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후반부를 보면 이순신이 백의종군 후 다시 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쑥대밭이 된 군영과 초라한 함선을 보며 선조와 조정을 원망하고 방 안에서 부들부들 떨며 홀로 한탄하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나옴. 보통 사람이었으면 화병나서 죽거나 그냥 다 때려치고 숨어살았을텐데 그런 상상도 못할 마음의 고통과 억울함을 억누르고 다시 전장에 서는 모습은 당시 제독이 정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파직 후 압송되어 고초를 겪음 》팔순 노모가 아들을 보려 상경하다 객사 》어머니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고 백의종군 》 원균이 칠천량에서 말아먹어서 그간 키운 수군전력 개박살 남 》명량에서 기적적 승리 》 명량의 보복으로 일본군이 고향 아산을 침공해 아들 사망. 이게 1597년 한해동안 겪은 일.
@@luminary3 그건 1등 선무공신 안하면 사람새끼가 아니었다 보고 오히려 명에서도 엄청 치켜세워줬다고 함.. 사실 선조의 마음을 우리가 알긴 힘들지만 그냥 두자니 조선 건국이 생각나고, 어떻게 보내버리자니 나라가 사라지게 생겼으니, 애증과 질투 공포가 섞인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음. 전쟁 터지기 직전에 청렴봇 이순신을 대신들이 뜯어말려도 특진 시킨 시점에서 보면 당연 좋아했을거고..
@@JohnDoe-be9pn 윗분이 하신말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에 도요토미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가문이 들어서면서 다시 수교하고자 일본이 통신사 파견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조선이 통신사를 파견했는데 일본측에서 이순신 대단하다 노래를 불렀더니 조선측 통신사가 이순신이 누군데? 하는바람에 일본측에서 했던말이에요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우리가 알던 이순신은 마치 신이나 완벽주의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실은 그도 고민 스트레스 남을 비난도 하고(주로 원균 ㅎ) 그냥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겁니다. ㅎㅎ;; 그럼에도 그 헤아릴수없는 고통과 시련을 이겨냈으니... 일반인 같으면요 아마 멘탈 나가서 도망갔을지도 -_-;;;; ... 누군가 어리석은 일본인 군인이 이렇게 애기했다죠 이순신은 이기는 전쟁에만 나선사람이다! 근데요..이애기가 얼마나 ㅄ 같은 소리인게 원래 전쟁은 이기는 전쟁만 하는게 최종목표입니다! 손자병법에도 나와있죠 전쟁은 이길수있는 전쟁만 치루는게 최고의 전략이다 라고!! 실제 이애기를 했던 일본의 군인도 자국 다른 군인들에게 ㅄ 소리 들었다죠 허물려 당시 이순신의 수군들은 일본처럼 끊임없이 지원, 보급, 징병받는 체계가 아닌 말그대로 한번 지면 그냥 끝장나는 입장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질 확률이 높은 전쟁터에서 무리하면 안되는 입장!! ... 근데 이말도 존나 어폐인게;;결과적으로 다 이겼으니 이게 가능한 애기지 -_- 실제 수많은 해전들을 보면 이길확률이 극히 낮은 해전이 더 많았슴
ㅇㅇ 진심 개천절보단 충무공 탄신일이 국경일로선 더 의미있을 듯.. 이순신은 백 번 천 번을 더 추앙을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종 정조급으로 웬만한 성군 이상의 위인이셨죠 세계사적으로 전설의 해군장수였는데 ㅎㄷㄷ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 포르투갈 이런데서 태어났음 전세계 바다를 모두 지배했을 듯.. ㄷㄷㄷ
선조 개양아치가 (1597년 3월 13일)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이순신을 죽이라는 명령; "이순신이 조정을 속인 것은 임금을 없는 것으로 여긴 무군지죄이고, 멋대로 적을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배신한 부국지죄이고, 심지어 *남의 공을 빼앗은 것은 남을 함정에 빠뜨린 함인어죄이고,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아무 꺼리끼는 것이 없는 무기탄지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는데도 법망에 방치되었으니 마땅히 법에 비추어 죽여야 한다. 인신으로서 속이는 자는 반드시 죽여서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 위에서 남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 선조 개양아치가 주장하기를,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하고 원균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데 역사적 팩트는 누구나 다 아다시피,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고 이순신의 공을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선조나 원균 같은 개 양아치 종자들의 주특기가 바로 요렇게 지가 지은 죄를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짓이다 !) 선조 개양아치가 직접 이순신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순신에게는 크나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선조 개양아치는, "만약 이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면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전투가 끝난 틈을 타서 잡아오라!" (선조 개양아치 실록 30년 2월 6일) 이렇게 선조 개양아치가 자신을 반드시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영의정 류성룡마저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자 노량해전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서게 되고 결국 스스로 전사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게 되었다. (이덕일, 한국통사 412쪽 참조)
선조 개양아치가 (1597년 3월 13일)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이순신을 죽이라는 명령; "이순신이 조정을 속인 것은 임금을 없는 것으로 여긴 무군지죄이고, 멋대로 적을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배신한 부국지죄이고, 심지어 *남의 공을 빼앗은 것은 남을 함정에 빠뜨린 함인어죄이고,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아무 꺼리끼는 것이 없는 무기탄지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는데도 법망에 방치되었으니 마땅히 법에 비추어 죽여야 한다. 인신으로서 속이는 자는 반드시 죽여서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 위에서 남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 선조 개양아치가 주장하기를,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하고 원균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데 역사적 팩트는 누구나 다 아다시피,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고 이순신의 공을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선조나 원균 같은 개 양아치 종자들의 주특기가 바로 요렇게 지가 지은 죄를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짓이다 !) 선조 개양아치가 직접 이순신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순신에게는 크나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선조 개양아치는, "만약 이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면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전투가 끝난 틈을 타서 잡아오라!" (선조 개양아치 실록 30년 2월 6일) 이렇게 선조 개양아치가 자신을 반드시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영의정 류성룡마저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자 노량해전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서게 되고 결국 스스로 전사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게 되었다. (이덕일, 한국통사 412쪽 참조)
@@user-ki2oi1sb1j 근데 그건 좀 오버임.....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 상황이 워낙 개판이었던데다가 일본의 전략 자체가 단기결전이었어서 초반에 무섭게 몰아쳐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일본의 당시 전력이 중국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음. 실제로 당시 명나라에서도 일본'따위'한테 조선이 너무 쉽게 밀리니까 조선이 일본하고 짜고 중국에 대들려는거 아니냐고 의심할 지경이었으니...... 당시 일본 내에서도 조선 먹고 중국까지 가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거의 미친생각으로 취급했었음. 도요토미의 권력이 너무 막강해서 대놓고 반대를 못 했을 뿐이지......
선조 개양아치가 (1597년 3월 13일)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이순신을 죽이라는 명령; "이순신이 조정을 속인 것은 임금을 없는 것으로 여긴 무군지죄이고, 멋대로 적을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배신한 부국지죄이고, 심지어 *남의 공을 빼앗은 것은 남을 함정에 빠뜨린 함인어죄이고,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아무 꺼리끼는 것이 없는 무기탄지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는데도 법망에 방치되었으니 마땅히 법에 비추어 죽여야 한다. 인신으로서 속이는 자는 반드시 죽여서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 위에서 남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 선조 개양아치가 주장하기를,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하고 원균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데 역사적 팩트는 누구나 다 아다시피,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고 이순신의 공을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선조나 원균 같은 개 양아치 종자들의 주특기가 바로 요렇게 지가 지은 죄를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짓이다 !) 선조 개양아치가 직접 이순신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순신에게는 크나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선조 개양아치는, "만약 이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면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전투가 끝난 틈을 타서 잡아오라!" (선조 개양아치 실록 30년 2월 6일) 이렇게 선조 개양아치가 자신을 반드시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영의정 류성룡마저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자 노량해전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서게 되고 결국 스스로 전사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게 되었다. (이덕일, 한국통사 412쪽 참조)
선조 개양아치가 (1597년 3월 13일)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이순신을 죽이라는 명령; "이순신이 조정을 속인 것은 임금을 없는 것으로 여긴 무군지죄이고, 멋대로 적을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배신한 부국지죄이고, 심지어 남의 공을 빼앗은 것은 남을 함정에 빠뜨린 함인어죄이고,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아무 꺼리끼는 것이 없는 무기탄지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는데도 법망에 방치되었으니 마땅히 법에 비추어 죽여야 한다. 인신으로서 속이는 자는 반드시 죽여서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선조 개양아치가 직접 이순신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순신에게는 크나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선조 개양아치는, "만약 이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면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전투가 끝난 틈을 타서 잡아오라!" (선조 개양아치 실록 30년 2월 6일) 이렇게 선조 개양아치가 자신을 반드시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영의정 류성룡마저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자 노량해전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서게 되고 결국 스스로 전사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게 되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 412쪽 참조)
선조 개양아치가 (1597년 3월 13일)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이순신을 죽이라는 명령; "이순신이 조정을 속인 것은 임금을 없는 것으로 여긴 무군지죄이고, 멋대로 적을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배신한 부국지죄이고, 심지어 *남의 공을 빼앗은 것은 남을 함정에 빠뜨린 함인어죄이고,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아무 꺼리끼는 것이 없는 무기탄지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는데도 법망에 방치되었으니 마땅히 법에 비추어 죽여야 한다. 인신으로서 속이는 자는 반드시 죽여서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 위에서 남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 선조 개양아치가 주장하기를,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하고 원균의 공을 빼앗았다는 건데 역사적 팩트는 누구나 다 아다시피,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고 이순신의 공을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선조나 원균 같은 개 양아치 종자들의 주특기가 바로 요렇게 지가 지은 죄를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짓이다 !) 선조 개양아치가 직접 이순신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이순신에게는 크나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선조 개양아치는, "만약 이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면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전투가 끝난 틈을 타서 잡아오라!" (선조 개양아치 실록 30년 2월 6일) 이렇게 선조 개양아치가 자신을 반드시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영의정 류성룡마저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자 노량해전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전장에 나서게 되고 결국 스스로 전사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게 되었다. (이덕일, 한국통사 412쪽 참조)
내부의 적이 그것도 한 나라의 임금이었고 외부의 적인 풍신수길에 맞서서 겁나 불리한 상황에 해상전 위주였지만 보급로 차단하고 그당시 해전의 중요성 생각하면 정말 핵심에서 큰 활약을 하셨음 그리고 전쟁 막바지에 전사는 오히려 임금 꼬라지와 이후 정치판 돌아가는거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쪽이 아니었나 싶음 나라를 구하고 명예롭게 전사 했기에 공훈만큼은 누구도 시비걸지도 못했을 듯 선조만 빼고
진짜 이순신알못이네ㅋㅋㅋ이순신 최대 후원자가 선조였다 당시 선조는 방계 출신으로 자신의 기반이 약했고 여러 인물들을 뽑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권율, 이순신이다. 게다가 이순신은 진급이 조선 역사상 2번째로 빠른데 (첫번째는 조광조) 너무 진급이 빨라서 사간원과 그 류성룡까지 너무 빠르다며 진급을 반대했지만 선조가 직접 이순신을 언급하며 반드시 진급시켜라 명해서 이순신은 1주일 간격으로 진급을 해 부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음 진급 부임지로 가야할 정도로 빠른 진급을 했음. 그냥 말년에 자기 기반이 약한데 패주란 약점 때문에 PTSD터진 평범한 인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이순신을 5계급 특진시켜 전라좌수사에 앉힌게 선조임. 유성룡은 오히려 그 결정을 반대했었음. 그리고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봤을 때 한 나라의 국왕이 적에게 잡힌다는건 국가 자체가 넘어가는 것으로 인식이 되었어서 빤스런 친거고, 그걸 옳게 보던 그르게 보던 애초 육군에서 해군으로 넘어온지 얼마 안된 이순신의 해군으로서의 입지자체를 만들어준건 선조임. 무조건 깔 순 없음.
일본이 이순신장군님을 고평가 하는 이유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분열돼 있던 일본을 통일함 - 갓순신께서 도요토미를 막음 여기서 이순신 장군님을 고평가하면 그런 세기에 천재와 싸운 도요토미가 대단한거고 저평가하면 도요토미는 압도적 물량으로도 이기지 못한 개ㅂㅅ이 되는... 이라고 들었어요ㅋㅋ(농담으로 보세요)
영상 마지막에 이순신 장군을 상업적,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난 정반대로 생각함. 오히려 이순신 장군을 상업적,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이순신 장군의 명성도 더 널리 알리고 우리 국민들도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함. 영상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마치 전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한 것처럼 표현하는데, 정말 냉정히,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 자라도 아는 외국인들은 해군 교육과정을 밟아서 이순신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던 극히 일부의 해군 관계자들이나 해군사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 뿐임.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업적에 비해 세계적 명성은 극도로 낮음. 난 이게 '우리나라 위인은 절대로 상업적, 정치적으로 활용하면 안된다'는 엄숙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함. 당장 옆나라 일본 봐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전쟁광이나, 심지어 실존여부조차 불분명한 일개 칼잡이의 이름조차 세계적으로 보면 이순신, 세종대왕보다 훨씬 유명함. 그게 일본 위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대단하고 위대해서 그런걸까? 천만의 말씀. 전부 만화, 게임, 소설 등의 상업 컨텐츠에서 위인들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임. 중국은 아예 한술 더 뜨지. 내용이 실제 역사와 너무 달라서 정사와 아예 따로 구분해버리는 삼국지 연의의 등장인물들이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음. 그게 왜 그런걸까?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 1,2위를 다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조차, 그냥 '훌륭한 위인'으로만 알지 저 두 분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얼마나 훌륭하게 했고 거기서 뭘 배울 수 있는지 아는 국민들은 생각보다 너무 적음. 그냥 위대한 분들이다, 외국사람 누구가 뭐라고 찬양했다더라 하며 국뽕만 들이킬게 아니라, 우리나라도 역사적 위인들을 소재로 만화도 그리고 게임도 만들고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정치적으로 선전도 하면서 더 많이 알려야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고 더 궁금해할거라고 생각함.
전체적으로 맞는말씀입니다. 이순신의 진가는 각 각의 해전에서의 우리배의 구조에 맞는 전략과 당시의 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투방식, 휴민트활용 등등 알면 알수록 정말 입이 벌어집니다. 당시 어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정말 대단한분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이용은 조금 다른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인 문제는 당시의 정치적상황 원균과 선조의 삽질등이 엮이면서 현재까지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듭니다.(원균의 후손이라던 국회의원이 지 조상이라고 원균이 다시 평가받아야한다고 하더이다) 다만 이순신장군의 자세한 업적과 관련해서 이순신장군을 보위하며 함께 싸웠던 (원균보다 훨신 휼륭한 장군들) 지휘관들과 함께 알려나가면 더 좋치않을까 합니다.
@@우공이산-m1z 원균 후손인 국회의원이 원균 재평가를 주장할 수 있는건,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거임. 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 이순신 장군이 이러이러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정치를 하겠다 하면서 이순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회의원이 많다면, 그래서 그 국회의원을 반박하기 위해 반대진영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아보고 팩트체크를 한다면 이순신이란 인물이 대중에게 훨씬 더 많이 알려질거임. 그리고 그렇게 되야 자질 없는 정치인들도 '아 이순신장군 이름 함부로 팔았다가는 ㅈ되겠구나' 싶어서 함부로 언급을 못 하게 될거임. 실제로 그 원균 후손 정치인 뿐만이 아니라, 유튜브 같은데서 찌라시나 가십거리를 사실인 것처럼 떠드는 영상 보고는 원균 명장설, 원균 희생설, 노량해전 철쇄설 같은 소설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 반면 이순신 장군이 구체적으로 어떤식으로 전투에서 이겼는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장수들은 누구였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진짜 적음. 난 이게 공경이라는 명목으로 아예 언급 자체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williamkim7723 네 그것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이 정치란 프레임이 덧붙혀지는 순간 반대파의 말도 안되는 덧쒸우기가 오히려 이순신이란 이름을 더럽히는 상황이 올까 두렵네요. 지금의 역사학계에도 친일이 많습니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왜곡하기 시작하면 공부하지 않는 일반 대중은 순식간에 바뀝니다. 그리고 공부하지 않는 대중은 의외로 주위에 많습니다. 광주학살을 놀이꺼리로 알고 즐기는 사람이 많듯이.. 암튼 저는 님의 생각에 대부분 동감합니다..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 반열에 올라가는 명장 세계적으로도 고평가받는 해군 제독 개인의 역경은 물론 나라의 역경을 극복한 초인 수많은 학자가 연구해도 흠결은 커녕 그 위대함만 더해가는 성스러운 영웅 하늘에서 한반도와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잠시 내려왔다가 전란을 거두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 군신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이순신 장군을 다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실로 위대한 인물...
외국인은 이순신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라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사실도 없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약한 지휘관이었다. 부산포 해전도, 명량해전도, 순천해전도, 노량해전도 이순신은 대패를 받았다. 한국인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망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외국인은 한국인의 날조에 흥미는 없다.
@@qkdhrwifh1436 영향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이야기 한게 아니죠. 정치 빼고 군수 조달, 경영, 전략, 전술 다한 것이 이순신이었죠. 조선군이 사용하는 화포나 화약 조차 대부분 이순신이 지원해준거였습니다. 행주산성 전투에 사용된 화약 무기 대부분도 이순신에게 받은 거였고요. 거의 치트키 급이죠. 거기다가 원균이라는 조선 함대 삭제 너프를 받는 밸런스 패치 받았음에도 함대가 재건되었고요.
어렸을 당시 학교에서 존경하는 위인들을 써내라 할 때 초, 중, 고 전부 다 이순신 장군님을 써서 제출했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님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어떨진 잘 모르겠지만 당시 중학교, 고등학교 때 존경하는 위인으로 이순신 장군님을 써서 내면 "나이가 몇 인데 아직도 이순신을 써서 내냐" 하는 반응이 꽤 대다수였습니다. 어찌보면 이순신 장군님이 안계셨다면 지도 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 도 있는데.... 존경하는 위인에 나이는 관련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위인을 존경한다 해서 유치하니 뭐니 그런 생각들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undertaker-black-Feather참고로 또 하나 알려드리자면 이순신장군은 원래 무과(군인이 되는 과거시험)이 아니라 문과(관리=공무원) 시험을 치룰려고 해서 무과 합격한 후에 다른 군인들이 "자네 어찌 그럴게 학문에 능한가?...."라고 했다죠 어릴때는 싸움놀이를 많이 하셨다고요.
솔직히 업적이나 환경만봐도 동양의 넬슨이 이순신인게 아니라 서양의 이순신이 넬슨이라고 표현해야하지 않을까. 셰계사가 말이 세계사지 사실 너무 서구권의 시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이순신이 넬슨보다 저평가되어있는게 상당히 억울함. 스스로 자신이 넬슨보다 대단하다고 평가한, 일본 해군장교도 존경하는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었음
넬슨따위와 비교하면 안돼지..... 모든 지원을 다받고 싸워 이긴 넬슨과 단하나의 지원도 못받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몇십배의 차이의 선박수에서 조차 승리한 이순신 장군님 이야 말로 전세계 해군 에서 1위이지 솔직히 이순신 장군님이 유럽에서 그시대 그상태에서 싸웟으면 넬슨따위 이순신 장군님 발 뒷꿈치도 못따라온다.
@@dj652311 당시 넬슨이 이끌던 함대나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함대나 규모에 있어 큰차이 없었음 넬슨은 가장 많이 지휘한 전투가 전열함 27척 프리깃 4척 스쿠너 1척 커터 1척 총 33척을 지휘한 트라팔가 해전이었고 이순신은 가장 많이 지휘한게 거북선 3척,판옥선 52척 총 55척을 지휘한 한산도 대첩임 도리어 총 병력은 조선군이 격군까지 포함이라 2만가량으로 더 많았고 격군빼면 비슷한 수준이었음 척수도 인원수도 더 많은 해군을 지휘했고 한산도 대첩은 해전 역사상 가장 완벽한 포위섬멸전으로 꼽히는데 무슨 통솔력이 모자라고 소규모 전투임... 넬슨 역시 트라팔가해전 제외하면 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규모의 해전을 치뤘음 트라팔가 해전 제외하면 넬슨의 가장 유명한 해전인 나일해전도 전열함 14척+프리깃 1척 vs 전열함 13척 프리깃 4척 끼리 벌어진 해전이었고 양군 규모는 각각 5천 수준이었음 괜히 레딧에서도 넬슨위에 이순신 놓는게 아님
따위는 아니지만 둘이 만약 연합함대를 만든다면 넬슨은 부제독이 되겠죠. 부대규모도 이순신이 더 컸습니다. 해참총장 위치였으니까요. 주력함 기준으로 넬슨이 120척 규모는 아니었고, 전쟁때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마을을 만들고 생산을 정상수준까지 끌어올리고, 배를 계속 건조하고 등등, 장군 업무 외에 지역 관리까지 한 걸 보면 넬슨이 먼저 고개 숙일만 합니다.
@@qkdhrwifh1436 그럼 이렇게 위인들끼리 줄 세우는 것도 비교가 안되죠. 이순신 보다 200년 후에 나온 함선이지만, 주력함이라는 기준에서 봐야 하는게 맞다 봅니다. 그 시대의 기술과 생산능력 시대상황도 고려 대상이니까요. 200년 전에 정부 지원도 안되는 상태에서 휘하 장수, 지역관리들과 같이 만들어서 기존 함선에 더해져 판옥선 주력함만 120척이니, 장군이 전투만 신경 쓴게 아니라 지역관리와 함선건조 및 생산성까지도 신경을 쓴거니까요. 넬슨은 그럴 필요가 없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한민족 공동체가 여태껏 명맥 유지하고 번창하는건, 국가에서 크게 지원 못받고 평소 은혜도 못받아도 우리 공동체를 지키고 침입자를 처단하겠다고 목숨걸고 싸워온 민중들과 간혹 나온 이순신과 같은 천재 리더들 덕분인거 같다.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갖고 화이팅!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에 이것저것 이쁨 다 받고 국가에서 물자 지원 싹 다 받고 전쟁을 이긴 자와, 그에 비해 정반대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쉽게 말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자가 진정 비교 조차 가능하다고 보는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저 단순한 인간의 영역이 아닌 인물이다 난 개인적으로 신을 믿지않지만 정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이순신 장군이 아니였을까 싶다 그만큼 그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만큼의 위대함, 그냥 아시아에서가 아니라 지구 인류 역사상 이렇게 위대한 인물은 이순신 장군 말고 아무도 없다 그의 존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심지어 이순신은 이후 마침내 신격화까지 되어버리고 만다.... 이게 정말 얼마나 말도 안되는 기록이었으면 이순신의 행적이 과장된 게 아닌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는 나라가 일본도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라고 한다. 하도 미친 기록이니까 거듭 거듭해서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
난중일기에 보면 한 줄이 아니라 원균 욕이 가득합니다 ㅋㅋㅋ 그는 병법을 모른다, 원 수사가 하는 말은 모두 망령된 것이다, 모두 원 수사의 탓이다 이런 식으로 쓰셨고 1597년부터는 그냥 원이라고 성만 적거나 원흉이라고 쓰셨습니다 이건 현대 기준으로는 '이런 개x같은 xx' 수준의 쌍욕이죠 ㄷㄷ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입니다. 욕 먹을 거 같지만 조금 제 소신껏 발언을 해보자면... 300년 간의 야욕을 멈추었다 라는 표현은 조금 어폐가 있는 거 같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일본 열도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창설하고 가장 먼저 시행한 "외교"가 바로 조선에게 직전의 전쟁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사절단이나 외교단을 꾸려서 보낸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조선에 왔습니다. 전 세계 역사를 보아도 이례적인 일이죠. 한 나라의 지도자가 침략전쟁 직후에 그 대상인 나라에 사과하러 오는 일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애초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토쿠가와 이에야스 이 일본역사에서도 3인의 걸출한 호걸들이 활약하던 시대의 이야기는 3명 중 어느 한 명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우선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에서 한국의 이순신 같은 포지션입니다. 지나가는 대한민국 사람 아무나 붙잡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뛰어난 인물 물어보면 보통 두 명 중 한명으로 좁혀질 것입니다. 세종대왕 이순신 이렇게 말이죠. 일본에서 똑같은 질문을 하면 보통 오다 노부나가의 이름이 나올 겁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시대를 소재로한 시대극과 영화, 각종 미디어 컨텐츠가 우후죽순 쏟아졌을 정도로 인기있고,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겠습니다. 우선 오다 노부나가가 "왜 이렇게 인기가 있고,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지" 에 대해서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는, 집단에 복종하는, 집단의 규율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그런 것 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분위기나, 집단의 규율, 질서 그런것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본인이 이끌고 싶은대로 카리스마 있게 집단을 이끌어서 수많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 결과 전국열도 제패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되었죠. 가까운 인물에게 암살을 당했을 때에 그 적 진영의 인물들조차도 안타까워 했을 정도였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 카리스마와 능력 만큼은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그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업적에 수저만 살짝 올려서 전국을 제패하게 됩니다. 물론 기회주의자 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나, 그 기회를 캐치하는 능력, 지금이 나설 때라고 판단하는 그 능력은 가히 전략가라는 칭호가 어울릴만 합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런 말을 남깁니다. "손 안에 든 뻐꾸기, 울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오다 노부나가는 성격상 바로 손 안에 뻐꾸기를 죽여버릴 것이다. 라고 평가합니다. 그에 반해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살살 구슬려서 울게끔 한다" 라고 평가합니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략가, 전략가, 기회를 캐치하는 능력, 집단을 이익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은 사실 오다 노부나가보다도 훨씬 더 뛰어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밀려서 오다 노부나가가 죽어서 운 좋게 통일한 놈 이라는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평가를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결코 내버려 둘 수 없었죠. 충분히 성공을 거둔 그 이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역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냉철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무리해서 전국통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군사를, 그것도 바다 건너 외부를 침략하기 위한 병력을 모으게 되는 다소 의아한 행보를 걷게 된 것입니다. 흔히 학생 때 국사나 세계사를 공부할 때 이런 표현 많이 나옵니다. "왕권 강화, 율령 반포, 제도 정비, 지방 호족(영주)견제 등등," 보통 지배자가 바뀌거나 권력이 교체가 되면 당연히 그 직후에는 안정을 꾀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었습니다. 중앙집권화를 꾀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정권교체 직후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진정시키면서, 그 다음 정책을 펼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멍청하고 어리석어서, 그리고 해외까지 정복하려는 거창하고, 야욕적인 목표가 있어서 군사를 일으킨 게 아니라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왕권강화? 안정화? 중앙집권화? 당연히 하고 싶었겠죠. 그러나 그것보다 오다 노부나가의 그림자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더 그에게는 중요했던 겁니다. 프라이드, 열등감 으로 인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 것이죠. 그 사실들을 전부 다 파악하고 꿰뚫고 있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 정벌에 군사적으로 협력하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불복종 하게 됩니다. 실제로, 전쟁 후에 조선에서 사과하러 온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나는 조선과의 전쟁에 내 군사들을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사과를 믿어달라" 는 어필에 진위여부를 판단한 결과, 본인의 주력 부대를 파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사과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국제 정세가 안정권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손 안에 든 뻐꾸기, 울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라는 비유적 표현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토쿠가와 이에야스 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울 때 까지 기다린다" 라는 평가를 합니다. 앞선 두 명의 호걸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본인의 뜻을 굳이 내비치지 않으면서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 토쿠가와 이에야스만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3명의 호걸들의 , 에도막부 직전의 역사를 정말 겉핥기 식으로 훑어 보았는데, 이 일련의 과정들을 생각하게 되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야욕은 결코 300년동안 존재했던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실 겁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삐뚤어진 열등감, 오다 노부나가를 향한 뒤틀린 존경심이 낳은 바보같은 선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그 뒤의 지도자인 이에야스가 직접 와서 사과의 뜻을 전한 게 그 당신의 분위기를 대변해줍니다. 따라서 일본의 침략의 야욕은 300년동안 지속이 된 게 아닌,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먼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게 되어 서양의 기술력들을 폭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성장을 해서 그 압도적인 경험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 때 당시 전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 라는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대북아 공영권 조성을 위한 욕심이 시작되었다고 말 해볼 수 있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지만,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ㅎ
넬슨하고 비교를 하냐..... 충신을 모함질을 해서 옥에 가두웠다가 개털리고 나서 백의종군하라고 다시 전장에 내 보내고.... 아들이며 가족 다 잃고 아픔몸 이끌고 보급은 알아서 하라고 해서 꾸역꾸역 모아서 12척배 만들어서 싸우는데 안위는 쫄아서 싸우지도 않고 구경만 나중에 이길거 같으니까 그때서야 싸운데 실상은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 한척 가지고 무쌍한거지! 인류 역사 해군사에 이런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맞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의 공세를 막은 네덜란드의 불세출 미힐제독이 이순신제독에 더 근접하지요. 메드웨이 기습에서는 영국에게 역사상 최대 치욕의 전투를 안기고 대승을 거두었고 인기가 높아지자 시기가 높아진 빌럼3세에 의해 강제로 죽음이 강요된 전투에 전사를 당하는..
1. 정부 지원 없이 군영 하나로 자급자족해서 군비 충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한양에서 도망친 왕한테 세금까지 보냄 2. 군사적 업적은 말할 것도 없음 3. 기반 닦아논 거 다 날리고도 재기에 성공해냈음 솔직히 1번, 2번은 역사적으로 유명하고 위인들 많지만 3번까지 이룬 사람은 전세계에서 손 꼽을 거 같은데 넬슨 제독이랑 비교 가능한가..? 명량 12척이 전부 전투함이었어도 대단한 건데 내가 알기론 전부 전투함도 아니고 그냥 어선 몇 개 포함해서 12척인 걸로 아는데
외국인은 이순신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라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사실도 없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약한 지휘관이었다. 부산포 해전도, 명량해전도, 순천해전도, 노량해전도 이순신은 대패를 받았다. 한국인이 이순신을 영웅으로 망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외국인은 한국인의 날조에 흥미는 없다.
@Qaz 11 조선시대때 일본이 강제점령에 성공했다면 자주독립은 힘들 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진왜란 발발 전 당시 일본은 이제 막 통일된 국가이기에 언제 또 분열될지 몰라 하나의 일본을 만들고자 조선을 침략 한 것 입니다, 이 명분으로 기세 몰아 조선을 침략 성공 했다면 일본은 더더욱 국력을 강화 시키기 위해 일제강점기때처럼 문화말살 정책을 내세웠을 것이고, 자치를 누려도 일본인에게 자치권을 줬겠죠, 또한 친일도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대항하기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조총 밀수도 그 당시엔 많이 힘들었을거고 사용법도 쉽지 않았을 거고요 물론 언젠간 자주 독립을 이루는 순간이 왔을 수 도 있지만, 그 사이에 일본이 명을 치면서 전쟁이 있을 수 도 있구요 이 과정에서 명이 이겼다 하면 미국이 일본에 핵을 날린 것 처럼 독립되어서 조선이 다시 건국 됐을 수 도 있으나, 중국 하는 꼬라지 보면... 또 새로운 국면을 맞이 했을 겁니다.. 뭐 역사엔 만약이라고 할 순 없기에 님말이 맞기도 합니다, 그냥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서양에서 이순신을 추켜세우는것은 대단한 인물 존경스러운 인물 이미지 일본에서 이순신을 높게보는것은 대단한인물 존경스러운 위인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등)을 이긴사람이니까 높여줘야 우리의 위인이 우스워지지 않는다 라는 이미지입니다. 일본인의 혼네를 똑바로 봐야 협상이나 경쟁에서 항상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이순신 장군을 그냥 자연재해라고 이야기했었고, 이순신이 묘사된 일본의 그림들을 보면 도꺠비 같은 모습에 소리를 지르면 천둥이 내려치는걸로 묘사를 했었죠. 분명 이겨야 하는데 이길 수 없었던 당시 일본 수군들의 공포심이 그냥 저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재해라고 자기합리화(?)의 한 과정이었고, 후에 진짜로 일본에서 신으로 받아들여졌다는 후문이...
솔직히 넬슨이 이순신에 비비기가 가능한 건가ㅋㅋㅋㅋㅋ 임진왜란은 기본적으로 서양과 규모부터가 달랐고 이순신의 해전들만 봐도 솔직히 넬슨이 낄자리부터가 없다 모든 보급품을 국가의 지원하나 없이 자급자족하고 국가 존폐의 위기를 12척으로 이겨냈다 이순신의 품성과 환경들부터가 넬슨과는 아예 다름 넬슨은 그냥 전쟁에 탁월한 감각이 있던 장수인것만 인정된거지 이순신의 품성 충심 지략에 비할바가 아니지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