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uq3ql7di1m 거의 알지 못하는 수준의 지식이 가져다주는 "안다"는 착각에 빠질수밖에 없는 건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는 방향보다는 주어진 지식의 습득이 얼마나 능숙하게 이루어졌는지 평가하는 현황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업 다운 참 스트레인지 탑 바텀 여섯 쿼크가 있다고 배우지만 이것이 물리학에서 어떤 것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이까요
조공과 중계무역은 좀 차원이 다른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류큐가 무리한 외교적인 지렛대를 움직인 특별한 일도 없었고요(적어도 잘 알려진 부분에서는) 오히려 외교적 술수를 쓸 위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조선을 포함한 무역파트너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고싶었지만 /* 제국주의국가들의 위협 */ 이 류큐가 그나마 외교적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대상인 일본과 중국마저 집어삼킬 위기 속에서 류큐가 독립적인 정치체로 살아남을 수 없었던 거죠...
겉으로는 미비했지만 해군력은 물량만 채운다고 되는게 아니라서... 해군 자체만으로는 오스만이 영향력이 떨어지고 서유럽 진출에 실패하는 원인이 된거 같아요. 이후 1683~99년 오스만의 몰락 시작 그래도 18세기 중반 후반 까지도 유럽과 대등했지만 이후 19세기 넘어오면서 환자됨,,,, 러시아 전용 샌드백..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베네치아는 그냥 늙어 죽은거지. 것도 열라 장수하다가.... 3,400년부터 16,700년까지 살아남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삼국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고, 세계사를 다 뒤져봐도 저런 장수 국가는 없었음. 동시대 유럽에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까지 수많은 강대국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줄곳 대립관계였던 중동에도 오스만, 투르크 등 국가들이 나타났고, 더구나 바티칸을 중심으로한 피터지는 종교 대립도 있던 시기임. 그런 상황에서 천년이상을 버텼는데... 그만하면 정말 잘 버틴거지. 역사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인거고, 저런 와중에 저리 경영한건 정~~~말 대단한거임.
20세기 50년대 이탈리아의 경제기적 이후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하는 베네토 지역은 전통적인 수공업 중심지였던 롬바르디아(밀라노 ), 리구리아(제노아), 피에몬테(토리노)지역과 더불어 북부 이탈리아 지역의 대표적인 기계제조업 중심지로 변화합니다 2차대전 이전까지 베네토 지역은 북부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중부 이남지역과 비슷한 1차 산업 위주의 지역으로, 중요한 이민 유출지역이자 롬바르디아의 포강 유역의 벼농사철에 계절 노동자를 보내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남부 이탈리아가 미국에 이민을 많이 보냈다면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등 남아메리카에 가장 많은 이민을 보낸 지역이 베네토지역입니다.
@@crouchingstone 4차십자군... 은 베네치아의 책임으로만 보기가 어려운게 있죠.... 저는 피렌체를 돕는 대가로 피사를 내놓으라고 한게 상당히 경악스러웠습니다... 신성로마제국 교황청(교황령) 프랑스까지 대립교황을 세우며 진짜 죽자사자 싸우던 사람들이 '일단 쟤부터 혼내자'라는 단결을 하도록 만든 결정이었으니까요...
@@crouchingstone 저게 끝이면 좋으련만, 베네치아의 탐욕은 로마냐의 명목상 교황령이지만 교황의 정치력이 못미치는 영지들을 점령했고 교황은 반환을 요구하지만 베네치아는 정기적인 공물을 주고 자신들의 영토로 하며, 영지 내의 교구의 세금문제까지 자신들이 통제하는 특권을 달라는 요구를 했고 교황령을 침탈해간 베네치아에 대항하는 캉브레 동맹이 성립되지만 이것도 2년만에 깨집니다. 다만 이들이 각자를 완전히 굴복시키는것을 목표로 싸우다가 베네치아를 공격하게 만든 것은 당시 베네치아가 외교에 있어서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는 탐욕스러운 태도에 질려있었음을 드러내죠....
서른마흔다섯번을 생각해봐도, 네덜란드나 베네치아보단 영국이 몇만배 현명한 국가다. 상업을 위주로 국가가 번영하다보니 정작 필요한 강한 군사력은 없었던 것이 이들의 몰락을 불러왔다. 이에 반해 영국은 실리를 생각해서 부와 강한 군대 모두 가져갔다. 물론 1차 세계대전 때 프로이센이 아닌 프랑스 편을 듬으로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당시 자기나라 문화가 무조건 세계최고라는 심각한 국뽕에 빠져있던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때 산마르코 광장의 대성당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압도됨과 동시에 자존심이 크게 상해 때려 부수려고 했는데 참모들이 이건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뜯어말려 오늘날까지 보존될수 있었음
안녕하세요! 예전에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드린 적이 있었는데 혹시 댓글이 편하실까 이곳에서 문의합니다...! 혹시 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예전에 다른 영상에서, 혹은 댓글에서 언급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유튜브 커뮤니티 등에서 이야기 해주신 기억이 없어서 한번 연락드립니다! 언제나 좋은 컨텐츠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래요 :D
어찌보면 안타까운게 석호밖 이탈리아 속령의 주민들(혈통적으로 완벽히 같은 이탈리아 라틴계 주민들)도 식민인으로 취급했을만큼 닫힌 사회였죠.. 유럽 어느나라보다 산업과 무역에 개방적이라 이교도와도 기꺼이 타협하고 나라 안에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까지 배치한 나라가 말입니다. 그러니 대외원정이나 무역에 투입할 젊은이 충원이 점점 힘들어지고 사회통합에도 큰 비용이 소요되죠... 특히 신참 시민권자들은 대체로 기존 시민들에 비해 보다 출세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띤다는 점에서 본토인들을 적극적으로 편입했다면 갈수록 해외통상을 나가는걸 꺼려하던 기존 베니스 젊은이들을 대신할 수도 있었을겁니다. 게다가 오스만과의 오랜 갈등으로 가뜩이나 줄어드는 통상이익이 전쟁에 소모되는 최악의 결과가 초래되었죠.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통상무역국가는 되도록 이념지향적 전쟁은 멀리하고 분쟁은 최대한 짧게 끝나야하는데 그리스 본토, 알바니아, 크레타 등에서 막대한 전비를 치르며 오스만과 대립해야 했으니 참
이탈리아가 로마 제국 멸망 이래로 사실 상의 통일 국가는 없었어도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같이 역사에 굵직굵직하게 감초로 등장하는 도시국가들은 꾸준히 있었죠. 잘 나가던 베네치아도 사업 실패?로 저렇게 됐는데 이도저도 아닌 나머지 지역들은 안봐도 뻔하군요. 괜히 19세기와 20세기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수돗물 쏟아지듯 미국과 남미로 간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와 네덜란드같은 나라들은 덩치를 감안하면 오히려 그 작은 나라가 어떻게 시대를 앞서가서 해상패권을 잡고, 상당기간이나 유지할 수 있었나를 봐야지 영토형 대국들이 발전해나감에 따라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의 흐름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별로 유용하지 못한 접근 같습니다. 반대로 당시의 유럽 대국이던 프랑스/스페인/오스트리아 중 누가 와도 오스만 제국이랑 그렇게 장기간 치고받고 싸워야 했으면 그렇게 오래 버티지도 못했을 것
가문이 말그대로 단절되어 사라졌단 의미입니다. 당시엔 몰락했더라도 귀족 가문이라 일반적인 평민과 결혼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죠. 멀리 갈 것 없이 일본의 하급무사들도 그래도 사무라이라고 체면이나 품위에 버는 돈보다 많은 돈을 써야해서 긍핍했던 점이나, 몰락양반들이 가내수공업을 통해 돈을 벌더라도 일반적인 평민들과는 결혼하려 하는 걸 꺼렸다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귀촌상혼이란 개념이 동서양에서 꾸준히 나타난 만큼 일반적인 귀족가문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였을 겁니다. 애초에 명예가 목숨보다 중시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리고 동양보단 대가 끊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각보다 덜한것도 있던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동양 같은 경우는 유교문화로 인해 대가 끊기는 것을 불효로 여긴터라 친척의 자식 중 양자로 입적하는 식으로 해서 대가 끊기는걸 막으려 들었는데 서양은 상속 문화가 뿌리를 내린 터라 대가 끊기더라도 법으로 정한 상속인에게 재산을 양도하는 등 그런 방식이 이루어진 점을 볼 때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javaxerjack 요즘도 양 집안의 경제력을 보는것이 결혼의 가부를 따지는데 영향을 주는데 하물며 그 시대일까요? 이미 부를 가진 귀족집안의 입장에선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과 사돈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고 돈 많은 상인이나 평민의 입장에서도 당시 베네치아는 돈으로 귀족지위를 살 수 있었던 만큼 굳이 몰락해가는 가문과 혼인을 할 필요성이 없던 것 입니다. 지금에야 자유연애가 당연하지만, 중세는 물론 과거 시대의 혼인은 일종의 경제적, 정치적 이유가 포함된 정략결혼이 대부분입니다. 부가 넘치는 귀족집안은 자신과 비슷한 위치의 가문과 결혼을 할테고, 돈많은 상인이나 평민 집안 입장에서도 자신들에게 이득을 줄 가문과 결혼을 통해 지위를 상승시키는게 이득이니, 몰락해 가는 가문은 안중에 없겠죠. 그리고 영상에서 언급하듯 그런 몰락해가는 가문이 넘쳐나던 시대였으니 더더욱 그럴테지요.
경제적인 판도의 변화가 제일 컸다고 생각합니다.... 향신료 무역은 이미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이악물고 '쟤들한테 돈주고 사느니 아프리카를 돌든 지구한바퀴를 돌든 인도에 직접간다'는 엄청난 동인이 있었고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유럽국가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교역의 핵심이 더이상 향신료가 아니게 되었으니까요...