을 많이 마셨음 고작 빵집? ㅋㅋ 부자집 자제만 가는게 가능했고, 미팅? ㅋㅋ 시작할 접점 자체도 없지만, 걸리면 정학당했음 그랬던듯.... 대충 70년말부터 학교 도시락 혼분식 검사를 안했던듯 ㅎ 그동안 밀막걸리 먹다가 쌀막걸리를... 그런데.. 어떤게 신기한지는.... ㅎ
예전에는 겨울철에 찜기에 있는 호빵 하나를 꺼내달라고 해서 길가면서 먹으면 추운줄 몰랐는데. 지금은 가게에서 안 쪄줘서 봉지체 구입하여 집이나 회사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쪄먹으면 눈치보일거 같아서 주저하게 되고. 그래서 편의점의 전자레인지에서 직접 쪄먹으려 해도 코로나 사태 이후로 눈치가 보일까봐 안먹게 되었네요. 😢
두 가지가 기억나네요. 먼저 크림빵. 그때의 크림빵엔 크림이 쥐똥 만큼 들어있었어요.제가 기억하는 가격은 15원. 그리고 편의점에서 500원 내고 한번 먹은 적은 있는데 많이 올랐구나 했는데 베어보니 크림이 옆으로 삐져 나올 만큼 많았다는... 둘째 통일벼는 당시에는 통일벼라는 이름보다는 정부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어요. 저질 쌀의 대명사였고 정부미의 반대는 일반미. 실제로 통일벼와 정부미는 다른 의미일 겁니다. 정부가 수매해서 묵혀 둔 쌀이 정부미일텐데 통일벼와 같은 의미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