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방을 튼튼히 해야하지요 세종대왕님 때부터 무기개발에 힘썼으니 계속해서 후대에도 그렇게 하고 왜세의 침략에 대비했더라면 ... 그놈의 북인,서인,남인,동인.... 당파싸움이 나라를 망치고 결국,수많은 왜침으로 나라를 식민지배 당하고 오늘날 나라는 둘로 쪼개져 아직도 국민들은 이념갈등 지역감정으로 서로 싸움질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치인은 없고 정치꾼들만 넘쳐나고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당리당략만 있고,국가와 국민은 민초가 되었으니 참담하구나. 만약,나라 모두 빼앗기고 제주도에서 쫒겨 살아도, 서제주,남제주,북제주,동제주로 파벌을 만들고 살겠지.... 언제나 평화통일이 될까.... 과연,전쟁 없는 평화적 통일은 가능할것인가..... 선조님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켜온 이나라를,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지키고 후대에 물려줘야 할텐데..
인정. 특히 촬영 구도를 보면 유물이 아닌 설명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춤. 그 인물이 한국사에서 대단한 인물이라 초점을 맞추나? 과거 조선시대 유물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을 진행해나가야지. 이미 딱 보면 기본부터 시대에 편승하기 위해서 급조한 영상물이란게 보임.이 바닥도 아주 고인물이라 굉장히 심각한 곳임. 다시 보는데 보면 볼수록 유물과 과거보다 현재의 인물을 클로즈하는 형태는 보면서도 이상함.
우리나라는 무기 하나 소지부터발사까지 전부 사전허가를 받아야되고 역사 따로 군사 따로 분야별 이해도가다르고 장치적으로도 해석에 견해차가 심해서. 멀쩡한 사료에 유물까지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실제 고무기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고증은 현저히 낮은 수준임. 이를테면 기록상 1200보를 날아가는 대장군전이나 대신기전을 지금 재현해보면 그 절반쯤 날아가는 수준이고 이순신 해전술을 재현한다고 판옥선 선회장면을 시도해보면 선회는 커녕 모터 최대출력으로 돌려도 배가 뒤집히는 수준임. 즉 기록에 있눈 장면을 고증하지도 못하고 그런식으로 하면 승전해서 사람들 목숨이 붙어있을수도 없다는거임. 목숨이 붙어있지 않은데 어떻게 승전기록을 전하고 무기 성능을 자료로 남길수 있었겠어?
장전 자체는 총통이 더 빨랐고 화력, 사거리, 살상력도 총통이 더 높았음. 다만 이 장점을 싸그리 상쇄시켜버리는 점이 가늠자, 가늠쇠와 방아쇠의 부재였음. 즉 조총은 장전시간 자체는 좀 길었지만 정확한 조준이 가능했고 사수가 원할때 격발이 가능했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았으나 총통은 그러지 못했던것임. 단, 원 댓글작성자 말처럼 공성전 같은 방어전에선 총통의 산탄총 같은 효과 때문에 더 효율적이었다고 함.(사방이 적이니 조준이 필요없어서) +진주박물관 채널 영상에 잘 나와있네요 내용도 다큐같지 않고 재밌음
승자총통 자체는 휴대용 대포라고 할만치 강력한 스펙을 지녔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인해 일개 병졸에게까지 보급되는데다 재장전-발사에 이르는 짧은 재사용 시간의 효율적인 조총과는 달리 장수급은 되어야 잡을 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가성비가 훨씬 뒤떨어지는 무기였다.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도 그 활약이 극히 미비한 허울뿐인 최강무기 차라리 투항한 항왜에게서 전수받은 기술로 자체 제작되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조선식 조총을 깊게 다루는 게 낫다고 본다
승자총통은 한국의 초통개발사의 정점이라고 볼수있죠 니탕개의 난때 조선군 800명이 2만의 여진족을 상대로 승리했을 정도로 수성전에 뛰어난 무기였죠 실제로 "승자총 3천자루를 만들어 3부대로 나눠 교대로 방포하면 횡행하고 오랑캐도 걱정할 것이 없다" 회기도감의궤 만력 43년 1615년,광해군 7년 이러한 말이 나올정도였죠 게다가 조선의 개인화기는 화살을 발사하는 형태였지만 승자총통은 철환을 발사하는 용도였다는거에 의의가 있죠 실제로 철환을 안정적으로 내보내기 위해 승자총통의 길이를 50cm로 늘립니다 총통은 강선이 없기때문에 안정적으로 명중률을 높이려면 총열의 길이가 길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대 사거리가 720m까지라고 나와있으니까요. 승자총통은 수성전과 해전에서 유리한 총통이었습니다. "승자총통은 수전에 유리한데 모두가 왜적들을 방어하기에 지극히 신묘한 것들입니다" 정탁의 중 발췌 라고 나올 정도죠 실제로 개발자인 김지가 무관출신으로 육군과 수군을 모두 역임했기에 두곳을 전부 두고 개발했다는 말도 있고요 하지만 승자총통은 가늠쇠와 가늠죄가 없었기 때문에 대충 눈대중을 하고 쏘는데다 산탄총처럼 사방으로 나가는 무기이기 때문에 명중률이 낮았죠. 말하자면 상대가 밀집해 있다면 승자총통이 유리하지만 떨어져있다면 맞추기 힘들었죠. 이런 서로의 장단점 때문에 인조 이후로도 승자총통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죠 하지만 조총과 다르게 총통류는 구리가 많이 들어가는 무기인데 조선은 절의 종을 녹여 총통을 만들정도로 구리가 부족한 대표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만들기 어렵지만 조총은 철로 만들기에 재료조달이 쉽습니다. 게다가 조선은 화약이 부족한 대표적인 국가죠 근데 총통은 화약을 많이 쓰는 무기입니다. 승자총통은 한번쏠때 27g을 사용하지만 조총은 8g~16g을 사용했다 하죠 그로인해 총통과 화약이 부족한 조선은 총통 훈련도 하기 힘들었죠.
바다에서는 대포가 있는것이 유리한데 왜놈배도 대포가 있긴 있었는 1대 정도 있었고 그것도 배가 충격에 약해서 충경을 완화시키기 위해 천으로 묶어 배에 걸어놓고 쐈다. 그래서 사거리가 짧아 그 용도는 바로 옆에가서 쏘는거였다. 우리는 멀리서 쏘니 근접전 밖에 안되는 왜놈들에게는 우리배랑 싸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숨은 병기라고 까지 자화자찬 하는건 좀 그렇습니다. 대포라면 확실이 조선이 일본에 비해서 우위를 가졌지만 승자총통은 조총에 대응할만한 무기인데 조총에 비하면 아주 후지죠. 그냥 있으니 사용한정도.. 위력도 대조총(오오쓰스) 정도 되면 승자총통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정운장군이 대조총에 맞아 전사할떄 기록히 합판과 방패 몇개를 뚫고 머리에 맞아서 전사했다고 기록에도 나오는데...
승자총통이 조총보다 화력이 강한건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 체급이 높은 무기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서양에서도 이와같은 핸드캐논류의 무기들이 더 약하지만 제어하기 쉽고 방아쇠도 존재하는 근대적 무기들(소총류)가 등장하며 급속히 도태됩니다. 소형화와 격발기구는 편한 조준과 쏘고싶을 타이밍에 쏠 수 있기 위해서 필수조건이었죠. 타국의 핸드캐논에 비해 특별한 무기도 아니거와 비실용적인 무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