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back7257 화학화물열차 폭발사고 당시에 폭발사고로 인해 날아간 화통이 가정집 지붕을 덮쳐서 더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네요. 그로 인해 익산역(당시 이리역) 주변에는 불기둥이랑 주변 가옥에는 가족을 잃은 분들의 통곡소리가 가득했대요. 가까스로 피해를 면한 분들도 있었는데 특급열차에 타고있던 분들이었는데 특급열차가 진입 직전 현재 익산역 (1977년11월11일)사고 당시에는 이리역 직원이 폭발사고를 인지하고 열차가 있던 곳까지 달려서 특급열차의 진입을 막은 덕에 가까스로 참사를 막은거래요. 주된 사고의 원인은 급행료 요구였고요. 급행료를 내지 않자 출발이 지연됐고 이에 화가 난 호송원이 술을 마신 뒤에 다이너마이트가 적재 된 열차에서 촛불을 키고 잠이 들었는데 몸을 뒤척였나봅니다. 그러다가 그만 불 붙은 초가 넘어지면서 설상가상으로 다이너마이트에 불이 옮겨붙으며 대참사가 난 것이죠. 1977년11월11이 참사 발생일입니다.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구요. 눈 뜨고 볼 수 없을정도로 처참했습니다. 한국화약 대표는 이 사고로 인해 전재산을 내놓은 뒤에 사임했습니다. 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요. 1977년11월11일 참사 당시 화물열차 급행료는300원에서500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