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은 아홉가지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9가지가 가능하다면 자신은 아라한이 아님을 스스로 알수 있고, 아라한이 되면 자신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스스로 아라한이 되었는지 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다시 태어날지 태어나지 않을지 모른다면 아라한이 아닙니다. 대천의 5사는 니까야를 읽었다면 그런 의문은 가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니까야를 믿는다면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게 이상한 것으로 대천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니까야를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자입니다. 아라한에게 불가능한 아홉가지는 1. 고의로 살생 불가능 2.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불가능 3. 성적교섭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 4. 올바로 알면서 거짓말 하는 것이 불가능 5. 재물을 모아놓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 6. 욕망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 7. 성냄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 8. 어리석음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 9. 두려움의 길을 걷는 것이 불가능......
영혼체의 존제와 부처님의 실존은 부처님의 겅계라서 중생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수 없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지 않으셨어요 2600년전에 오신 부처님은 인간의 자력수행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법위는 아라한이라서 그때당시는 아라한까지만을 법설하셨어요 분명한것은 인간이 자력수해의 한계는 아라한 법위까지 입니다
역주행 하다보니 여가 잼있네요. 1. 일본인은 잘못된것을 지적해서 고치도록 해준다. 이러한 종특에 대한 비판으로..... 항공기 승무원들의 실수에 대하여 앞에서는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해놓고 뒤에가서 꼭 크레임을 건다는거죠. 차라리 한국인들 처럼 즉석에서 화끈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잘잘못을 따진후에.. 뒤끝없이 넘어간다면? 승무원들이 퇴근후에는 마음편히 지낼수 있는것인데... 일본인들이 즉석에서 걱정말라는 말을 믿었다가는 뒤통수 맞는다는거죠. 즉석에서 시비를 가려야 오해도 풀수있고 해명도 할수있고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도 할수있을 것인데.... 웃으면서 괜찮다고 이해하니 걱정말라 그래놓고 자기딴에는 잘못된것을 고치 도록 하여 반복되지 않게 한다지만. 그렇게 클레임이 걸리면? 항공사 담당자는? '우리 승무원이 실수를 인지하고 정중히 사과 하던가요?' "아니므니다. 와따시가 고메나사이 해쓰므니다." 이래놓으니 황공사 측에서는 내부감사에 들어가고 담당 승무원이 실수하고도 오히려 승객에게 사과를 받았다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을 이치로 살아가기 보다는 감정으로 살아가야 하는것이다. 이치는 감정을 억제한다. 꿍꿍 참아가면서 불평불만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댐이 터지듯이 일시에 터져나오면 돌이킬수 없는것이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정불심 이라는 말이있다. 부처님도 보살님도 스님들도 다정하시다. 다정하지 못한 스님이라면? 제대로 공양받기는 틀린것이다. 불심이 지극한 노파 한분이 초막을 짓고 스님한분을 모셔 조석공양을 지성으로 받들며 수행을 도왔더랬다. 한 삼년쯤 지나자 공부가 좀 되었는지 딸을시켜 시험해보았다. 딸은 스님을 끌어앉고 뺨을비비며 "이러면 기분이 어때요? ...홍홍홍.." 수행승 왈.. '죽은 나무 그루터기 같고 식은 재와같아 아무런 감정이 없소이다.' 그 말을 전해들은 노파는.... 스님을 쫓아내 버리고 초막을 불살라 버렸다. 이 일화에서.. 많은 수행자들은 고민에 빠지게된다. (아니? 그럼? 어째야 하능겨? 원효맹키로 딸을 취하여 애라도 낳았어야 한다능겨? 노파는 그걸 기대한고야?) 이와같은 문제는 유가에도 있다. 바로 性성 문제다. 천명지위 性 솔성지위 道 수도지위 敎....... 유가중용 천명이란 말뜻은 알기쉽다. 그런데 그것이 성이라 한다. 그리고 성을 따르는게 길이며 길을 닦는것이 가르침이란다. 그러므로.... 핵심단어는 성이다. 성리학의 시원은 맹자의 사단론으로 "성즉 인의예지 지 리" 성이란것은 인의예지에 이치다. 그래서... 성즉리 성리학이다. 그러나 동이문화의 자취가 남아있는 중용장구에는 희노애락이 서술된다. "성즉 희노애락 지 기" 성즉기 성기학이 원조다. 과연? 인성이란? 인의예지인가? 희노애락인가? 인의예지의 정점에는 황제가 있다. 즉. 천명은 황제에게 귀속된다. 희노애락은 세상만물이 모두 지녔다. 천명을 받지못한 것은 없다. 불가의 평등성지와 같은 맥락이된다. 불가에서는 천명을 불성이라 하는것이다. 자성이니 본성이니 모두 유사맥락이다. 그 성이 이성이냐 감성이냐 하는 문제인것이다. 오랜기간 수행하는 수행자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높은 경지를 존중했다. 그래서 공양도 하고 소원도 빌었다. 집요하게 찾아오니 수행에 방해가 되어 하나...둘... 소원을 이루게 해주어 보냈는데.. 어쩌다 수행자의 옷을 더럽히는 실수를 한 되퉁맞은 여인이 있어... 얼른 소원을 들어 주었다. 그걸 또 입소문을 내자 신속히 소원을 이루기위해 아예 똥 박아지들을 들고 와서 수행자에게 마구 뿌려댔다. 수행자의 인내력이 한계에 봉착했다. (에라... 닝기리 수행이고 뭐고... 느덜은 다 죽었어!) 신통술로 마을에 돌벼락 비를내려 통째로 몰살당했다. 이성으로 감성을 억제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에 요선정이란 정자 앞에는 물에 깍이고 다듬어진 바위들이 멋진 풍광을 펼치고있다. 거칠고 단단한 바위들이 물에 씻기고 씻겨 부드러운 속살을 들어낸것이다. 인간의 오욕칠정이 또한 거칠고 단단하다. 이를 보듬어 닦고 닦아 씔어낸것이 정이다. 精 씔을 정. 예전에는 절구로 낱알을 찧어 껍질을 제거했다. 그럴때 쿵쿵 빻으면 알곡은 깨지고 부서져 가루가된다. 그러니 살짝살짝 쿡쿡 오래오래 찧어야 한다. 그런 작업을 씔어낸다 하는것이다. 씔을 정 精에 의미다. 맹꽁이타령 서두에.... 저건너 신진사댁 시렁위에.... 씔어 까불어 톡 제친 청동 청정미 청차좁쌀이냐. 아니 씔어 까불어 톡 제친 청동 청정미 청차좁쌀이냐. 절구로 살살 씔어 키로 까불어 체로 톡톡 쳐놓은 청차좁쌀은 파로스름한 청동빛의 보석 알갱이와도 같으며 명절때 귀한 상에 인절미 떡으로 올리는 귀한 보물이였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이 황금보다 귀한 보물이였다. 그래서.... 청동산 박달재인 것이고 청동오리인것이며 청동청청미 청차좁쌀인 것이다. 표준어 학자들은 이딴거 모린다. 어쨋거나.... 그렇게 씔어 까불어 톡제친 청동 청정미 청차좁쌀과도 같이.... 희노애오애오욕의 거칠고 단단한 마음을 씔어 까불어 톡 제쳐 본마음 속살이 들어 나도록 한것이 情정 이다. 노파는 수행승의 마음을 삼년이나 씔어 까불어 톡 제쳐 보았는데? 티끌과 검불 뿐이였고 알맹이는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허우대만 멀쩡한 쭉정이였던것이다. 노파의 정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씔어 까불어 톡 제쳐보자. 청동청정미청차좁쌀 같은 불사리들을 한바가지 가득 얻을수 있을것이다. 그것을 주고받고 나누고 베풀면 영혼의 양식이 되는것이니... 그게 정이다. 인지상정 인정이고 인성이며 불성이고 자성이며 천명이다. 본마음이고 참나이다. 저 마을을 절단낸 수행자는.... 씔어낼줄 모르고 쿵쿵 빻아버린 것이다. 다정불심. 이치로 구할수 없는것이 불성이다. 각자 자신의 희노애락을 씔어 까불어 톡 제쳐 자성이 들어나도록 하는것이 수행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라한을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은 아라한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가 아니라 수행자의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모두 알고 모두 실천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열반에 관해서는 더 이상 깨달을 것도 더 이상 배울 것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담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대천이라는 자가 황당한 말을 한것입니다. 이게 니까야를 읽은 사람들에겐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게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이 되면 아라한이 됬다고 명백하게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