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영화는 위플래쉬이다. 영화 속 앤드류는 드럼 연주자로써 꿈을 향해 갈망과 헌신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수한다. 이는 우리가 목표를 추구할 때 마주치는 어려움에 대한 현실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 플레쳐 선생은 앤드류에게 극도의 압박과 고통을 주며 그의 음악적 경지를 시험한다. 마치 조련사 같은 모습이다. 중요한 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채찍만 휘두른다는 것이다. 플레처 선생의 이런 가혹한 방식으로 자살한 제자도 있고, 많은 이들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모습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탐욕과 끊임없는 갈망으로 인해 마주칠 수 있는 어둠의 면모를 표현한다. 결국 엔드류는 한계를 뛰어넘어 엄청난 연주를 플레쳐와 보여주면서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된다. 나는 이 영화가 베드엔딩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으로는 탁월한 성취를 이룰수도 있겠지만, 인간성이 파괴되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엔드류는 플레쳐의 방식이 옳다 믿고 플레쳐의 비윤리적인 방식을 자신의 제자에게 가르치면서 대물림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성을 파괴하면서까지 목표를 이루려는 욕망과 탐욕을 절제하는 것이 사회인으로써 인간의 올바른 존재 양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삼칠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영화는 위플래쉬이다. 영화 속 앤드류는 드럼 연주자로써 꿈을 향해 갈망과 헌신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수한다. 플레쳐 선생은 앤드류에게 극도의 압박과 고통을 주며 그의 음악적 경지를 시험한다. 마치 조련사 같은 모습이다. 중요한 건 당근을 거의 안주고 채찍만 휘두른다는 것이다. 플레처 선생의 이런 가혹한 방식으로 자살한 제자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탐욕으로 인해 마주칠 수 있는 어둠의 면모를 표현한다. 나는 이 영화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적으로는 성취를 이룰 수도 있겠지만, 인간성이 파괴되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엔드류는 플레쳐의 방식이 옳다 믿고 플레쳐의 비윤리적인 방식을 자신의 제자에게도 가르치면서 대물림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성을 파괴하면서까지 목표를 이루려는 욕망과 탐욕을 절제하는 것이 사회인으로써 인간의 올바른 존재 양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