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그 자체보다도 남의 나라에 와서 생명과 청춘을 불살라 조선을 사랑해주신 선교사님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고조부는 선교사로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그 집안은 정말로 한국의 국가유공자로써 은인으로서 대접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고조부의 물건을 고조부가 세우신 연세대에 기증하는 것이 맞다고 한국에 가져온 그것을 보면서 본인 말대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신 그 귀하신 사랑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해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이땅을 위해 수고하신 푸른 눈의 이방인들 모든 선교사님들에게 다시한번 고개숙여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대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God bless you!!!!!!
@@user-kb9is6es9t서울시에 어느분이 몇백점의 유물과 보물을 기증했으나 절반 이상을 박물관 소장이 갖다 팔아먹어서 자기 유흥비로 썻고 현재 남은 유물이라도 돌려달라 하니 기증에 대한 기록이 없고 해당 유물들에 대한 서류가 제대로 관리도 안되었으며 몇몇 유물들은 그냥 방치하듯 두었다고 하죠. 과연 서울시가 믿을만할까요 대학이 믿을만 할까여? 그나마 대학이 믿을만하고 더 믿을만 한 곳은 그냥 언더우드가가 보관하는거죠.
향후 국보의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진품명품에 출품된 작품중 최고의 작품이 나왔었네요. 경매가격은 희귀성, 예술성, 역사성 세가지로 평가되는데 세가지 모두 최고 평점이네요. 출처도 확실하기에 이건 찐인데 3억이면 오늘이라도 바로 구입합니다. 감정가 펑튀기 엄청하던데 이건 왜 이리 박하게 평가했는지 궁금하군요.
내가 생각할때 3억은 최소가이고. 이 칼은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갈수록 비싸짐. 고종과 언더우드는 우리나라 개화기를 상징하니. 게다가 검 자체만 해도 조선 시대 궁중에서 보관한 하사용 검에 대해서 아주 정확히 알수 있음. 그래서 미래가치까지 생각하면 10억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
조선전기의 기술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죠. 연은분리법이라고 납광석에서 은을 쉽게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일본이 이를 통해 전국시대 은광산 개발이 본격화되었죠. 그래서 전국시대 다이묘들이 농업생산력에 맞지않는 거대한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가능했던 거구요. 이와미 은광산 같은 경우 오랫동안 전세계 은생산량의 3분의 1을 채굴해낼 정도. 은광산의 본격개발과 채굴량의 획기적 증대는 은본위제 화폐경제인 중국으로 은이 수출되며 일본에 국부가 유입되어 상업발달을 촉진하구요. 그런데 그 연은분리법이 조선에서 개발된 겁니다. 다만 조선은 중국의 공물요구에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 포함되길 원치않아 채굴 자체를 안 했기에 연은분리법은 일본에 전래되며 빛을 발합니다. 또 일본의 다네가시마가가 포르투갈의 사냥용 엽총을 구입한 뒤 이를 조총으로 재현하는데 십수년의 시간을 보냈으며 간신히 재현한 후에도 제련기술이 딸려 자주 폭발했기에 조총병은 오다 노부나가의 3단발포전법이 나오기 전까지 외면받던 병과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 조총의 위력을 접하고 몇개월만에 바로 조총을 실전화시킬 정도로 제련기술에서 뛰어났죠. 하지만 기술에 대한 경시와 기존 기술만으로도 동북아에서 꽤 뛰어났기에 만족한 점이 이후 많은 기술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던 기술도 사장시키게 되니 안타깝죠.
사인검 삼인검은 도교에서 수련용으로 사용하는데.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호랑이해 호랑이달 호랑이날에 잘라서 칼에 모양을 새겨 넣은 것을 삼인검이라 하며 동년동월동일에 인시에 잘라서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은 사인검이라 합니다. 주로 주술용으로 귀신을 쫓거나 강한 기운을 얻기위해 사용합니다. 이것을 무속인보다 산에서 도교 수련하는 사람들이 사용하였습니다. 삼인검과 사인검 사용법은 육갑천서라는 도교서적에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