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진성학원학생입니다. 실제로 저기 공부하는 모습이 담겼네요 지금은 55살 희끗한 아저씨가 다됐지만요^^ 당시 입시 실적은 그다지 좋지않았고 저역시 광운대를 간신히 들어가서 지금까지도 그때배운 도둑질로 먹고살고있습니다.젊음이란건 정말 소중합니다.20대의 10년을 낭비하지마세요.
스파르타 학원의 효시. 고입 시험 끝나자 마자.. 친구들 다 놀 때...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끌려간 곳. (80/90년대식 선행교육) 매 찜질이 자주 있었던 곳이다. 겨울철에 제대로 씻는 것이 어려웠고, 완전 군대식 이었다. 경례도 필승이었다. 토요일에 보는 영화와 주말 7시 기상이 그나마 행복이라고 해야하나. 학업성과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안경만 쓰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만족. 오히려 돌아와서 공부가 더 잘되었다.
저긴 기숙재수학원 인데요. 학업 선행 학원이 아니예요. 대입 재수생 학원임. 89년도 이때까지는 보습학원 선행학원 이런거 없었어요 공부 가르치던 학원은 허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 시절 입니다. 인강도 물론 없었고. EBS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중고등 국 영 수 과학이 거의 시범수준으로 하기 시작 했으나 정작 고등학생들은 시청할수 없었죠. 학교서 돌아오는 시간이 11시가 넘는데 저 방송은 저녁 9~10시에 하니... 보통 엄마한테 비디오 녹화를 부탁하게 되는데 집안 일 하다 잊는 경우가 많았죠 보습학원도 1990년. 이후 생긴 겁니다. 문제집도 몇가지 없어서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예요. 과외 하다 들키면 아버지 직장이 짤리던 시대의 끝물이라 돈 있던 집들은 비밀 과외가 극성였죠 (실제로 과외하다 들켜 직장 짤린 집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tvozilap5672 고입 연합고사 끝나고 비록 중학교 학기는 아직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가채점 성적을 기반으로 외고 입학생을 포함하여 성적 우수학생들은 약간 일찍 입교(12월 달)하여 고교 과정을 미리 선행하였습니다. 제 기억으로 수학 정석과 성문 핵심 및 종합을 교육 받았습니다. 물론 반편성 과정은 따로 시험 받았던 것으로 기억나고... 서울 강남, 서초, 양천 등등 다양한 지역의 중학생들이 왔습니다. 물론 남자는 진성. 여자는 진명이었던 것으로.... 기억 남니다...
90년 진성학원에 다녔습니다. 일주일에 고기반찬 많이 먹을 수 있는 기회.....수요일에 한번나오는데 맛있었고 담배피다 걸리면 식당앞에서 담배를 피지 맙시다.....쪼그려 앉아 복장 100번했던 기억이......정말 저시대 대학가기 힘들었죠. 3.8명중 한명만이 전문대 이상에 들어갔으니......
노노. 대학동기들과 술 마시면서 너네도 겁나게 맞았지? 라고 물어보니까 구타는 없고, 갈구기만 했다더라. 군 교육과 처벌이 강화되어서 모두들 한결같이 구타는 거의 없었다고 이야기해서 나만 벙쪘어. 내가 있던 특수한 부대는 나 제대 이후에도 뉴스에서 가끔씩 구타나 자살소식이 들려왔었거든. 일상적인 구타와 급여착취... 이것들과 같은 인간이라는것이 부끄러웠다.
@@김보근-s5s 그런 상황에서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단 나는 최선을 다했어. 늘 그래왔는데, 이제는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왜인지는 당신이 해보면 알거야. 이제 당신이 방관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줘~ 당신이 단 댓글처럼 단정짓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지금같은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방관자도 못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늘 가해자가 되어 있을거 같아.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발견한 동영상에 제가 나오다니.ㅋㅋ 89년 제가 다녔던 시기네요. 그 당시 방송국에서 촬영온다고 난리(?)가 났었는데. 차종태한테 혼나던 녀석이 우리반 아이였지요. 제 기억에 부산 아이였고 이름이 영훈이였던것 같은데.ㅎㅎ 입학당시 우리반 아이들 대부분에 목표가 인서울이였는데 몇 명 못갔습니다. 제가 대학 입학했을 때(건대) 진성 출신이 저 포함 3명 이였어요. 생각보다 과대 포장된 학원이였지요. 아무튼 10대 시절 저의 모습에 웃음짓게 되네요.
미래를 보장한다는 확신은 없지만 내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참여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행위 조차도 내 인생에 무의미 하다는 부정적 평가 보다는 그래도 같이 경쟁이라도 했다는 위안이 오히려 긍정적 사고 방식이 같이 사는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 사실 대학이라는 직업 전문 학원에 가봐야 내 인생에 뭔 도움이 되겠습니까. 40 되기도 전에 버려질텐데요. 영원히 오를 거 같은 땅 값도 때가 되면 나락 갑니다. 인생이 원래 그래요. 맑은 날도 있으면 흐린 날도 있듯이. 지나고 나면 다 추억으로 변합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내 인생이니까요.
참 인생 재밌네. 젊은시절을 저렇게 달달 지지고 볶고 몸부림치며 살아왔건만 지금 사는모습은 다들 거기서거기 비슷비슷 할텐데.. 나이 드는건 똑같고. 주변에 보니 최종학력이 중졸인 형님도 기술배워서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없이 나름 누리며 살던데.. 지금 50대 형님들 보면 그냥 다들 거기서 거기임..... 젊은시절 그리워하며 곧 노인이 되는 인생허상을 다들 몸소 체험하시며 한탄하시고... 진짜 인생은 정답이 없는것 같음
니가 만나는 50대 형님들의 생활수준이 한국에 사는 모든 50대형님들을 대변하는건 아니야...미안하지만 유유상종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당연히 니가 만나는 사람들은 너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일것을 왜 생각을 몬하냐... 저때 당시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성공을 이루어내어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50대형님들도 있겠지.. 다만 그런 이상적인 인생을살아가는 분들은 니 환경에서는 보기 드물 뿐이다
저당시 즈음해서 다녔다..상황실 관리자분 눈에 익네..흡연금지고 3주에 한번씩 집에 갔음..기초 약하고 하위권있는 사람들은 점프하기 힘든거 같음..술담배 못하고 나쁜 유혹에 빠질 환경이 없으니 그런거는 좋은 거 같음..나름 주말에 영화도 시청..요즘은 현대식으로 운영하겠지..
@@seabreeze495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인구도 몇배는 많았고 애초에 인문계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구만. 요즘 비편준화지역 괜찮은 일반고에서는 반에서 최소 10명 이상이 인서울하지만 저 당시에는 5명 할까말까였음... 저때에 비하면 요즘은 네임드 명문대 들어가기 훨씬 쉬워졌음. 아니, 2010년대보다도 훨씬 쉬워졌지. 인구가 급감해서. 백분위 컷 떨어진것만 봐도 한눈에 보이는구만.
@@seabreeze495 6~70년대면 인정하겠는데 이 영상에 나오는 시절은 80년대 후반이잖슴 ㅋㅋ 80년대 후반이면 이미 우리나라가 중진국 이상으로 성장하고 인문계 학생들은 상당수가 대입준비하던 시절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입시위원장도 대충 70년대 아니면 80년대 극초반을 기준으로 이야기한 거겠지.
@@seabreeze495 방금 대학진학률 자료찾아서 계산해보니까 1970년생 100만명 출생, 대학진학률 37%(진학자 수 37만명) / 2005년생 44만명 출생, 대학진학률 73%(진학자 수 32만명)이네. 김영삼때 대학설립이 자유화되면서 대학정원이 배로 늘어난것까지 감안하면 경쟁률은 80년대 후반이 훨씬 높구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임. 근거는 하나도 못내놓고 입시위원장이 어쩌구 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건 대표적인 논리오류중 하나인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임.
저런다고 대다수는 딴사람보다 엄청 잘사는것도 아니고 기본은 하면서 밥먹고 사는거지. 공부 중간정도 하는 고등학교에서 반에서 1등 몇번했지만... 중년인 지금 평범하게 산다. 자기만족으로 수용한다. 그래도 그 책상에 앉아서 1초 1분 더 더 하는 그 순간과 궁금해하는 그 주체는 나이다. 딱 나와 내가 대면하는 순간이다. 그 이외에는 대부분 가족과 사회에서 주입한 생각에 맞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인생 사는 것이다. 나이먹고 결혼하면 더 더욱 ego로 가득차게 되고... 더 나이먹으면 한꺼풀씩 지위에서 내려가며 ego를 벗어내게 되고...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인 죽음을 맞이하지. 이왕 사는거 저런식으로 살더라도 즐기며 재미있게 좋아서 하자. 하하하
군사독재국가 전국민이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던 이상한 국민들. 선생이나 부모나 학생이나 자신들의 모습들이 이상한지 전혀 모름.. 왜냐.. 다른나라와의 교류와 접촉이 없었기에.. 썩은물처럼 고여서 세뇌당하던 시절.. 정치가 이래서 무서운거임.. 학교내 군사독재의 잔재가 2000년대 중반까지 남아있었지.. 그떄도 공부못하면 두들겨팻지 정말 이상한나라..시절
80년대 후반 재수를 했었는데.. 동영상에 나온 재수생들하고 제가 비슷한 연배 같네요.. 진성학원은 제 기억에도 있네요.. 신문에 스파르타식 남자 기숙학원이라고 광고를 많이 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숙학원이 아마도 8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아는데 당시에 한달 비용이 아마 3-40만원대 였던 것으로 압니다. 일반 종합반 학원이 한달에 10만원이 안되던 시기였으니까.. 재수하려고 한달에 드는 비용으로 엄청 부담이 되었던 금액이었죠.. 지금은 기숙학원이 아니더라도 재종반 한달 수강료가 200만원을 넘는다고 하니.. 그 당시에 비하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아닐 수 없네요.. 재수 안하고 대학가는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네요
그 당시는 대학 수가 워락 적어서 대학 자체도 가기 힘들었고 지방3류대도 경쟁률이 쩔었습니다. 재수 안 하고 바로 대학 가는게 좋긴 하지만 대학 등록금도 만만치 않았고 그리고 저 당시는 취업이라도 잘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 들어가고 4년 장학금 받고 무료 공짜로 다니고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 못하고 니트족이 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됩니다.....
사실 200은 저거 차모르는사람이 벤츠는 차하나살려면 무조건 1억넘게줘야해? 이런거랑 비슷함 잘 알고따져보면 2,300씩드는학원보다 기숙없이 100만원대인학원이라던가 독학으로 월 수십쓰고하는 재수도있는데 맨날 뉴스에선 월 350시대인재 이게 과연 맞는가 이런것만 내보내니 모르는사람은 재수한번하면 년에 수천쓰는줄암
96년생, 초중고 평촌학원가 다녔는데 어렸을때 특히 어학원에서 많이 맞고 다녔죠. 유명 어학원 최선어학원, 아발론??이였나 단어시험 틀리면 1개당 손바닥 한대씩 맞고 중간기말 시험에는 교과서 달달외워서 수업 재시험봤는데 안되면 주말에 다시 와서 시험보느라 놀지도 못했죠...ㅎㅎㅎ그 덕에 중학교까지 영어성적 상위권이였지만 진짜 안 맞으려고 공부한거라... 고등학교되자마자 바로 나락이였어요ㅎㅎㅎㅎ
80년대말 청주에서 초등학교 다녔는데, 당시 담임이 내 친구를 발로 밟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선생이름이 외자여서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 지금이라면 유틉에 영상뜨고나서 뉴스에 나왔겠죠. 예전 초딩 선생들중에 저질인간들 많았어요. 아마 지금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 옛날이라 다행이다,, 그럴겁니다.
저 이거 기억 납니다 ^^ 이거 방송 했을때 제가 국민학교 4학년때 였어요... 저의 어머님께서 이 방송을 보시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고 그 즉시 학원에 전화 상담을 하였으나 너무 어린 나이여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소 고1 이상은 되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저의 아버지께서는 저와 누나를 법대 또는 의대를 목표로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워낙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고등학교만 졸업을 했고 지금은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저는 88년 진성학원에서 재수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끝나자마자 부모님에게 압송(?)당해 진성학원에서 학력 고사 보기전까지 꼬박 10개월간 있었네요~ 88년 서울올림픽을 티비로 한번도 보지는 못하고 구전으로만 경험했던 기억이 ㅎ ㅎ 같이 재수했던 친구들 모두 잘 살고 있는지 보고싶네요~
솔까말 저 때의 재수생과 지금시대의 재수생은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의 대학 미달 문제 폐교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 때도 물론 지방대나 지방전문대는 기피했겠지만 수험생수는 많고 대학교와 전문대학교 수는 워락 적어서 명문대가려는 재수생도 있었겠지만 아무대학교나 전문대 가려고 가는 재수생도 많았습니다. 즉 아무대학도 기본이 경쟁률이 쎘다는 얘기죠....그래서 저런 재수생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되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때 대학교 설립준칙주의가 나왔고 대학교가 많이 설립되었죠. 그러다가 학령인구 감소가 시작되서 그때 당시 지금 지어놓은 대학 전문대학들이 폐교 위기에 놓인 거죠.....지금은 진짜로 대학 자체를 못 가서가 아닌 명문대나 서울권 아님 수도권으로 가거나 지방 거점국립메이져대학교라도 가려고 재수를 하는거라지만 저때는 진짜로 대학 자체를 가려고 저런 재수를 한 것이죠......
나 저기 92년 중3 겨울 방학 때 2달 있었는데 죽는 줄 알았음. ㅋㅋㅋㅋ 웃긴건 부모님한테 졸라서 내발로 찾아갔던 학원임. (무슨 똘끼로) 저기 있으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 재수생 형들 1년 내내 어떻게 있지 ? 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이등병이 병장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내 나이도 이제 50을 바라보네... 전성학권 검색해보니 옛날보다 더 좋아져서 놀랐음.
1993년 마지막 학력고사를 개망하고 남산기슭 지도자학원(정일학원)에 다녔는데 반에 80명 있다면 반 이상이 여자라서 하루하루 등교할때마다 설레였음. 그때 여자애들한테 들이대면 친해진다는 진리를 배워 여기저기 다 들이대다 젤 예쁜애랑 사귀어 만인의 적이 되었음. 그때 배운 들이대는 기술을 지금까지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음.
저희 할아버지가 살아오셨던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안죽는게 운빨이였던 시기 할아버지의 자녀들.. 즉 삼촌 고모들 나이가 60~70년생 분들인데.. 이떄는 군사독재정권이였는데....이때도 살벌했던걸로 많이 들었는데.. 할아버지 이야기 들으면 60년 이후로는 천국이였다고 늘 말씀하심. 일제감정기부터 60년이전에는 굶어죽고 맞아죽고 실종은 일상에다가.. 죽어도 경찰에 신고할곳도 없고 신고해도 대충넘어가고.. 어린시절에는 일본관리들이 세금이랍시고 다 삥뜯어가서,, 열심히 일해도 굶어죽는 동네사람 허다했고 10대 중반 일본제국 강제징용 끌려갔따 살아 다녀오시고.. 20대초반에 고향으로 돌아오니 청년들끼리 사상살육전... 20중반에 한국전쟁.. 20후반에 대한민국 쑥대밭..상거지나라.. 안죽는게 운빨이였던 시대.. 젊은층들이 60 70 80년대를 강한자들만이 살아남는 시대라고 하더라고요 1900,10,20,30,40,50년대는 정말 운이 좋아야 "안죽고 살아남는" 시대 라고 말하고 싶네요.. 강한자든 약한자든 대부분 죽어나가는게 일상이였던 시대..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살아남으셨으니까요. 이야기 들어보면 진짜 엄청난 이야기들이 많아요.. 죽지않고 살기위한 몸부림을 어릴때부터 30세까지 해오심. 보통 일제감정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연배 어르신들은 굉장히 생활력이 강하셨던걸로 기억함. 그치만 그 연배들도 이제 다 돌아가시고 없음.. 군사독재시기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 어르신 연배가 되어가고 있음. 한가지 분명한건 정상적인 시대가 아니였다는점.. 정상적인 나라, 정상적인 국민, 정상적인 교육의 시대가 아니였죠. 이 분위기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걸로 생각합니다. (독재정권시대 교육받았던 부모들이 자녀에게 영향을 끼쳤죠) 적어도 200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일제감정기,한국전쟁,독재50년의 색깔이 많이 빠진 그나마 정상적인 세대로, 정상적인 국가의 시작점이 될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시험점수 1점당 1대씩 마대자루로 풀스윙으로 담임샘이 후려쳤고 툭하면 풀스윙 싸대기 날라다니고.. 정신 이상한 시대가 계속 이어졌죠.. 군사독재시대 교육받았던 잔재가 2000년대 중반 그당시 선생들이였죠. 그들이 지금은 50대이상 나이대가 되었씁니다. 국민전체가 세뇌당해 이상한 사회를 살아왔던 세대들이 생을 마감할떄쯤 이 색깔이 사라질듯 합니다. 적어도 2000년대 후반부터가 색깔이 많이 옅어짐. 이떄 태어난 아이들이 이상한 색깔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은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아이들일겁니다. 왜냐하면 부모뻘이 이상한 시대를 살아온 나이대라면 자식도 영향을 받기 떄문이죠. 저도 어릴떄 공부못하면 맞는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상식으로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였던 시대같습니다. 지금도 꼰대문화나 나이따지는 문화 회식 수직상하관계 등 이상한 문화들이 많이 잔재로 남아있죠. 이러한 것들은 일제감정기 일본제국이 조선국민 군국화를 이루기 위해 군사식 교육을 전국민을 상대로 세뇌시키는 교육을 하였기 떄문입니다. 이 국민교육방식을 박정희 대통령이 60년대중후반부터 대한민국에 그대로 반영하기 시작했고 이 똥군기 군대식 마인드는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쬬.
동영상보고 저때 사람들 불쌍하다 머 이런 댓글도 있지만, 매를 맞고 공부를 못해도 그냥 행복했던 시절이었음. 지금은 물질적으로 저때보다 풍족하고 군대와 학교에서 구타도 없어졌지만 솔직히 지금보다 저 때가 더 살기엔 좋았던것 같음.... 8, 90년대 동영상들보면 그래도 사람들 표정에 웃음기가 있고 여유로운 느낌인데, 지금은 다들 경직되어 있는것 같아서....
군대에서 자살 폭행 가혹행위 등 개죽음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이 수두룩 했는데, 보통 훈련중 사고로 사망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따고함. 89년도 통계로, 당시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4명씩 강간사건이 매일 일어났고, 3~4일에 한명씩 살인사건이 매일 일어났음. 그야말로 개막장 국가였죠. 그이전에는 더 심했구요. 강하게 통제하고 전국민 똥군기 시대라. 국민들이 얼마나 험학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습니까.. 그럼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위해 범죄로 표출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