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묵실이 아니고,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묵실 "일겁니다! 그 곳은 승철스님 고향이거든요, 글구 성철스님 어릴 적엔 그 부근에 절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가까운 곳이 산청군 신등면(단계) 모례리에 있는 율곡사나, 둔철산 밑에 월명암이고, 지리산 삼장 부근에 대원사, 내원사 중산리에 법계사가 있었지요, 아마
내가 느끼는 배울 점은 삼천배를 하든 한섬을 공양하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고. 생사를 판단할 수 없을 때에는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오. 가진 땅을 다 팔았으니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다시 가운을 세워야 할 아드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소. 여인이 스스로 아들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아드님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점이오. 인명은 제천이다. 이거이 바로 배울 점이요. 가진 것 딱 움켜지고 죽어 돌아오든 살아 돌아도든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라 생각하오.
전멸 소문을 못듣고 있다가 아드님이 시체로 돌아왔다 칩시다. 스님에게 가서 살려달라 할 수 있었겠소? 땅을 팔았겠소? 스님은 삼천배를 드리면 살 수 있다 확신하여 말할 수 있고 그 여인은 삼천배를 드릴 수 있었겠소. 복을 스스로 지어야 받는다는 말도 이생만으로 봐서는 진리는 아니요. 세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시오. 그러면 제 말이 몬 말인지 아실거요. 그래서 부처님은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키사코타미에게 마을로 내려가 죽은 자가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가져 오라는 요구를 하신 것이오. 생자필멸이요. 살아 돌아왔다 해도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요. 세상은 결국 해탈한 만큼 더 보고 사는 것이며 그 만큼 삶에 있어 자유스러워 지는 것이라 믿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