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riginal2 늦게 보았네요. 계속 몸이 좋지 않아서요. 전 한국근현대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 연구자에요. 근현대라고 하는 것은 시대구분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나라에 따라 연구자에 따라 구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저는 한국 근대 시점을 1860년부터로 생각하고 현대는 해방 이후로 본답니다. 역사연구자는 인간 활동을 중심으로 하지만 인간의 활동 영역만이 아니라 자연이나 재해 등 인간에 영향을 주는 것들도 함께 연구하지요. 근현대 역사가 이러하다고 정의하기보다 역사가가 역사적 자료와 관계 속에서 해석하며 역사를 매개로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는 열린 학문이고 연구자는 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스스로 과제를 설정하고 연구하지요. 제가 공부가 짧아서 적절한 답을 하였는지....
와 대한여지도님 대단하시네요^^* 귀한 사진 구하고 복원하고, 그 지역의 역사를 알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고맙습니다 ^^* 대성연탄 자리(지금은 영등포구와 붙은 구로구)는, 주상복합 건물과 D-CUBE 빌딩(지금은 현대백화점)이 되었지요
어릴때(80년대)도림동에 살았습니다. 그때 당시 신도림역 맞은편에 큰 공장이 2개 있었는데, 미원 공장과 철강공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미원은 불이 난 후 코오롱하늘채아파트와 현대아이파크로 바뀌었고, 철강공장은 도림청구아파트와 쌍용플래티넘 아파트로 바뀌었네요. 그리고 제 기억엔 구로구이지만 80년대 당시 기아철강 공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나네요. 그 부지는 지금 신도림태영 혹은 신도림현대 아파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림동에서 태어나 40년을 살았고 외가가 영등포시장에 있어서 영등포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었네요. 이제는 다른 구에 살고 있지만 어릴적 눈에 보았던 것들을 보게되니 이상하게 눈물이나네요.. 저때가 참 그립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향 영등포 7.80년대를 영등포 시장통에서 보내며 자랐는데 해당시기 영상과 설명 나올때마다 조금 먹먹하네요 그시절 동네 형.친구.동생들이랑 한강 둔치 개발전 놀러가서 송사리도 잡고 비교적 출입이 수월했던 영보극장이나 남도극장 가서 19금도 보고 부모님 모임 따라갔다 금마차 극장식 쇼도 보고 영등포 교회 주차장이나 직업학교 운동장에서 동네야구 하다 매번 쫓겨나고 그랬었는데 아련합니다 지금은 영등포와 멀지 않은 고척동에 사는데 눈때문에 정기적으로 김안과 방문할땐 빼고 잘안가게 되더군요 내가 자랄때 항상 생기돌고 활기가 넘쳐 사람들로 넘쳐났던 영등포 시장도 이젠 유령시장 같고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 적응이 잘안돼서 그런거 같아요
제가 아는 것 한 가지. 70년대에 삼립빵 광고 만화가 어린이 잡지에 매월 실렸던 게 기억납니다. 신문수 화백님이 그리셨고요. 그 만화에서 본 게 영등포에 삼립빵 공장이 있었다는 겁니다. 검색해보니 지금의 가산동 두산위브 자리라고 합니다. 1993년에 부지가 두산건설에 팔렸고 가산동은 당시 영듣포구에 속했죠.
내 어렷을 적 70년대 초반 영등포살때 영등포역에서 역구내 열차수송용으로 쓰던 증기기관차를 본기억이 나네요. 소리가 아주 컷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영등포시장에 영등포역과 기차수리공장 사이를 연결한 철로가 시장바닥에 깔리려있던 기억이 잇습니다. 516광장에 퇴역한 미군 수송기와 폭격기를 구경간 기억과 여의도국회의사당 공사하던 모습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땐 어려서 그게 뭔지도 몰랐도 강변도로에 톨개이트가 있던걸 목격했고 안개 낀 강변도로도 기억 남니다. 지금 당산역 앞 교차로엔 작은 분수대가 있었고 그 시절 영등포엔 공장도 많았고 공터도 참 많았습니다. 이젠 날이 갈수록 기억은 흐릿해 지지만 좋았던 느낌은 아직도 진하고 강렬합니다.
서울 토박이로서 영등포구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오래전 60, 70, 80년대초 신길동에 가보니 신길동 골목 풍경이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들어 그 느낌을 오래도록 잊지 못합니다. 옛날시대는 어디나 개인적으로 그런 정겹고 신비한 느낌을 받는 곳들이 많았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유난히 신길동, 도림동, 대림동, 대방동, 신림동 쪽이 더 그렇더군요.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가보니 거기도 개발이 되면서 그런 신비한 느낌이 사라지더군요. 요즘은 어딜 가나 자연환경이 사라지고 도시개발이 되어 신비함이 느껴지는 곳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게 뭔가 아쉽다는...
저는 신길동에서 태어나서 어릴때 강서구로 이사와서 기억은 없지만, 그 전에 우리 집안이 서울로 처음와서 자리잡은건 영등포였죠. 영등포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 덕에 사택에서 살다가 나중에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양남동'에서 살았고, 이후 신길동을 거쳐 지금은 양천구 소속이 된 신정동으로 이사왔네요. 제가 어릴때 연례행사이던 감기는 영등포로터리쪽에 있던 박소아과를 가야만 나았고 나중에 수험생일 때에는 대학학원에서 단과강의를 들었고 종로나 을지로 같은 시내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영등포를 지나가야했어요. 주말에 안양사는 친척집에 갈 때에는 버스노선이 없던 신도림이 아니라 영등포역에서 국철타고 가곤 했던 기억도 있네요. 후에 양천구로 이전한 봉영여중은 625 끝나고 초대이사장이던 이봉덕 여사가 미군 공병대 중령에게 사정하여 고철하치장을 불하받아서 부지를 얻었다는 어른들 말씀도 기억나고, 6관구 사령부 얘기도 종종 들었었네요. 오목교 건너 영등포청과시장을 버스타고 지나가다보면 바닥에 철로가 놓여있던 기억도 나네요.
4:08 저의 추측으로는 저정도 높이면... 완전한 산의 끝자락으로 난 길인데.. 대방e편한세상1차아파트와 대방주공 1단지 아파트 사이를 가르는 길이거나 대방공원 근처(서울지방병무청->영등포고 가는 길의 중간 어디쯤)가 아닐까 싶네요. 옛날로 치자면 논밭이 있던 서울의 외곽(현 시흥대로 주변) 시골길에서 노량진의 시장과 나루터 지역으로 질러가는 지름길이 있었겠죠(추정). 근데 길 모양이 아무래도 만만한 민둥산에서 골재를 퍼가고 나서 생긴 공간을 길로 닦은 것처럼 보이는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등포는 일제가 한강 너머에 만든 경성의 배후 공업도시였습니다. 당시 한강 너머는 서울이 아닐 때라 굴뚝산업 입지로 적당하면서도 경인선으로 경성과 연결되는 최적의 입지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자세히 다룬 논문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근대 서울 공업지역 영등포의 도시 성격 변화와 공간 구성 특징" by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김하나, 20132 박사논문 피디에프 화일을 갖고 있긴 한데 유튜브에 화일 올리기는 안 되는 것 같네요...
내가 태어난 문래동,! 영등포국민학교 16회 . 영등포국민학교 정문 삼거리에서 남부지방법원 쪽으로 신작록 좌측으로 는 해방전에 지어진 방직공장에 다니던 사람들이 살던곳인데 내가 태어난 집은 영단 107호. . 국민학교 1학년 다닐때쯤 문래동이라는 지번이 생겼어요. 영단 이라함은 영등포단지라는 관사인데 근처에 양평동 양남동 당산동에 해방전에 큰공장이 많이있어지요. 나의집앞 신작로 건너편에는 지금의 남부지법자리에서 문래 전철역 인근은 UN군기지여서 동네 부모님들께서 기지내에서 잡일을 하시고 돈벌이를 하였습니다. 지금의 대기업의 뿌리는 이지역에 있던 일본기업이 해방이후에 파손없이 그대로 남기고간 시설을 불하받아 창업의 씨앗이라고 보면됩니다. 3학년까지 문래동에는 라디오 수리점이 1개뿐인데 도림동 교회 집사님 께서 일본인 기술자에게 기술을 익혔고 해방이되자 일본인이 그대로 떠나서 그때부터 직접 하셨답니다 . 당시에는 고급기술이었지요. 1학년때 반장하던 친구의 아버지께서도 일본인의 철공소와 집까지 주고 떠난뒤 적산으로 불하받아 직접 운영하여 부자로 살았어요.
양평동 5가에는 해태제과 공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신아파트가 있고요. 2000년대 초까지였나 택시로 우리집에 갈 때 아버지께서 "양평동 한신아파트요~"라 안하고 "해태 앞이요~" 하면 가더군요. 양평동에 남은 "해태"라고는 해태 사옥 짓다말고 철골만 남은거 뿐인데..
경인고속도로 입구 마을철거 브로커 담도 잇었던거로 보아 판자촌은 아닌거 같고 영등포 경찰서 자리는 옛날 공작창이라 부름 허벌판.바로 옆 홍익상가 도로는 철길이 있있고 철길 따라 판자촌 형성.도림동 일부도 판차촌이 있엇고 구일역에서 보이는 뚝방길 하천 가운데에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 모델이 되는 판자촌마을.그 뚝방길 광명쪽도 판자촌마을.90년초까지 영등포.고척동.광명..뚝방길 주변 청과시장 도로. 판차촌 형성. 영등포 과일청과시장 위쪽으로 사창가가 있었고 영등포 경찰서 건너편 큰 부지는 대한통운
80년대 당산역이 종점인 좌석버스 주로 인천쪽방향인데 태우여객.삼진여객..그 다음에 또 뭐드라 기억이 안 나네.돈 조금 더 주고 좌석버스 탐.일반버스는 운전석 옆에 애들이 앉을수 있는 본네트가 있고 안내양이 없어진 이후 잔 돈 바꿀수 있는 바구니들이 있엇슴.따뜻한 그 본네트는 꼬맹이들이 이용하는 내 전용자리임.한번은 급 브레이크 밟아서 동전 바구니와 함께 앞 문 여는쪽 개단에 고꾸라졌는데 내 잘못인가 하고 운전사에게 죄송하다고 함.동전 주우려고 하니까 운전사 그냥 놔 두라고 함.좌석버스는 의자에 담배 재떨이가 있고 담배 필 수 있었슴.담배에 문제점이 있다 영상을 역전인나 이런곳에 비디오로 알린건 80년대 후반임
3:31 내가 우신국민학교 나왔는데 1952년에 이탈리아 의무부대가 한반도까지 와서 주둔했다구? 금시초문일세 ㅎㅎ 주변경관도 너무 광활하고 넓음. 아메리카 영등포에도 우신국민학교가 있었구나 ㅎㅎ 영등포여고 옆길은 한반도 같네. 옆이 내가 다닌 영등포여중인데 오비맥주가 바로 옆이어서 맨날 취한다 이러면서 장난친 기억도 나네. 아무튼 아메리카영등포가 많이 보이는듯 낯설다 ㅎㅎ
영등포가 일제강점기 경성으로 편입된 최초의 경기도 땅이었고 포구를 중심으로 공업이 발달됨. 당산쪽은 일본 기업 간부들이 살던 부자동네로 그 터에 70년대에 강남맨션이란 고급 공동주택이 생겼고 그 강남맨션을 2000년 초에 재개발 한게 지금 20년째 당산동 대장인 당산삼성래미안4차 ㄹㅇ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