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5 16:07:26 작성자 : 이호영
◀ANC▶
국학진흥원은 오늘
진주강씨 법전문중에게 기탁자료목록집을
증정하고 국학자료 기탁에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법전문중은 조선시대 한 집안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당파적 입장을
달리했던 유명한 문중입니다.
이 호 영
◀END▶
봉화군 법전면 이른바 '버저이 마을'은
진주강씨 법전문중의 집성촌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의금부 도사를 지냈던 강윤조 선생이
두 아들과 함께 정착한 곳으로
형 강흡은 음지마을에, 동생 강각은 양지마을에 터를 잡았습니다.
원래 소론이었던 이들 형제집안은
후대로 내려가면서 혼반 등이 얽히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고 말았습니다.
(S/U)한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형님문중인 음지마을은 노론색을,
동생문중인 양지마을은 소론의 당색을
갖게 됐습니다.
갈려진 당색에 따라 벼슬길도 달라지면서
기헌고택과 도은종택은 마을 중간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당파적 입장이
불가피했습니다.
◀INT▶강신중 종손/도은종택
"예전에는 색론으로 서로가 심하게 다퉜지만
근간에 와서는 서로가 어느 문중보다 더 화합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당색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거급제자와 학자 등을 배출한
두 집안은 당색이 사라진 현대에는 서로
화합하면서 보관중인 고서와 고문서 등
국학자료 5천 800여점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습니다.
기탁된 국학자료는 목록집으로 만들어져
각 집에 증정됐습니다.
◀INT▶이용두/한국국학진흥원장
"다량기탁목록이라는 것은 각 문중별 발자취를 집대성하고 학문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사업으로써 앞으로도 이 사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영남지역에서 이례적으로 노론과 소론으로
당색을 달리했던 형제마을 이었지만 오늘날
봉화 법전은 진주강씨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29 окт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