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밴쿠버 섬은 1843년 이곳에 빅토리아 요새를 건설한 허드슨 베이 컴퍼니에게 중요한 전초기지였고, 섬의 영유권 유지는 영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태평양에 진출하는데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를 이유로, 1846년 오리건 조약 당시 영국은 밴쿠버 섬의 동쪽 해협의 중간 지점까지 북위 49도선을 기준으로 국경을 결정하기를 원했습니다.
영국이 프랑스와 대륙에서 전쟁해서 식민지에서 미국을 프랑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영국 10년 예산이 소비되었죠. 그러다 보니 영국의회는, 미국이 덕 봤으니, 미국이 이 돈 갚으라고 했고, 그래서 세금을 올리니 독립을 한거거든요. 부모 자식간의 싸움에 누가 더 나쁜지 가리기 어렵죠. 1800년대에 국가라는 개념이 적었어요. 같은 조상에 같은 언어 쓰는데 미국 카나다 구별이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문화 중에 70%는 영국에서 유래한 겁니다. 스포츠, 소설, 법 등등 대부분은 영국에서 유래합니다. 영국을 그리 깔 필요는 없습니다. 80년대 좌파 교육이 왕성하던 시절에 영미 문화를 죄악시하던 분들이 만든 말들이 지금까지 내려 오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걸 북한, 중국, 소련이 체계적으로 퍼트린 노력도 컸습니다. 한 때 영미권 문화 까야 지식인 소리 듣던 때도 있었죠.@@Yeahitismewhy
영국 백인들이 토착인디언들로부터 미국동부를 빼앗고,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멕시코에 쳐들어가서 미국서부(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를 멕시코로부터 빼앗고, 하와이 원주민들로부터 하와이를 빼앗고, 스페인에게 전쟁을 걸어서 스페인 식민지인 괌 푸에르토리코를 빼앗앗습니다. 미국은 그곳에다가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여서, 원주민들 숫자를 절반이하로 떨어뜨리고 유색인종들간의 인종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원주민들의 백인지배층을 향한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습니다.
돌아오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식한잔님 ㅎㅎ 지식한잔님이 올리시는 영상들이 다 이해가 잘 되고 재미있어서 제일 좋아하는 역사 채널이었거든요 그리고 바로 전에 올리신 1년 동안 잠수탔던 이유 영상 바로 하루 전날에 제가 신기하게도 지식한잔님 언제쯤 돌아오실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팍 났었는데 생각하고 바로 다음날에 복귀영상 올리셔서 기분이 좋고 신기하더라구요 진심으로 돌아오셔서 감사합니다.
그니까.. 둘다 별 생각없이 북위 49도선을 긋고 주민들을 돌보기 위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 하겠다는 적이 없어서 저 사태가 벌어진 것이로군요?! 와..!! 영국은 그렇다치고 미국까지 저럴줄은 몰랐네요 세계의 경찰과 민주주의 수호 인간의 인권 등을 내세워서 지키는데 앞장선 미국이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니 충격이에요... 이런일이 있었는줄 몰랐네요 알찬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식한잔님!! 잘 보고 갑니다!!! 그렇게 멈췄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기에, 사람들의 집합체인 국가도 일개 인간이 하는 행동거지와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예쁘게 포장해서 세상에 보여지느냐의 차이, 즉 소프트파워의 차이인데 미국은 문화적으로든, 경제군사적으로든 워낙 막강하니 무슨 짓을 하든 예뻐보일 뿐이죠 😊.
투와슨 지명 오래 만에 듣는데, 반갑네요. 캐나다에서 살아서 당시에 투와슨에 갈 일이 자주 있었는데, 백인 농장주들이 많았던 지역으로 기억 합니다. 지금은 어떠련가 모르겠습니다. 투와슨 지역 땅이 평야도 넓어서 농작물들 키우고 그린 하우스도 많이 있어요. 가장 유명 한 생산품은 피망과 토마토, 오이. Windsor이라는 브랜드가 유명 한데, 캐나다 전역으로 제품을 납품 하던 대형 농장 회사로 기억 합니다. 근처에는 조금 더 차를 타고 가면 바다랑 드 넓은 갯벌도 있고. 원주민들이 머무는 지역도 있어요. 부모님 지인분들께서 살고 계시었죠. 더 멀리 가면, 빅토리아 섬(?) 벤쿠벌 아일랜드 가는 페리 선착장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항구도 근처에 있어서 수하물도 들어 왔고요. 당시에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투와슨 지역에서 농장 일 이랑 컨테이널 화물 운전수로 종사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시크 교도 분들이 대부분 이었고. 어린 저는 가끔 씩 그분들 이랑 같이 앉아서 싸 온 도시락으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었죠. 문제는 이 분들이 뚜껑 열리면, 시위를 하는데. 그 시위 때문에 경제랑 물자 공급 부분에서 크게 타격을 입기도 했다는 것 이죠. 트럭 시위가 유명 하였습니다. 수 차례 일어났었거든요. 이상, 저의 캐나다 투와슨 지역 썰 이었습니다.
정확도가 상당한 정보네요.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노스웨스트 앵글과 캄포벨로 섬 등 본국 보다 인접국으로의 왕래가 더욱 편한 희한한 지역들이 몇 개 더 있지만 아무래도 인구가 가장 많다 보니 코로나 당시 국경 폐쇄로 인한 무지막지한 불편을 겪으며 이들 인구가 제법 있는 지역들은 육지로 연결된 인접국으로의 편입에 대한 투표를 실제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각 지역 주민들이 자기 나라 정체성이 생각보다 뚜렷하여 동의표가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Point Roberts에 몇번 직접 가보았습니다. 로칼들은 Point Bob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거긴 초등학교 (Point Roberts Primary School) 밖에 없어서, 중고등학생들은 미국 국경 지역 town인 Blaine (인구 5,000명) 으로 학교를 다닙니다. 국경때문에 아이들이 USA & Canada국경을 school bus로 매일 4번 씩 건너다닙니다 (USA-Canada-USA-Canada-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