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회사에서 단체로 개성관광 다녀왔었는데요...지금도 그곳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곳은 굶주림의 땅이었습니다. 판문점 지나서 북한 땅에 들어선 순간 들판과 산에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는 모습이 충격적이었고 슬펐어요. 나중에 버스 기사님한테 들었는데, 먹을 게 없어서 이름 모를 길가의 풀뿌리까지 모두 캐서 죽 끓여 먹고, 연료가 없으니 산의 나무는 땔감으로 쓰느라 남은 게 없었던 거였어요. 시골의 집들은 우리나라 60년대 풍경을 보는 듯했습니다. 곳곳에 빨간 글자의 선전 문구는 어디에나 보였고요. 개성 시내로 들어가니, 3월 14일이었는데 밍크코트 입은 사람들도 돌아다니고 꽤 괜찮아 보이더군요. 그런데, 어느 건물 뒤쪽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허름한 복장(겉옷도 입지 않고, 위아래 낡은 회색)의 사람들이 40명 가량 모여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기사님께 들었는데, 관광버스가 지나갈 때는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공안들이 통제해서 그런 거라더군요. 그때는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때인데, 그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나눠주면 아무도 안먹고 챙기더랍니다. 본인 아이들 가져다 준다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2개씩 나눠주었대요. 우리가 관광을 갔을 때 버스에 2명의 북한 가이드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북한 고위 관리들의 자제들이었습니다. 식당의 접대부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들은 남한의 실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개인 교사도 쓸 정도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었으니, 남한에 대해 알아도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사람들만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는 거죠. 어쨌든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의 피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지금 북한 주민들은 그때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쓰입니다.
북한은 일단 사적인 여행이 금지되어 있죠....단 특별한 경우 다른 도 시 군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면 직장이나 사회안전부 (경찰서)에 있는 이부과라고 여행전문증명서를 발급하는 기관에서 허락을 받고 여행증명서를 발급을 받아야만 열차를 탈수있는 권한이 부여 됩니다 특히 평양이나 개성은 특별여행증명서를 발급하는데 더 엄격한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불가능한 여행이 되어버렸죠........
김일성 사망 후 경제가 어려워 배급이 끊기면서 사람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장사를 해서 먹고 살게 됐고, 밀수도 급증했지. 원래는 국가가 배급을 하면서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지. 임금을 주지 않고.....근데 김일성 사망 후 배급도 끊기고 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노동력을 착취하다보니 굶어죽는 사람들, 병 걸려 죽는 사람들이 생기고, 나라를 떠나 중국으로 가서 일하거나 밀수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어. 중국으로 가 보니 세상에 눈이 뜨이게 되고, 남한의 사정도 알게 되면서 탈북민들이 증가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