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부친이 광복되자마자 군대자원 입대해 제대할쯤 전쟁이났어요. 수색 11연대출신입니다. 육이오 당일 휴가중이었는데 집이 수색이라 바로 전투참가. 고향은 봉일천 바로 남쪽 내유동 출신에 외가는 파주 적성 게다가 보직은 통신병이라 지역을 다알고 계셔지요. 당시 죽은 친구가 너무 많았다고 돌아가실때까지 고기는 절대 드시지 않았습니다. 후퇴를 계속해서 수원 대전을 거쳐 대구에 도착할때쯤 수백명이 부친을 따라 왔다고. 나중엔 평양까지 가셨고 전쟁 끝나고도 7년을 직업군인으로 계셨습니다.
후퇴했다고 모든 병사들이 오합지졸로 모두 도망갔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분명 기록에는 정확히 남겨있지 않았지만 목슴 걸고 육탄방어 하며 지켜낸 병사들도 존재했기 때문에 북한군이 계획되로 빠르게 남진할 수 없었죠. 6.25 전쟁뿐 아니라 임진왜란 , 병자호란 등 ... 전체적으로 우리군이 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병사들이 목슴걸고 사수했던 그 희생은 분명히 있었을겁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울때 이런 부분을 무시하거나 놓치거나 일관적으로 생각하며 배우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꼬마자동차-u4z 그당시 빨간 남로당에게 민간인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자꾸 이승만 대통령이 민간인 학살 프레임을 씌우면서... 정작 남로당에 의해 희생 당한 민간인에 대해서는 찍 소리도 안하니까 왜 남한에서 남로당 당원들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가 없는 거죠.
@@테스트-y3q 정치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중립적으로 보셈;; 김일성,이승만 양쪽 모두 사람 많이 죽였음 다만 김일성은 독재기간도 길고 숙청에 성공했으니까 비율이 높았던 거지 당장 6.25전쟁 시기만 해도 경비대가 민간인 죽이고 다니던 거 목격한 영국이 공론화해서 국제망신까지 당했던 게 현실임 이건 미국도 쉴드 포기했음 제주 4.3 사건만 해도 아침에는 우익에게 간첩 숨겨줬다고 맞아서 죽고 밤에는 좌익이 숲에서 내려와 니들이 우리 동포 팔아먹었냐고 때려 죽였는데 이것도 한쪽만 잘못한 거임? 제주도민 하나만 해도 좌우 모두한테 학살 당했는데? 건국 초창기 민간인 학살은 변명할 수 없음 이건 양측 모두가 깡패짓 한 거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솔직히 북한군이 실전 경험있다고 해도 대부분이 게릴라여서 공세작전을 하기에 는 여러 능력이 부족했을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게릴라경험도 없는 국군보다는 나았겠지만 게릴라랑 공세작전 그것도 자기 나라정도면적의 나라를 점령하는 공세작전을 하는건 게릴라랑 차원이 다른 능력을 요구하지만 북한군 수뇌부에서는 그정도까지는 생각을 못한것 같습니다. 같은 병력의 소련군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것 같네요
@@이정환-x7p 중국공산당에서 복무한 애들도 있고 소련쪽에서 있었다는애들도 있다는거 아는데 346사단 전부가 그런 공세작전을 해봤다고? 헛소리 하지 마라. 그리고 대부분을 차지한 중국전선쪽은 2차대전내내 일본한테 두들겨맞고 국공내전도 순수전투력 뿐이 아니라 민심 작살나서 공산당이 이긴건데 ?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한군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데?? 몇백만명규모의 전쟁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했다고 ㅋㅋㅋ 이래서 조금 아는 애들이 가장 문제라니까.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몰라. 조금 알고있는 나무위키에만 쳐도 알 수 있는 지식으로 태클걸면서 우월감이라도 느껴지더냐?
토교에서 긴급히 전시시찰 온 멕아더가 신길동의 한강 참호를 지키고 있는 국군에게 귀관은 언제 까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 하고 질문하자 ' 철수명령 있을 때 까지 지킬 것입니다' 하고 결연히 대답하자 한국군이 궤멸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적극 참전을 결심했다고 함.
한국전쟁 초기 전사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상세히 설명해 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릴 적에 "전쟁과 역사"라는 책에서 강동6주와 서희에 대한 새로운 논점을 말씀해 주신 이후로, 팬이 되서 항상 교수님 영상을 보고 있는데, 항상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네요. 이번 시리즈도 잘 되서 몇년 전의 EBS 임진왜란 강의 처럼 영상 시리즈도 찍고, 나중에는 책까지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의 뿌리깊은 개전초 패배는... 정말 기습에 당한거뿐이고 지휘부의 무능이었지, 사단~일선장병 들은 정말 잘싸웠다고 생각됩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시가전에서 전멸을 각오하면서 싸운 부대가 있었기에 독일6군을 격멸할 수 있다는 사실처럼. 그리고 초전에 당했지만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해서 싸운것 자체도 대단하구요.
저 때 한강 방어 사령관이김홍일 장군이십니다. 독립군이셨고 중국군 장교 시절에 윤봉길 의사의 폭탄을 제조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중국군 별 두개(중장)+ 국군 별 세개(중장)을 역임하셔서 오성장군이라고 불리십니다. 만일 누군가를 명예원수로 추대한다면 김홍일 장군이 가장 적격자입니다.
초기 전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열악한 상황 와중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은 다수의 국군장병들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영상에서 북한군의 계획과 동선을 보면, 2차대전 일본군의 면모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속전속결에 집착한 나머지, 역량에 비해 계획을 너무 빠듯하게 잡는 모습이라던가...
그냥 결과론임…..당시에는 전황 정보를 모두 다 파악할수 없는 상황이니 계획했던 대로도 못했고 강원도 동부전선에서는 아군의 분전으로 괴뢰군이 예상치 못한 고전으로 계획들이 싹 묵사발 났음…..그냥 역사에는 만약이란것은 없는 것임…..모든걸 다 파악할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임…..
덤으로 북한은 육군과 공군력은 엄청투자했지만 해군은 제대로 투자를 안했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마자 북한은 인민군 특수부대를 수송선에 태워서 부산에 상륙하는 후방교란작전을 개시했고 그 수송선이 동해안에서 남해안으로 부산을 향해 항행중이었는데 문제는 그 수송선을 호위할 함정이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군이 겨우 마련한 경비정 수준의 백두산함 1척과 어뢰정 2척의 공격을 북한 수송선이 못막았고 결국 백두산함이 북한 함정을 침몰시켜서 후방이 안정되었습니다. 만약 인민군 특수부대가 부산에 상륙해서 교란작전을 펼쳤다면 그만큼 국군의 전력이 분산되었음은 물론 미군의 상륙도 어려워서 결국 공산화되었을겁니다.
1. 가만 있으면 레드카펫 깔아 줄줄 알았다.---박헌영 개객끼!---- 2. 올 놈들이 안왔다. ---춘천에서는 두들겨맞느라 정신이 없었지비.--- 3,박자가 안 맞았다. ---공중 엄호도 없이 맨몸으로 우라돌격 하랜다. 못해! 배째! --- 4. 쏘련 전술 섬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민전쟁은 섬멸전이 최고여~---
선배 전우님들의 고귀한 희생정신, 국토수호의지, 애국심과 국가에대한 충성심, 국민과 가족들을 보호하기위해 싸우신 그마음을 후배 전우로써 마음깊이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저희들 후배전우들 또한 국가의 비상사태나 전쟁, 사변에 준하는 국가위기가 닥쳐온다면 선배전우님들의 뒤를 이어서 목슴을걸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용맹히 싸우겠나이다. 단, 한치의 영토도 뺏기지않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면서 조국을 지켜내겠나이다. 그러하오니 선배전우님들께서는 뒷일은 저희들 후배전우들에게 맡기시고 부디 마음편히 영면하시옵소서. 그리고 하늘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주시고 더욱더 번영하고 강한 나라가 될수있도록 후배들에게 힘과 지혜, 용기를 북돋아주소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