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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채널e - The history channel e_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_ 

EBSCulture (EBS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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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 home.ebs.co.kr/...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
일제강점기, 조선의 최고 여성엘리트였던 경제학사 최영숙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를 살펴본다.
박물관 속에 갇혀 있고, 교과서 안에 잠들어 있던 낡고 고루한 역사는 가라!
세련된 영상과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잠들어 있던 우리 역사에 숨을 불어 넣는다!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높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과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역사채널e"가 한국사(史) 속으로 들어간다.
"역사채널e"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기획 된 프로그램으로,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이전까지 다루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롭고 참신한 우리역사를 발굴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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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авг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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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35   
@seerin0158
@seerin0158 8 лет назад
얼마나 절망감이컸을까; 일제강점시절은 헬조선이었다 싶다.
@seerin0158
@seerin0158 8 лет назад
지금이 한 2층정도면 저땐 한 지옥 6층쯤 되려나
@JOINSEOK_NAVER
@JOINSEOK_NAVER 6 лет назад
인정..
@Bobbydonothing
@Bobbydonothing 5 лет назад
말도안되는 일이지. 조선 최고의 여성 엘리트 정도가 아니라 총독부 자문위원으로 가도 모자랄 판에 장바닥 콩나물팔이라니.....그냥 여성이라면 어디서 뭘하고 왔던 거들떠보지도 않았구나. 그게 아니더라도 기존의 지식인들은 저 여자가 꼴보기 싫었겠지 나는 기껏 도쿄유학이나 다녀왔는데 저 여자는 스톡홀름대학이나 다녀온 것도 짜증나는데 분명 나보다 능력도 더 좋을것 같으니.... 받아주고싶지 않았겠지 괜히 이슈가 되기도 싫고. 당시 시대상황이 반영된 말도안되는 참극이다
@meunggeunsong2874
@meunggeunsong2874 4 года назад
솔직 그때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어떤사람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기는 힘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여자라서 그랬던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tv-sl6th
@tv-sl6th 8 лет назад
영상보면서 항상 역사에대해 더 파헤칠수있어서 좋아요.
@user-lo3kv4os8c
@user-lo3kv4os8c Год назад
ㅠㅠ
@user-yy2yp3tf7f
@user-yy2yp3tf7f 4 года назад
꽃다운 나이에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user-yl8wv9gv9v
@user-yl8wv9gv9v Год назад
"꽃다운" 이라뇨 지금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신겁니까 불편하네요
@ack3145
@ack3145 8 лет назад
슬프다
@happy_mlif
@happy_mlif 4 года назад
이런거 더 올려주세요 ㅠㅠㅠ 역사 너무 재밌어요
@user-di2wx6yv8o
@user-di2wx6yv8o 7 лет наза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user-lg5ur6zn4t
@user-lg5ur6zn4t 2 года назад
영상보면서.연날생각떠올라서,참좋아요,최영숙여사님.화이팅!!!♡♡♡
@user-ou6vr2zb3v
@user-ou6vr2zb3v 5 лет назад
지금은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 더욱 기쁘네요. 최영숙님의 인생이 참으로 찬란하지만 비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user-sv6je9wd5w
@user-sv6je9wd5w 3 года назад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에서 어떤 내용을 다루고 싶은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면서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비극을 접하게 되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상과 당시 사회상을 비교하면서 영상을 볼 수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user-ow9xj6xl6z
@user-ow9xj6xl6z 2 года назад
왜 이제 알았을까...ㅜㅜㅜ
@user-rk2ef1pj5j
@user-rk2ef1pj5j 4 года назад
일본과 남여차별이 낳은 비극
@evmailinsuzet3806
@evmailinsuzet3806 4 года назад
더 날아갈수 있었는데 시대를 못만나 날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
@joonlee1968
@joonlee1968 4 года назад
최영숙님의 죽음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만약 세게 대공황 이었다 해도 조선이 일제치하가 아니었다면 조선인들의 기업, 대학, 정부기관들이 많았을테고 분명히 어느 조선인 기업이나 조선인이 설립한 대학 또는 조선의 정부기관에 취직이 되었을텐데...
@kimokk12
@kimokk12 4 года назад
진짜 시대를 잘못태어나셨네ㅠㅠ
@user-pp4cn9sv8x
@user-pp4cn9sv8x 6 лет назад
연산군
@lsu6014
@lsu6014 5 лет наза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4 года назад
서프라이즈에서 나온 이야기
@keigokim2106
@keigokim2106 4 года назад
그러게 왜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니?
@salmosajoe1679
@salmosajoe1679 7 лет назад
저런 경우가 오직 여자뿐이었을까 남자 역시도 고학력에 백수여서 일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을텐데 핀트 이상하네 참..
@qn9078
@qn9078 7 лет назад
salmosa joe ......... 당시에 엘리트 남성들은 저런 상황에 처하지 않아서 문제죠. 조선은 유럽이 아닙니다. 너무 조선에 대해서 자만하는 것 같네요. 앨리트 여성이 당시 엘리트 남성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걸 지적하는 영상에서. 한국의 역사 의식은 오늘도 비참
@qn9078
@qn9078 7 лет назад
salmosa joe ...... 도대체 한국은 뭐가 문제일까..
@meunggeunsong2874
@meunggeunsong2874 4 года назад
@@qn9078 뭔가 이상하네요 . 그당시면 유럽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 일제에 협력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공부잘하고 머리좋은 사람이라도 제대로된 직장에서 일하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걸로 압니다.
@TheHanbyulLee
@TheHanbyulLee 8 лет назад
스웨덴도 당시 남녀 임금격차가 컸고,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도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정말 저 글을 남겨다는 말인가요? 스웨덴 노동운동이 시작된거는 20~30년대이긴한데... 당시엔 여성투표권 없었던걸로 압니다. 학문을 사용하지 못한 일은 애석하지만, 배운 사람이라고 콩나물, 미나리 팔다 죽었다는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유학 갈정도면, 친일파였거나 대대손손 부호.. 둘 중 하나 뿐인데....... 글쎄요
@user-nb8fp2vg9x
@user-nb8fp2vg9x 8 лет назад
+이한별 1. 스웨덴의 상황 “스웨덴은 나의 제2 고향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외국인 대접을 극진하게 합니다. 더욱이 나는 동양 여자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후대를 한몸에 받았더랬어요. 아이들과 여성들이 자유롭고 힘 있게 뻗어나가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특히 연초 전매국이나 성냥공장 같은 데서 노동하는 여공들까지도 정신상으로나 경제상으로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정말이지 부러웠습니다. 그들에겐 일정한 노동시간과 휴가가 있을 뿐 아니라 임금도 넉넉해 생활비를 빼고도 반은 남습니다. 그들은 노동복만 벗어놓으면 유복한 숙녀들입니다. 더욱이 체육을 즐겨 날마다의 사는 재미가 더없이 호강스러워 보였습니다.”(동아일보, 1931년 11월29일자) 조선의 상황이 이보다 열악했다는 말이죠; 조선은 여성에게 일거리 조차도 주지 않았던 상황에 스웨덴은 임금격차는 났을지라도 일자리는 얻을 수 있었죠. 그리고 투표권 하나만으로 여성 인권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요. 2. 최영숙이 죽은 이유 ...스톡홀름대학 경제학사가 ‘콩나물장사’에 나선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운동을 위해서였다. 이화학당 시절 은사 김활란이 공민학교를 세울 계획을 말하자 만사를 제쳐두고 공민독본 편찬에 나섰다. 밥을 굶어가며 도서관에 다녔다. ...임신한 몸으로 취직자리 알아보랴, ‘콩나물장사’하랴, ‘공민독본’ 편찬하랴 백방으로 뛰어다니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영양실조, 소화불량, 임신중독이 차례로 찾아왔고 급기야 각기병까지 걸려 두 다리가 부어올랐다. ...귀국한 지 채 5개월도 지나지 않은 1932년 4월, 임신 중인 최영숙은 태아에 탈이 생겨 동대문부인병원에 입원했다. 인도청년 ‘미스터 로(Mr. Row)’와의 관계가 드러난 것은 그때였다. 산모의 생명이라도 구하고자 낙태수술을 받았지만 병세는 나빠져만 갔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계속했지만 악화되는 병세를 돌이킬 수 없었다. 4월23일 오전 11시, 최영숙은 홍파동 자택에서 27세를 일기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3. 최영숙이 유학을 갈 수 있었던 이유 ...최영숙은 1906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부친 최창엽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일찍이 농사를 정리하고 포목상을 차려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최영숙의 부친이 포목상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곤 하나 딸의 유학비를 감당할 만큼 부유하지는 않았다.... 난징 유학 시절 최영숙은 집에서 얼마간 학비를 타 쓰기도 했지만, 스웨덴에서는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영어와 독일어를 할 줄 알고, 난징에서 한두 달 버틸 수 있는 돈을 가져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영숙은 시골학교 청강생 신분으로 낮에는 스웨덴어를 공부하고, 밤에는 생계를 위해 자수를 놓았다. 베갯잇 하나를 수놓으면 5, 6원의 수입이 생겨 그다지 힘들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금까지 할 여유가 생겼다...1927년 스톡홀름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황태자 도서실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1926년 아돌프 황태자가 아시아 곳곳을 돌면서 수집해온 자료의 목록을 작성하고 중요 내용을 스웨덴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4. 친일파? ...1923년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최영숙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을 향해 유학길에 올랐다. 공부하는 틈틈이 상하이로 가서 중국에 망명 중이던 여러 인사와 교유했다. 당시 최영숙에게 큰 감화를 준 인물은 도산 안창호였다. 총명하고 민족정신이 투철한 최영숙을 안창호도 남달리 아꼈다. ...하고많은 나라 중에 유독 스웨덴으로 유학 가고자 한 이유는 그곳에서 엘렌 케이(Ellen Key·1849~1926)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엘렌 케이는 스웨덴 출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였다. 활동 무대인 서구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지만, 조선과 일본, 중국의 여성운동에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의문이 생기면 제대로 좀 알아보시면 되지 이상하게 댓글에서 선동하려고 하네요. 그렇게 아무렇게나 후려치기 당할 인물 아닙니다. 출처; shindonga.donga.com/3/all/13/105429/1 저자;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TheHanbyulLee
@TheHanbyulLee 8 лет назад
+앙까까 여성투표권과 여성인권을 완전히 별개로 볼 수 없습니다만, 우리의 사정에 비하면 훨씬 나았던 모양이군요. 대단한 분이기도 하시고요. 제 비판적 시각에서 추측했기에 저런 댓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동은 아니죠. EBS 역사채널이나 지식채널의 정보가 항상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기에 비판적 시각으로 바로 보고 댓글을 적은 것 뿐입니다. 정확한 정보 잘 알고 갑니다. 그래도 앙까까님의 댓글에 편승해서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밑에 글쓴이는 참 웃기네요. 비판적사고는 그렇게 쪽팔린게 아니랍니다.
@user-nb8fp2vg9x
@user-nb8fp2vg9x 8 лет назад
+이한별 여성 투표권의 획득은 여성인권에 크나큰 의미를 가진 사건이긴 합니다만,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었으니 이제 남녀의 인권은 평등하다! 라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넌센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성인권 불평등" 이라는 단어 속에는 사회 기저에 디폴트로 존재하는 여성혐오적 시선 및 사회구조 모두를 뜻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EBS 역사채널 및 지식채널의 정보가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저도 알고있는 바입니다만, 현재는 여성인권에 대한 논의가 아주 뜨겁고 예민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거없는 의문 제시는 루머생성의 여지를 줄 수 있으며 당연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랬던거 아닐까? → 그랬대! → 완전 심하게 그랬대! 로 가는 것이 우리의 사회 분위기입니다. 진정 비판적 사고를 가진 지성인이라면 의문만 제시하는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비판해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Sarangchongman
@Sarangchongman 8 лет назад
+앙까까 덕분에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답글 달아주신 것도 보기 좋네요~
@user-pb7nf3kz3q
@user-pb7nf3kz3q 6 лет назад
빻을패는메타몽 크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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